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국드라마' 프레임에 지배된 '조선구마사' 사태...왜 침묵할 수밖에 없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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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국드라마' 프레임에 지배된 '조선구마사' 사태...왜 침묵할 수밖에 없었나
한국PD연합회·한국방송작가협회, 17일 ‘역사적 진실과 콘텐츠의 상상력’ 토론회 개최
'조선구마사' 제작 중단 5개월만에 사회적 함의 과제 되짚어
"역사왜곡 전제 성립 안되지만...대중정서 인지 못한 제작진 책임도 커"
  • 김승혁 기자
  • 승인 2021.08.18 00: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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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한국PD연합회와 작가협회 공동 주최로 열린 '역사적 진실과 콘텐츠의  상상력' 토론회가 한국PD연합회 강의실에서 열렸다. ⓒ한국PD연합회
17일 한국PD연합회와 작가협회 공동 주최로 열린 '역사적 진실과 콘텐츠의 상상력' 토론회가 한국PD연합회 강의실에서 열렸다. ⓒ한국PD연합회

[PD저널=김승혁 기자] 성난 여론에 밀려 SBS <조선구마사> 제작이 중단된 지 5개월만에 학자들과 현업 방송인들이 모여 <조선구마사> 사태가 남긴 과제를 되짚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PD연합회와 한국방송작가협회는 17일 ‘역사적 진실과 콘텐츠의 상상력’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어 <조선구마사>가 방송계에 안긴 숙제를 공론장으로 끌어올렸다. 

<조선구마사>는 지난 3월 22일 첫 회에서 역사적 실존인물을 왜곡하고 중국 음식과 중국풍의 소품으로 시대적 배경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거센 비판에 휘말렸다. '동북공정 드라마'라는 낙인이 찍힌 <조선구마사>에 대한 광고 불매운동이 확산됐고, 결국 2회만에 제작 중단이 결정됐다. 

한국방송사상 시청자들의 광고주 압박으로 드라마가 폐지된 경우는 <조선구마사>가 처음이다.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주창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는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에 제작 중단 압박으로 방영이 중단된 <파천무>(1980), 박정희 전 대통령, 북한 김일성 주석 묘사로 조기 종영한 <여명의 그날>(1990),<제3공화국>(1993)는 정치권력이 밀접하게 연관된 것과 달리 <조선구마사>는 최초로 시청자 개입으로 폐지된 사례”라고 말했다.  

<조선구마사>는 역사왜곡 논란으로 직격탄을 맞았지만, 주창윤 교수는 <조선구마사>는 역사왜곡 전제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의견이다. 주 교수는 “여말선초를 배경으로 태종, 양녕, 충녕 등 실존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역사성과 사실성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조선구마사> 판타지 액션으로 역사적 사건과는 무관한 작품”이라며 “사실이 아닌 것을 역사로 조작하려는 시도를 역사왜곡이라고 하는데, <조선구마사>는 동기나 목적이 없기 때문에 성립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작가의 인물 설정과 PD의 연출 영역을 구분해 시청자의 반응을 분석한 주 교수는 “작가가 다른 등장인물처럼 태종 양녕 등의 실존인물도 이름을 바꿨으면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면서 “중국풍의 연출 즉 역사 재현이 큰 논란이 됐는데, 앞서 <빈센조> <여신강림> 등에서 등장한 중국 비빔밥 중국 컵라면 등이 동북공정 논란을 지핀 것과 맞물린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휘발성이 강한 젠더 이슈 등에서 보이는 일방적인 여론 형성의 문제가 <조선구마사> 사태에서 나타났다는 점도 주목해볼 지점이다.

주 교수는 “동북공정을 정당화하는 매국드라마’라는 음모론적 프레임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시작해 인터넷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면서 광고주, 방송사를 압박했다”며 “‘매국드라마’라는 프레임은 담론이 경합할 수 있는 시간도 갖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지배담론화하고, 다른 의견을 갖는 대중과 지식인, 전문가 집단은 책임을 회피하거나 침묵했다”고 꼬집었다.    

주창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주창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가 17일 한국PD연합회와 한국방송작가협회 주최로 열린 ‘역사적 진실과 콘텐츠의 상상력’ 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있다.ⓒ한국PD연합회

<녹두꽃>‧<정도전> 등 다수의 사극을 집필한 정현민 작가는 당시 사회적으로 형성된 분위기에 대해 “그 많은 기사 속에서 창작자 입장을 반영하는 워딩을 거의 본적이 없다”며 “역사를 정면으로 다루고자 하는 작가로 앞으로 나도 저렇게 당할 수도 있겠다는 위압감이 상당히 컸다”고 공감을 표했다. 

정 작가는 “<조선구마사>에서 제기된 문제가 향후 역사왜곡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면 작가들은 대본을 쓸 수 없다”고 토로하면서 “퓨전 사극은 실존인물을 등장시키지 마라는 의견이 있는데, 창작자의 입장에서 보면 잘 알려진 사실이나 여러차례 극화된 것들을 비틀고 상상력을 펼쳤을 때 더 흥미를 끌기도 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명성황후> 등을 연출한 윤창범 KBS PD도 “동북공정 등으로 소비자가 중국에 반감이 있는 것은 맞지만, <조선구마사>는 역사적 진실과는 다른 판타지 드라마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왜곡이라고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본다”며 “제작자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합리적인 과정으로 콘텐츠를 만든다. 일부 왜곡된 시선과 주장에 전체가 매도되는 것은 콘텐츠 제작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큰데, 앞으로 치열한 논쟁을 거쳐 해결해나가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역사 소재 드라마를 바라보는 대중의 관점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콘텐츠 강국 반열에 올랐지만 왜 사극만은 예전과 똑같은 문법으로 바라볼까. 역사를 정치화하다 보니 역사를 관망하거나 편하게 못보는 측면이 있다”며 "과거를 중요시하는 ‘민족주의 매트릭스’에서 벗어나 드라마적 상상력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회에선 <조선구마사> 사태를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주창윤 교수는 “살육 장면을 담는 등의 과도한 표현방식과 중국과 일본에 대한 대중정서를 인지하지 못한 제작진의 문제도 있다”며 “대중은 우리나라 역사를 자신의 정서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거꾸로 말하면 배타적 정서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진지함’을 제작진은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정 작가는 “방송인들이 성찰할 부분은 분명히 있다”면서 “갈수록 사극 제작환경이 안 좋아지는데, 제작진은 대중들이 어디에서 분노했는지 자성해야 한다. 아울러 창작자들은 역사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제작자와 시청자 간의 괴리가 드러났는데, 그렇다면 이 괴리는 누가 만들었는가”라며 “허구에 상상력을 더하고 자극적인 면을 찾아가면서 역사의 진지함을 멀리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사극은 역사에 빚진 면이 있는데 그만큼 대중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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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tra 2021-09-07 20:26:24
dog sound를 산뜻하게 돌려서 말하네 술 마시고 운전석에 앉았지만 시동은 안 걸었다 수준인데?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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