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하면 가능하다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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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하면 가능하다는 믿음
[비필독도서 52]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
  • 오학준 SBS PD
  • 승인 2022.03.18 1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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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대통령선거일인 9일 인천의 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뉴시스
제20대 대통령선거일인 9일 인천의 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뉴시스

[PD저널=오학준 SBS PD] 평소의 정치적 신념에 반하여 선거에 임하는 사람들을 비합리적인 선택이라 비판하기는 쉽다. 정치인들에게는 이권, 유명세, 자리를 찾아갔다고, 정당에는 승리를 위해 가리지 않고 손을 내밀어 덩치 키우는 데만 집중한다고, 유권자들에게는 감정이나 기분에 따라 대표를 뽑는다고 말하면 된다. 선거가 끝난 이후 저잣거리에 남은 말들은 대부분 이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말들 너머에 무엇이 남는가?

‘선거의 기쁨과 슬픔’ 이상의 고민이 필요하다. 빈번한 ‘월경(越境)’이 이루어지는 정치의 풍경을 꼼꼼히 훑어보고, 그들이 이해하는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어째서 넘을 수 없는 선을 넘었는지, 그 마음의 밑바닥엔 어떤 믿음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유구한’ 전통이 그곳에서 발견될 지도 모른다. 우리의 정치공동체와 민주주의가 맞이할 미래 모습을 결정할 단서도.

시사평론가 김민하의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는 일견 기이해 보이는 풍경이, 역사적으로든 지리적으로든 꽤 보편적으로 민주주의 제도에 깃들어 있음을 지적하는 책이다. 그는 한국, 미국, 일본의 역사와 정치에 대한 분석을 통해 민주주의가 공동체의 미래를 논하는 장을 여는 역할 대신 ‘반대’를 통해 ‘우리 편’을 조직하는 효과적 방식을 찾아내는 도구로 전락하는 현상을 도처에서 확인한다.

저자는 한국 정치의 과거와 현재에 있어서 ‘상대에 대한 반대’가 정치 세력을 형성하는 주요 구심점이었음을 제시한다. 장준하가 5·16에 대해서는 유보적 판단을 내렸으나 한일 협정 이후 유신 정권에 강경한 반대를 드러냈던 사례를 통해, 반공과 반일이라는 ‘반대의 정치’가 자리잡는 과정을 설명하는 동시에 문재인 정권을 탄생시킨 반(反)보수 전선이 묶이고 풀리는 과정을 통해 여전히 상대에 대한 반대가 정치 공간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문재인 정권은 각자도생의 정신과 사회 공공성 강화라는 공존 불가능한 요구 사항을 ‘기득권의 불공정’에 대한 반대 전선으로 엮어내며 탄생했다. 사회 진보가 모두에게 이득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사건들은 둘의 짧은 동거를 무너트렸다.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둘러싼 논란이나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 관련한 사건은 ‘586 기득권’이라는 새로운 반대의 구심점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했다.

전선이 새롭게 그어질 때마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정치적 사건들은 계속해서 만들어졌지만, 정작 세상의 질서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가난한 사람은 가난하고, 부자는 부자로 남았다. 서로가 정권을 잡으면 공동체가 마주한 문제들을 해결하겠다고 호언장담하지만, 정작 권력을 획득한 후엔 만능 스위치 같은 건 없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사람들에게 공개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몬타나 존스>의 니트로 박사처럼 말한다. “우리에게 시간과 예산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김민하 시사평론가가 쓴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
김민하 시사평론가가 쓴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

저자는 일본과 미국의 사례를 통해 치열한 반대의 정치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사회 변화의 동력이 국가 내의 권력의 움직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자민당 내 파벌간의 대립이든, 다른 당과의 대립이든 일본 정치는 서로를 반대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정치 세력들 사이에서 꾸준한 권력의 교환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경화는 계속되었다. 반대의 정치는 치열하게 전개되었지만 그들이 ‘개혁’을 기치로 참조할 수 있는 정책 패키지는 전세계적으로 헤게모니를 획득한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한국도 미국도 같은 시기에 마찬가지의 상황이었다. 진정한 변화의 힘은 국가 권력 바깥에, 체제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집권하면 가능하다’는 믿음은 가짜다. 문제들은 언제나 복잡하게 꼬여 있고 이를 단칼에 해결할 수 있는 장치는 없다. 그럼에도 믿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상대방의 문제 해결 의지를 의심하거나, 비정상적인 존재로 규정하고 그들이 집권하면 도래할 미래가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선동하는 언어들이 정치 공간을 점령하고 있다. 정치에 대한 열정과 실망, 그리고 변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냉소는 이 기만의 풍경을 길러내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교하고 섬세한 논의보다 선거라는 이벤트에서 승리하고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 중요해지면, 합법과 불법의 경계 위에서 벌어지는 정치기술자들의 기예를 상찬하게 된다. 더 큰 세력 결집에 필요하다면 도덕 규범은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정치인은 또다른 ‘최애캐’가 된다. 거리를 두고 비판하기보다 승리를 위해 지켜야 할 존재가 된다.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는, ‘프로듀스 101’과 다를 바 없어진다. 이것이 민주주의가 맞이한 오늘날이다.

저자는 정치를 소비자나 팬의 관점에서 바라보기보다 통치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길 요구한다. 유능한 대리자를 찾아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통치 철학을 관철시키도록 하기보다, 대중 스스로 요구하고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포르투알레그리의 참여예산제가 성공적인 시작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던 사례를 통해 저자는 실패의 누적을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적 해결책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여기에 진보 정치의 미래가 있다고 믿는다. 

아무 것도 하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하는 정치로 인해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선거를 반복하는 현실. 이를 벗어나 주인의 정치를 안착시키려면 우리는 특정한 정당이나 정치 세력을 선택하는 것 이상의 책임 있는 행동을 필요로 한다. 책은 그에 대한 정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몇 개의 사례들을 제시하며 조금 더 골머리를 앓아야 한다고 말할 뿐이다. 다음에도 ‘뽑을 사람 없네’ 한탄하며 기표소에서 이마를 부여잡고 싶지 않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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