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색깔', 가족이 되어가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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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색깔', 가족이 되어가는 시간
  • 신지혜 시네마토커·CBS <신지혜의 영화음악> 진행
  • 승인 2021.10.2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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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족의 색깔' 스틸컷.
영화 '가족의 색깔' 스틸컷.

[PD저널=신지혜 시네마토커·CBS <신지혜의 영화음악> 진행] 한창 들떠 있던 공기의 온도가 살짝 내려앉는 때면 슬슬 온기를 찾아 마음을 이리 저리 돌리게 된다. 그럴 때 생각나는 것은 무엇일까. 기타노 다케시는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슬쩍 갖다 버리고 싶은 것’을 가족이라 했는데 일면 그렇게 떨어져 나오고 싶지만 힘들 때면 가장 먼저 생각나고 기댈 수 있는 것이 또 가족이 아닐까.

기차를 타고 할아버지 댁으로 가는 소년 슌야. 그 곁에는 엄마라기엔 너무나 젊고 가족이 아니라기엔 너무나 친밀한 여자가 있다. 역에 다다를 즈음 슌야는 여자를 깨운다. “아키라짱. 일어나. 다 왔어.”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운전사 오쿠조노는 자신의 집 앞에서 날이 저물도록 자신을 기다리던 손님 두 명을 발견한다. 낮에 자신의 열차에 탔던 여자와 소년이다. 낯선 얼굴의 어린 여자는 자신을 아들 슈헤이의 아내라고 소개하고 슈헤이의 부고를 알린다. 오래도록 소식을 끊고 살았던 아들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슈헤이와 재혼한 아키라와 슈헤이의 사별한 처가 낳은 아들 슌야는 오쿠조노의 품 안으로 들어온다. 

퇴직을 앞두고 있는 오쿠조노. 그를 대신할만한 운전사를 찾는 것이 쉽지 않고 요즘 세상에 한량짜리 철도 운전사를 새로 뽑아 교육시키는 일도 쉽지 않은 터라 그의 직장인 오렌지 철도에서는 오쿠조노가 계속 일을 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눈치다. 어릴 때부터 기차를 좋아했던 슌야는 불쑥 아키라에게 기차 운전사가 되면 좋겠다고 말하고 슌야의 엄마가 되어 주기로 마음먹은 아키라는 입사 지원과 교육을 거쳐 운전사가 된다. 

하지만 오쿠조노, 아키라, 슌야가 진정한 가족이 되는 길은 아직 멀기만 하다. 끝없이 이어진 철길처럼. 영화 <가족의 색깔>에서 세 사람은 진짜 가족이 되기 위해 갈등을 겪고, 그 갈등은 서로에게 상처를 남긴다. 하지만 오쿠조노네는 서로를 내팽개치지 않는다.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그 사과를 받아들일 것을 상대에게 강요하지도 않는다. 이미 자신의 잘못으로 가족 같은 사람이 상처를 입었으므로 그의 마음이 아물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서로 알고 있다.

그렇게 오쿠조노와 슌야, 아키라는 서로의 입장에 서 보고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서로의 가족이 되고자 손을 내민다. 물론 영화 속에서 할아버지와 슌야는 혈육 관계임이 틀림없지만 엄밀히 말해 아키라는 슌야와 아무 상관이 없는 관계이다. 오쿠조노 할아버지와는 더더욱 아무 관계가 없다. 

하지만 아키라가 슌야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보살피려 하는 것은 그녀의 말을 빌자면 ‘슈헤이의 결혼하기로 결심한 것은 슌야의 엄마가 되어 주겠다고 결심한 것’이기에 아키라는 자신의 말과 마음에 책임을 지려 한다. 

'가족의 색깔' 스틸컷.
'가족의 색깔' 스틸컷.

여기에서 각자의 입장을 살펴 볼 필요가 있겠다. 아키라는 사실 자신의 삶을 새롭게 꾸려 나가도 아무런 책임이 없고 아무런 비난을 받을 일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어린 슌야의 엄마가 되어 주기로 결심한 이상 소년을 그대로 둘 수 없었던 것일 게다. 그래서 타인으로부터 ‘몇 살에 아이를 낳았길래’ 식의 힐난과 비방의 눈초리를 받고도 입술을 꼭 깨물며 슌야의 엄마의 위치에 서 주고 슌야의 속상함과 슬픔에서 비롯된 작은 폭력에도 물러서지 않는 것이다. 

비록 아키라가 슌야를 직접 낳은 것은 아니지만 이미 충분히 아키라는 슌야의 엄마이며 엄마로서의 역할과 위치를 지켜 나가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누군가와 연을 맺는다는 것은 이렇듯 책임을 수반하는 것이다. 

슌야의 입장에서도 우리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제 막 열 살이 되어 1/2 성인식을 하게 된 소년. 생모는 저를 낳다 돌아가시고 아빠마저 심장에 문제가 생겨 겨를 없이 돌아가시고 남은 혈육이라고는 생전 보지도 못했던 시골 마을의 할아버지뿐. 슌야가 손을 잡고 매달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혈연관계가 없는 아키라이니 어린 아이의 입장에서 얼마나 절박하고 얼마나 겁이 나는 일이겠는가. 그런 슌야의 어린 마음이 스스로의 슬픔과  타인에게서 비롯된 아픔으로 범벅이 될 때 심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인 아키라에게 뻗어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쿠조노 할아버지의 입장에서도 생각해보면 일면 기가 막히다. 소식이 끊긴 아들은 어느 날 재가 되고 돌아오고 어리디 어린 여자와 일면식도 없는 손자가 찾아 왔으니. 하지만 그는 그대로 두 사람을 보채거나 닦달하지 않는다. 함부로 조언을 하거나 제 기분에 못 이겨 변덕을 부리지도 않는다. 그저 어른의 위치에서 두 사람이 스스로 내외면의 상처를 잘 다스리고 제자리로 찾아갈 수 있도록 곁에 있어 준다. 그렇게 세 사람은 가족이 된다. 

가족이라는 것, 가족 구성원에 대한 이야기와 생각과 고민이 많아지는 지금의 시대, <가족의 색깔>은 진짜 가족의 의미를 느끼게 해 주는 영화이다. 이런 온기가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지나치게 신파조도 아니면서 서걱거리거나 삭막하지 않게 ‘가족의 해체’를 이야기하면서 다시 ‘가족의 재구성’을 제안하는 영화 <가족의 색깔>은 충분히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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