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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1.26 10:53
  • 수정 2021.12.01 11:16

'개그우먼' '국가대표' 비춘 카메라 마지막에 KBS로 향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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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뉴스룸' 편으로 KBS 여성 아카이브 다큐멘터리 시리즈 마친 이은규 PD
‘개그우먼’ 편 호응에 여성 연작 다큐 탄생…“양분된 젠더이슈 공영방송 역할 고민”

KBS '다큐인사이트'의 여성 아카이브X인터뷰 시리즈.
KBS '다큐인사이트'의 여성 아카이브X인터뷰 시리즈.

[PD저널=장세인 기자] "BBC 50:50 프로젝트처럼 미디어는 사회 구성원의 비율을 그대로 반영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번에 KBS 사장 후보자들의 경영계획서를 봤더니 ‘약자인 여성에 대해 우리가 목소리를 더 내줘야지’ 하는 식이었다. 아직 한참 부족하다는 메시지를 KBS를 경영하는 윗선에 보내고 싶었다." 

KBS <다큐인사이트> 여성 아카이브X인터뷰 다큐멘터리 시리즈가 '뉴스룸'편으로 끝난 건 어쩌면 필연적이었다. 

지난해부터 <개그우먼><윤여정><국가대표> 편을 통해 대중문화·스포츠계에서 고군분투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았던 이은규 PD는 시리즈를 마치면서 KBS 내부로 카메라를 돌렸다.  

25일 만난 이은규 PD는 "공영방송은 젠더이슈 등 극단적으로 갈리는 사회 문제를 어떤 위치에서, 어떻게 말해야 할까. 시청자들의 양분된 반응을 보면서 위축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이야기를 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며  "<뉴스룸> 편에서 ‘서로 싸우는 게 아니라 구조적인 시스템과 싸우는 것’이라는 BBC 서울특파원 로라 비커의 말이 답변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태웅 KBS PD가 <88/18><모던타임즈> 등을 통해 아카이브 다큐멘터리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면 이은규 PD는 인터뷰에 집중해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여성 아카이브 다큐멘터리를 선보였다. 내부에서 의외의 소재라는 평가가 나왔던 <다큐멘터리 개그우먼>이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으며 여성 다큐 연작 시리즈가 탄생할 수 있었다.     

지난 18일 방송된 <뉴스룸>은 '남선여후'(남성이 먼저 보도, 여성이 뒤에 보도),'남중여경'(남성은 무게 있는 뉴스, 여성은 가벼운 뉴스), '남오여삼'(남성 앵커는 50대 이상, 여성은 30대 이하) 등 성차별적 관행이 뿌리 깊었던 뉴스룸의 문제를 여성 기자들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전달했다. "KBS! 옳은 일이라는 걸 알잖아요"라는 로라비커 특파원의 일침은 KBS 성평등 인식을 제고해야 한다는 다큐의 메시지가 압축적으로 드러난다.  

이은규 PD는 “국제시사팀에 있을 당시 일본에서 졸혼이 사회적인 트렌드라고 기획을 냈는데, 이게 무슨 아이템이 되냐는 시선이 있었다. 내부적으로 특정 수치를 목표로 하고 여성 임원 비율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지만, 상대적으로 숫자가 부족하기 때문에 중요한 회의 자리에 가면 의사 결정자는 대부분 남성인 경우가 많다. 의사결정자들의 경험이나 시각이 더 다양하게 열려있으면 달라질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보통 사람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는 이 PD는 "30대 여성으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제 생애주기에 맞춰 다큐를 제작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은규 PD와의 일문일답.

KBS '다큐인사이트 - 다큐멘터리 뉴스룸' 방송화면.
KBS '다큐인사이트 - 다큐멘터리 뉴스룸' 방송화면.

-여성 아카이브 다큐멘터리 시리즈가 ‘뉴스룸’편으로 막을 내렸다. ‘개그우먼’ 방송 이후 쏟아진 시청자들의 요청에 힘입어 연작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드문 사례다. 시리즈를 마친 소감은 어떤가.

“다큐멘터리가 반향을 얻어 연작으로 제작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개인적으로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개그우먼을 조명하는 다큐 소재를 처음 냈을 때도 공모 심사위원들이 의외의 소재라는 반응을 보였는데, 방송이 나간 뒤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았다. 호응에 힘입어 열 편짜리 연작 기획안을 다시 냈고, 이 가운데 추린 세 편을 제작했다."  

-네 편은 보이지 않은 편견과 차별에 맞서 싸웠던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각 편의 주제·출연자 선정 등에서 원칙이 있었다면.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했다. KBS 아카이브에 충분한 영상자료가 있고, 그 분야에 충분한 경력을 가진 출연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했다. 처음엔 가수, 드라마 작가 등 각 직군별로 접근을 했는데,  아무래도 많이 알려진 유명인들로 정해졌다." 

-여성 다큐 시리즈는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하는 방식으로 주목을 받았다. 네 편의 다큐를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

“여성 인터뷰 아카이브 프로젝트라고 이름을 붙였듯, 기록할만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당사자의 입을 통해 전달하고, 동시대를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응원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임파워링(empowering·더 강력한 영향력과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표현하는데, 나 혼자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구나, 나도 기운을 내야지 이런 힘을 받았으면 했다. 네 편을 만들 때 '시청자들이 보고 나서 어떤 감정이 들까'를 가장 염두에 뒀다."

