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하다 죽은 동물 '비일비재'..."위험한 낙마 장면 줄이고, 안전장치 마련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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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하다 죽은 동물 '비일비재'..."위험한 낙마 장면 줄이고, 안전장치 마련 필요"
KBS ‘태종 이방원’ 동물 사망 사고에 “명백한 동물학대” 비판
농림축산식품부 '출연 동물 보호 가이드라인 제정' 나서
“"낙마장면 미리 찍거나 카메라 각도로 무리한 촬영 피할 수 있어"
  • 손지인 기자
  • 승인 2022.01.26 1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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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동물보호연합이 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별관 앞에서 '드라마 태종 이방원 말 사고 논란'과 관련 추가 고발 2차 기자회견을 한 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동물보호연합이 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별관 앞에서 '드라마 태종 이방원 말 사고 논란'과 관련 추가 고발 2차 기자회견을 한 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PD저널=손지인 기자] 낙마 장면을 촬영한 말이 죽은 KBS <태종 이방원> 사태로 출연동물이 안전한 드라마 제작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태종 이방원>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출연동물 보호 가이드라인 마련과 함께 제작진의 의식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1일 방송된 <태종 이방원> 낙마 장면을 보고 동물권 단체들이 제기한 '말 학대가 의심된다'는 의혹은 사실로 드러났다. 동물자유연대 등은 말을 강제로 쓰러뜨리는 촬영 기법을 사용해 말이 죽었을 것이라는 주장했는데, KBS는 뒤늦게 "말이 촬영 일주일쯤 뒤에 사망했다"고 인정했다.    

KBS는 지난 20일에 이어 24일 두번째 사과문을 내고 "생명 윤리와 동물 복지에 대한 부족한 인식이 불러온 참사"라며 "다시는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동물의 안전과 복지를 위한 제작 관련 규정을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성난 여론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KBS 시청자권익센터와 <태종 이방원> 시청자 게시판에는 KBS가 생명을 하찮게 여겼다며 <태종 이방원>을 폐지해야 한다는 글들이 쇄도하는 중이다. 지난 21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방송 촬영을 위해 안전과 생존을 위협당하는 동물의 대책 마련이 필요합니다’는 26일까지 14만 3천 명이 넘는 동의를 얻었다.

파문이 확산되는 이유는 폭력적인 낙마 촬영 기법이 이번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다. 

한국동물보호연합은 26일 KBS 앞에서 2차 기자회견을 열고 KBS가 <각시탈> <정도전> <연모> 등 드라마에서도 관행적으로 동물학대 촬영 기법을 사용했다며 김의철 사장을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사극 촬영 경험이 있는 제작진도 폭력적인 낙마 촬영 방식으로 동물이 부상당하거나 죽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입을 모았다.  

사극 연출 경험이 있는 A PD는 “이번 논란 장면과 같은 스턴트 액션은 거의 보편적으로 그렇게 찍는다. 줄을 묶어서 갑작스럽게 잡아당기거나 충격을 줘서 넘어지게 한다. 빨리 찍어야 한다는 이유로, 그림이 안 나온다는 이유로 빨리 뛰게끔 채찍질도 한다. 결국 엄청난 스트레스와 학대 등을 받아 죽는 경우가 많다”며 “동물의 생명과 안전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인간의 잔인한 사고방식과 촬영 기법이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B PD는 이번 <태종 이방원> 동물학대 논란에 대해 “말이 넘어지거나 쓰러지는 장면을 찍을 때 다른 방법이 별로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장면들은 역동적이다보니 모형 말로는 장면을 구현해내기 어려웠을 것이고, 예산과 시간, 기술력 등의 문제로 CG를 사용하기도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20년 동물권 행동 카라가 제작한 '동물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 속 실제 동물 대신 CG 장면 연출을 고려했는지 등을 물은 설문조사 결과 그래프. ⓒ동물권행동 카라
지난 2020년 동물권 행동 카라가 제작한 '동물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 속 실제 동물 대신 CG 장면 연출을 고려했는지 등을 물은 설문조사 결과 그래프. ⓒ동물권행동 카라

동물권행동 카라가 지난 2020년 미디어 종사자 157명을 대상으로 촬영현장 실태조사에서도 답변자의 8%는 촬영을 위해 고의로 동물에게 해를 가했으며, 13%는 사고로 동물이 죽거나 다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실제 동물이 출연하는 대신 CG로 장면 연출을 고려한 적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58%가 ‘없다’고 했다. 이유로는 ‘예산 부족’이 41%로 가장 높았으며, ‘컴퓨터그래픽으로 구현하기 어려운 장면이라서’(33%)가 그 뒤를 이었다.

제작비와 시간적인 제약 등으로 동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촬영 방식이 지금까지 이어져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드라마 제작 여건 속에서도 낙마 촬영을 미리 찍거나 카메라 각도를 바꾸는 등 사전 협의를 통해 충분히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영화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등을 연출한 임순례 감독은 26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동물이 출연하는 장면은 정확한 콘티가 굉장히 중요하다”며 “동물을 다루는 분과 제작진 촬영팀이랑 안전하게 찍을 수 있는 시뮬레이션을 충분히 협의해야 하고, 그것으로 해결이 안 된다고 하면 앵글이나 CG로 촬영해야 한다. 카메라 앵글만 잘 조절하면 굳이 저렇게까지 한 생명의 희생을 담보 받을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A PD는 “말이 넘어지는 장면을 정말 찍어야 한다면 촬영 초반에 제일 먼저 찍으면 CG를 제작할 시간이 있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니까 동물과 함께 하는 장면을 찍을 때는 철저한 계획하에 사전 제작으로 안전과 완성도를 기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동물학대 논란이 확산되자 영화·드라마·광고에 적용하는 출연동물 보호 가이드라인 마련에 나섰다.

출연동물 보호 가이드라인에는 △보호자·훈련사·수의사 등 현장배치 △동물 특성에 맞는 쉼터, 휴식시간, 먹이 등 제공 △위험한 장면의 기획·촬영 시 CG 등 동물에 위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 검토 및 안전조치 강구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동물도 안전한 제작 현장을 위해선 가이드라인 제정과 함께 제작진의 인식 전환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한 방송사 드라마 PD는 “<태종 이방원>에서 이성계가 떨어지는 장면은 중요해서 현장에서도 고민을 많이 했을 텐데, 작가들이 낙마 장면을 찍는 현장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쓰는 게 중요하다”며 “아동‧청소년 촬영 가이드라인도 없다가 몇 년 전에 만들어졌다. 동물보호에 대한 인식이 커졌기 때문에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져서 현장에 전달되면 다들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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