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듯 능동적인 라디오
상태바
무심한 듯 능동적인 라디오
[라디오 큐시트]
  • 박재철 CBS PD
  • 승인 2021.10.18 14: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PD저널=박재철 CBS PD] 내 책상 위에는 구형 라디오가 한 대 놓여 있다. 그 라디오는 말 그대로‘가만히’ 있다. 연필꽂이에 꽂혀 있는 사은품 펜처럼 습득의 순간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 채로. 
 
딱히 자신의 효능감을 내세우려 하지 않는다. 다른 것들의 존재 값을 빼앗지도 않는다. 손을 뻗으면 쉽게 닿을 거리에 그냥 조용히 있다. 하나의 정물처럼 풍경의 한 부분을 이룰 뿐이다. 

혹, 누군가 라디오가 어떤 매체냐고 묻는다면, 난 ‘가만히’라고 하나의 부사로 답하고 싶다. 라디오는 소리 없이 존재하면서도 소리를 내야 존재하는 미디어다. 일견 모순돼 보이는 이 커뮤니케이션 툴은 만만하기까지 하다. 접근도 만만하고 취급도 만만하다. 어쩌면 라디오의 그 만만함이 지금까지 생명력을 이어온 조건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라디오의 특성을 닮은 시가 한 편 있어 소개한다.

조용한 일

        -김사인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 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좋은 시는 쉬운 말로 어려운 순간을 포착한다. ‘어려운 순간’이라 함은, 겪기는 했으되 그 참뜻을 선뜻 알아채지 못하고 흘려보내는 타이밍이다. 마냥 흘려보내는 그 시간의 유속에는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는 삶의 비의(秘意)가 섞여들어 같이 떠내려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내 옆에 그냥 있어 주는 일, 그 조용한 일의 소중함은 쉬이 잊힌다. 이 시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시적으로 형상화했다. ‘그냥 있어 볼 길밖에 없는’ 이들에게 그 옆에 나란히 함께 있어 주는 건 라디오의 본령으로도 읽힌다. 

라디오를 애정하는 어떤 이는 라디오를 ‘무심한 능동태’라 했다. 한 번에 와 닿지 않는 표현이라 내 식대로 곱씹었던 기억이 있다. 무심함 뒤에 수동태가 아닌 능동태가 이어져서다.

일상생활을 이루는 수많은 익숙한 소음들처럼 라디오도 불편하지 않는 소음으로 우리 곁에 공존해왔다. 때론 일할 때 함께 하는 노동요로, 또 때론 세상 소식을 전하는 파수꾼으로, 그렇게 그 자리에 오랫동안 있어 왔다. 되짚어 보면, 무심함의 외양을 띠고 존재해온 라디오는 시나브로 청자와의 정서적 거리를 좁히며 능동적으로 우리의 일상을 파고든 셈이다. 

무심한 물방울이 바위에 홈을 내듯, 하루에도 수차례 온오프를 반복하며 한 곡의 음악으로, 하나의 사연으로, 한 줄의 촌평으로 청자와의 관계에 교류의 홈을 파내는 운동 에너지를 라디오는 만들어 왔다. 매일의 지속과 반복으로 ‘공감과 이해’, ‘소통과 친근’이라는 능동적인 위치 에너지를 확보했다. 

안팎으로 “뉴미디어 시대, 라디오의 살 길?”이란 주제에 자주 부딪힌다. 이 거북하고 다루기 까다로운 문제에 딱 부러지는 해답은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한결같다. “못 찾겠다, 꾀. 꼬. 리!” 

다만, 이 질문이 라디오의 본질을 한 번 더 떠올려보는 계기이길 바라본다. ‘가만히’ 누군가의 옆에 무심히 함께 해주는 매체, 그 존재 양식의 능동성을 믿어보는 기회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