-여성 아카이브 시리즈는 제작진도 여성 위주로 꾸렸는데, 주제의식을 공유하는 스태프 구성이 제작 현장에서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무엇이 달랐는지 궁금하다.

“연출, 작가진, 촬영, 음악감독, 후반 색보정 감독 등 메인 스태프를 모두 여성으로 꾸리려고 일부러 노력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제대로 밥 한 번 먹지 못하고, 각자 일을 했지만. 역차별이 아니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는데, <개그우먼>에서 송은이씨가 한 말처럼 '놀이터' 같은 개념이다. 남자들끼리만 모여서 놀 때의 재미와 여자들끼리 모였을 때의 재미, 섞였을 때의 재미가 다르다. 제작을 하면서 여자들만 모여서 놀았을 때 어떤 결과물이 나오는지 보고 싶었다. 좀 더 선명하게 얘기할 수 있었고, 그래서 들리는 목소리도 있었던 것 같다.”

KBS '다큐인사이트 - 다큐멘터리 뉴스룸' 방송화면.
KBS '다큐인사이트 - 다큐멘터리 뉴스룸' 방송화면.

-네 편 모두 시청자들의 호응이 컸다. 

"'국가대표' 편은 반응이 과해서 놀랐다. 너무 놀라서 숨어 있었다.(웃음) 출연자분들에게 피해가 가면 안 되니까. 시의적절한, 의미 있는 질문에 대한 반응이라고 받아들였다. 응원해준 분이 많았지만, 반대 목소리도 있었기 때문에 빨리 가라앉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뉴스룸’으로 방향을 돌렸다. 공영방송은 젠더 이슈 등 극단적으로 갈리는 사회 문제를 어떤 위치에서, 어떻게 말해야 할까. 양분된 반응을 보면서 위축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이야기를 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뉴스룸> 편에서 ‘서로 싸우는 게 아니라 구조적인 시스템과 싸우는 것’이라는 로라 비커의 말이 답변이 됐으면 좋겠다." 

-<뉴스룸> 편에서는 특히 뉴스 제작 인력의 다양성을 강조했다. 

“다양성은 BBC측이 말한 것처럼 사회구성원의 비율을 얼마나 충실하게 반영하느냐의 문제다. 여성을 약자가 아닌 사회구성원으로 바라봐야 하는데, 아직까지 KBS도 많이 부족하다. 이번에 KBS 사장 공모에 지원한 사장 후보자들의 경영계획서를 봤더니 ‘약자인 여성에 대해 우리가 목소리를 더 내줘야지’ 하는 식이었다. 아직 한참 부족하다는 메시지를 KBS를 경영하는 윗선에 보내고 싶었다.”

-‘뉴스룸’ 편은 방송사 내부의 문제를 다뤘다는 점에서 더 조심스러웠을 것 같다. 기자들은 섭외 요청에 흔쾌히 응했나.

“사실 내가 속해 있는 팀이 아니라 보도국, 예능국, 스포츠국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는데, 외부인의 시각이라 조심스럽고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럼 너네는 얼마나 잘하고 있어? 라고 할 수도 있고. 동시대에 공유해야 하는 이야기라고 부탁했고, 세 분의 기자도 의미 있는 작업이라며 모두 기꺼이 응해주셨다.”

-과거보다 여성 비율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방송사의 성평등 지수를 높여야 한다는 요구가 여전히 높다. 일하면서 직접 느끼는 체감도는 어떤가.

“개인적인 경험보다는 방송이 만들어지는 맥락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 과거엔 여성 아이템은 주로 5월에 방송됐다. ‘딸들을 위한 목소리’라며 가정의 달에만 보여준 것이다. 국제시사팀에 있을 당시 일본에서 졸혼이 사회적인 트렌드라고 기획을 냈는데, 이게 무슨 아이템이 되냐는 시선을 받기도 했다. 내부적으로 그만큼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의 시각이 중요하다.”

-‘개그우먼’편에 나온 김숙씨의 인터뷰처럼 세상이 바뀐 게 아니라 시대를 바꿔온 여성들의 서사가 다큐멘터리에 담겼다. 여성 아카이브 시리즈도 긍정적인 변화의 물꼬를 튼 다큐멘터리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반향이 없었다면 연작 시리즈 제작이 어려웠을 것이고, 또 앞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연출자들에게 좋은 선례가 될 수도 있다.

“이 다큐멘터리가 선례가 됐으면 좋겠다. 사내에서도 응원해주는 분위기와 너무 위험한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 반반인 이유는 잘 몰라서,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다. 그런(부정적인) 반응들을 마주할 때 더 논리적으로 반박 불가하게 완성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반응들에 힘입어 용기를 내는 목소리가 늘었으면 좋겠다.”

-<추적60분> <KBS스페셜>팀에 있을 때에도 디지털 성범죄나 여성 고용 문제 등을 조명했다. 앞으로도 여성 문제에 천착하는 프로그램을 선보일 계획인지, 요즘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가 있다면 무엇인가.

“유명인을 통해 젠더 이야기의 폭을 어느 정도 넓히고 싶었는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보통 사람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30대 여성으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관심이 많고, 제 생애주기에 맞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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