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왕성 킬러'는 죄가 없다
상태바
'명왕성 킬러'는 죄가 없다
[비필독도서 46]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
  • 오학준 SBS PD
  • 승인 2021.08.06 17: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호라이즌호의 편 유튜브 영상 갈무리.
내셔널지오그래픽 뉴호라이즌호의 대장정 편 유튜브 영상 갈무리.

[PD저널=오학준 SBS PD] 명왕성이 행성 지위를 잃은 지 15년, 나는 여전히 시카고 애들러 천문대에서 산 자석을 냉장고에 붙여두고 있다. ‘Revolve in Peace’라고 쓰여있는 그 자석은 소심한 항의 차원에서 구입했던 것인데, 2006년 1월 뉴호라이즌스호가 태양계의 가장 마지막 행성을 탐사하러 떠난다는 사실에 들떠 있던 나를 얼마 가지 않아 크게 실망시킨 장본인들이 항의 대상이었다.

 그 중 한 명이 천문학자 마이크 브라운이다. 그는 명왕성보다 멀리서 태양을 공전하는 천체들을 발견한 사람인 동시에, 명왕성의 행성 지위를 박탈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명왕성 살해자(Pluto Killer)’다. 최근 번역된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는 열 번째 행성을 발견한 사람으로서 부와 명예를 누릴 기회를 스스로 걷어찬 혐의를 받는 그의 유쾌한 변론 요지서다.

그의 항변에 따르면 그는 처음부터 명왕성을 죽일 의도가 없었다. 오히려 ‘마샤는 매주 월요일마다 찾아온다. 그리고 정오까지 머물다 간다, 주기적으로(Martha visits every Monday and just stays until noon, period)’라는 문장으로 행성들의 순서를 외우던 우주에 관심 많은 아이였다. 그의 목표는 단지 명왕성 너머에 있을 또 다른 행성의 존재를 찾는 일이었다.

1990년만 해도 천문학자들은 명왕성 너머의 행성 X같은 건 없다고 생각했다. 태양계의 모든 천체들은 확인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요소가 없다면 새로운 분류를 만들 필요도 없었다. 한 번 행성은 영원한 행성일 뿐이었다. 1992년 가설상으로만 존재했던 카이퍼대(Kuiper Belt)에 속하는 소행성이 발견되고, 뒤이어 수많은 천체들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태양계에 여전히 발견하지 못한 천체들이 남아 있다고 믿었던 마이크 브라운 역시 각고의 노력 끝에 명왕성 너머에서 움직이는 콰오아, 마케마케 등의 천체들을 발견한다. 그 중 2006년 그가 발견한 에리스는 큰 불화를 일으켰다. 발견 당시 명왕성보다 더 무겁고 큰 녀석이 더 멀리서 태양을 공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명왕성이 행성이라면, 에리스도 행성이 아닐 이유가 없었다.

마이크 브라운의 저서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
마이크 브라운의 저서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

문제는 이런 녀석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는 데 있었다. 에리스가 열 번째 행성이라면 행성은 무한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에리스가 행성이 아니라면, 그와 비슷한 명왕성 역시 행성이 아니어야 했다. 화성과 목성 사이에서 발견된 세레스가 행성에서 소행성으로 다시 분류되었던 사례를 따른다면, 명왕성이라고 예외를 둘 수는 없었다. 

평생을 노력해서 찾아낸 천체를 행성이 아니라고 선언하는 일은 쉬웠을까? 명왕성을 행성으로 남겨두려는 사람들도 많았으니 그 뒤에 숨었다면 그는 열 번째 행성의 발견자라는 특혜를 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태양계에서 크기가 큰 소수의 중요한 천체’라는 행성의 개념이 가지는 이점을 흐트러트린다고 생각했다. 

2006년 국제천문연맹(IAU)에서 행성의 기준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논쟁이 벌어졌을 때, 그는 에리스와 명왕성 모두 행성으로 분류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태양계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확대되면서 벌어지는 필연적인 결과일 뿐이었다. 그는 단지 태양계의 형성 과정을 좀 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한 분류를 요청한 것이었다. 다수의 천문학자들도 그와 의견이 같았다. 명왕성은 그렇게 죽었다. 여전히 멀쩡히 태양 주위를 돌며 뉴호라이즌스호와 조우했지만.

여전히 그는 악평에 시달리지만 그의 글은 자신의 발견을 도둑질하려는 과학자들을 이야기할 때만 빼면 시종일관 유쾌하다. 그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명왕성이 행성의 지위를 잃은 건 괴짜 물리학자의 악의 때문이 아니라 과학의 지식 축적 과정상 그렇게 되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책의 원제(How I Killed Pluto and Why It Had It Coming)가 말해주듯이, 명왕성의 운명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행성만큼이나 사랑스러운 딸과 아내를 만나는 황홀한 순간들을 언급하는 부분들과, 연구실을 둘러싼 풍경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부분들은 이 책을 딱딱한 교양도서가 아니라 하나의 에세이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의 인간적인 매력과, 위트가 넘치는 말투는 사람들의 기대를 배신하는 진실을 말해야 할 때 과학자가 진실을 말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한다. 그의 변론에 이미 고개를 끄덕이고 있기 때문이다. 자석은 기념이니까 그대로 내버려두기로 하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