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핍박 속에도 당당했던 이민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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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핍박 속에도 당당했던 이민자들
한국계 미국인들이 만든 애플TV+ '파친코'
경계인의 시선으로 과감하게 일제강점기 시대상 그려
  •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22.04.01 14: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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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표 4대에 걸친 대서사시를 그린 애플TV+ '파친코' 1화 영상 갈무리.
재일교표 4대에 걸친 대서사시를 그린 애플TV+ '파친코' 1화 영상 갈무리.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저게 한국이 맞아? 애플TV가 공개한 드라마 <파친코>를 본 많은 시청자들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 특히 드라마가 재현해낸 1920년대 일제강점기의 장면들이 그렇다. 부산 영도의 항구를 부감으로 따라가며 찍은 장면이 일단 압도적으로 시선을 잡아끌고, 그 곳 어시장에서 수산물을 파는 조선인들의 활기찬 모습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아마도 세트 촬영에 CG를 더해 완성했을 그 장면은 분명 당대의 모습으로 여겨지는 풍광을 담고 있지만, 어딘가 지금까지 <여명의 눈동자>나 <미스터 션샤인> 같은 드라마 에서 봤던 장면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준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고 있는 걸까.

선자네 하숙집에 기거하는 노동자들이 하루의 피로를 막걸리 한 사발과 우렁차게 함께 부르는 ‘뱃놀이’ 한 자락으로 풀어내는 대목은 첫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다. 우리가 잃었거나 잊고 있었던 옛 조상들의 여러 면면들이 묻어나는 명장면이다. 어두워져 밤으로 들어가는 그 순간에 흥과 한이 더해져 터져 나오는 노랫가락은, 일제강점기의 어둠 속으로 들어온 시대와 그럼에도 노래를 멈추지 않고 이 어둠조차 버텨낼 조선인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은유한다.

이들의 노래는 그래서 술기운에 흥을 빌려오지만 나라 잃은 민초들의 한과 슬픔이 묻어난다. 그런데 이 장면 속에서 당시 조선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독특하다. 이들은 가난하고 배운 것도 없고 또 일제의 폭력이 두렵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도리’나 ‘삶의 지혜’를 분명히 가진 자존감 넘치는 모습이다.

애플TV '파친코'에서 10대 선자를 맡은 김민하 배우.
애플TV '파친코'에서 10대 선자를 맡은 김민하 배우.

이러한 시선은 선자(김민하)라는 인물에도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일본 순사들이 어시장에 나타나면 모두가 고개를 숙일 때 선자만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 장면도 그렇고, 한수(이민호)라는 돈 많은 어시장 중개인 앞에서도 결코 굴종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 모습도 그렇다.

결국 <파친코>는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그 격동기에 일본, 미국으로 떠돌며 생존해낼 수밖에 없었던 이민자들(재일동포, 재미동포 같은)의 삶을 다루면서, 그들의 끈질긴 생명력이 어디서 근원하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따라서 그 근원을 보여주는 첫 회에 등장하는 조선인들의 모습은 중요하다. 그들은 이 작품 속에서 한마디로 가난하고 배우지 못했어도 문화적 자존감이 높은 당당하고 꼿꼿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파친코>의 이런 시선은 당대의 풍광을 담아낸 영상 안에서도 드러난다.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보잘 것 없는 선자네 하숙집 풍광을 찍는 영상의 색감에서는 ‘빈티지’가 느껴진다. 그저 낡은 것이 아니라 ‘시간의 가치’가 더해진 듯한 색감. 거기에는 이 드라마를 만든 이들의 '일제강점기 조선'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담겨있다. 가난해도 넉넉한 상을 내줄 정도로 정이 넘치고, 막걸리 한 잔과 노래 한 자락으로도 하루의 피로가 풀리던 당대의 삶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난 달까.

이것은 이 작품이 한국의 근현대사를 담고 있지만, 격동기로 인해 고국을 떠나야 했던 이민자들의 시선이 투영되어 있어서 나오는 것들이다. 이 작품은 소설 원작을 쓴 이민진 작가, 이를 각색한 수 휴, 감독을 맡은 코고나다, 저스틴 전이 모두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래서인지 <파친코>는 일제강점기의 조선인들을 담는 방식에 있어서 더 깊은 애정이 담겨 있고 이들을 핍박한 일제에 대해서는 훨씬 더 직접적으로 그 폭력을 폭로한다.

애플TV '파친코'
애플TV '파친코'

사실 <여명의 눈동자>(1991)처럼 일제의 폭력을 과감하게 다룬 작품들은 최근 들어서는 그리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미스터 션샤인>도 물론 일제와 맞서는 의병을 그리긴 했지만 그 강도는 그리 높진 않다. 

최근 한류드라마들이 글로벌 시장에 나가게 되면서 중국과 일본 등 근접 국가들의 시청층을 고려하고, 지나친 민족주의적 관점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겹쳐지면서 생긴 경향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파친코>는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경계인의 시선이 담김으로써 보다 과감하게 일제강점기를 그릴 수 있었다. 우리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개발시대를 거치며 점점 잊고, 잃고 있었던 당당한 조선과 조선인의 모습을 복원해냈다는 건 이 경계인의 시선이 찾아낸 최대의 수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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