'판타지 안 통한다'...현실에 발 딛은 콘텐츠 제작 봇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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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안 통한다'...현실에 발 딛은 콘텐츠 제작 봇물
'한사랑 산악회' '좋좋소' 등 사실감 넘치는 유튜브 콘텐츠 인기
방송가, 현실 반영한 관찰 예능·연애 리얼리티 부상
  • 방연주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21.07.16 1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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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 있을 법한 아재 캐릭터 내세워 인기를 끌고 있는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한사랑 산악회 영상 갈무리.
주위에 있을 법한 아재 캐릭터 내세워 인기를 끌고 있는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한사랑 산악회 영상 갈무리.

[PD저널=방연주 대중문화평론가] 포장된 판타지보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담은 콘텐츠가 뜨고 있다. 이는 대중의 공감대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유튜브에서 먼저 감지됐다. 산악회 중년 남성들의 모습을 담아낸 ‘한사랑 산악회’, 05학번 시절에 벗어나지 못하는 ‘05학번 이즈백’ 등을 선보이고 있는 <피식대학> 채널은 구독자 100만 명을 넘어섰다.

또 중소기업 신입사원 조충범의 직장 생활 적응기를 그린 웹오피스 드라마 <좋좋소>도 유튜브 공개된 지 2주 만에 100만 명을 넘어섰고, 왓챠 등 OTT에 IP 저작권이 팔리며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었다. 과거 예능이든 드라마든 판타지를 극대화해 시청자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했다면 현실을 고증한 콘텐츠가 주목받고 있는 셈이다. 운신의 폭이 좁은 TV에서도 나름의 ‘꾸미지 않은 현실’을 파고들기 위한 시도를 벌이고 있다.

 대개 관찰 예능과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는 사랑과 조건 모두 완벽한 연애와 결혼, 행복한 가정과 육아 등이 ‘온전한 전형’인 것처럼 카메라에 담아낸다. 연애와 결혼을 정상성의 잣대로 강조한다. 프로그램의 구성도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는 남녀 출연자들의 세련된 말과 그럴듯한 표정 위주로 비추면서 사랑을 끊임없이 정의 내린다. 스타 부부나 일반인 부부의 결혼과 육아 예능도 비슷하다. 육아의 고충과 어려움을 토로하지만, 은밀하게 부의 과시가 곳곳에서 나타난다.

포털 사이트에서 남녀 출연자의 직업과 집안이 가십거리가 되고, 프로그램에서 스치듯 나온 가구, 식기, 육아용품의 브랜드가 검색어 순위에 오르는 모습은 대중의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안기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판타지의 유효기간은 짧고, 현실의 시간은 길다.

그래서인지 방송에서 ‘결핍’, ‘불완전함’ 등의 키워드를 앞세운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그럴듯한 판타지를 재생산하기보다 누구든 겪을 수 있는 현실을 소환한다. 최근 다양한 예능에서 ‘돌싱’, ‘이별’을 주목하고 있는 것도 연장선이다. 티빙 오리지널 <환승연애>, 카카오TV 오리지널 <체인지 데이즈>,  JTBC <용감한 솔로 육아-내가 키운다>, MBN <돌싱글즈>, 방송을 앞둔 SBS<신발 벗고 돌싱포맨> 등에서는 ‘이혼’, ‘헤어진 연인’에 관해 다룬다. 앞서 TV조선<우리 이혼했어요>가 방영되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매년 이혼 건수는 늘어나는 상황이지만, TV에서는 여전히 이혼을 금기시하면서도 간혹 ‘돌싱’을 웃음거리로 삼는다.

티빙 오리지널 콘텐츠 '환승연애'
티빙 오리지널 콘텐츠 '환승연애'

지난 11일 첫 방송된 <돌싱글즈>에서는 한번 다녀온 남녀 출연자들이 이혼 과정을 가감 없이 밝힌다. 자신이 겪은 상처와 결핍을 고백한다. 육아 예능도 한 발짝 나아갔다. <내가 키운다>에서는 이혼 후 홀로 아이를 키우게 된 출연자의 솔로 육아기를 그린다. 이들은 이유 없이 숨어야만 했던 싱글 부모의 마음, 사회의 왜곡된 시선을 꾸밈없이 전한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도 ‘만남’보다 ‘헤어짐’을 주목한다. 그야말로 연애와 결혼을 쟁취하기 위한 방식이나 장치를 제쳐두고 어긋난 관계의 파장을 다룬다. <환승연애>에서는 출연자들이 재회한 전 연인이 새로운 이성을 탐색하고 만나는 과정을 그리고, <체인지 데이즈>에서는 이별을 앞둔 연인이 출연한다.

이들 프로그램은 <하트 시그널>, <썸바디>처럼 청춘남녀의 연애와 설렘을 증폭시키기보다 이미 관계가 끝나버린 혹은 서로 엇갈린 이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인다는 점이 현실감을 부여한다. 일각에서는 헤어진 연인과 동고동락한다는 데 우려도 제기됐지만, 출연자의 감정 변화를 자극적이지 않게 그려낸다. <환승연애>는 출연자들이 전 연인의 데이터 파트너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알려주기 싫어하는 등의 이중적인 심리를 담아내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끄는 데 성공했다. 

유튜브에서는 ‘하이퍼 리얼리즘’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방송가에서는 화려한 판타지의 장막을 거둬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정보의 범람 속에서 갈수록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어려워지면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고 싶은 욕구가 높아지고 있다. 기존에 봤던 형태와는 다른 목소리와 가능성 등을 품은 콘텐츠에 대중이 공감대를 보내고 있다. 연애, 결혼, 육아 등이 비슷하게 보여도 결국 삶의 모양과 형태가 다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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