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옷값’과 ‘김건희 슬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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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후드티 사진' 전형적인 '설렙 보도'
‘출처 불명 가십보도’ 양상 띤 김정숙 여사 '옷값 논란'
조선일보 '김건희 심기경호' 칼럼까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아내 김건희 여사가 서울 서초구 자택 앞에서 일상복 차림으로 경호 담당 경찰특공대의 폭발물 탐지견을 안아보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4일 공개됐다. (사진=독자 제공)©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아내 김건희 여사가 서울 서초구 자택 앞에서 일상복 차림으로 경호 담당 경찰특공대의 폭발물 탐지견을 안아보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4일 공개됐다. (사진=독자 제공)©뉴시스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4월 4일 새벽 5시 연합뉴스가 처음 보도한 ‘김건희 후드티 사진’은 전형적인 ‘셀럽 보도’다. ‘목격’ 그 자체와 옷차림, 안경, 슬리퍼, 경찰견을 끌어안은 ‘친근한 모습’만으로 뉴스가 된다.

주가조작 연루 여부 등 여러 의혹이 남아있는 ‘차기 영부인’을 이런 ‘셀럽 보도’로 다뤄도 되는지 의문이지만 언론에게는 쉽게 조회수를 확보할 수 있는 ‘치트키’다. 몇몇 기자들은 ‘독자제공’이라는 최초 보도 사진의 출처를 의심하며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 공보팀이 연합뉴스에만 제공한 것 아니냐고 항의했다고 한다. 인수위는 공보팀 출처임을 부인하면서도 결국 언론에 ‘독자 제공’ 사진을 제공했다. 이웃에게 우연히 목격됐다는 사진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처리된 김건희 씨의 포즈와 시선만큼이나 어색한 장면이다. 

이 기묘한 장면들이 스치는 사이, 사진 속 김건희 씨가 신은 3만원짜리 슬리퍼가 하루만에 ‘완판’됐다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고 다음날엔 <조선일보>가 “김건희를 제2의 김정숙으로 만드는 사람들”이라며 ‘3만원 슬리퍼의 검소함’에 찬탄한 언론과 ‘팬’들에게 일침을 놨다. <조선일보>도 이미 ‘슬리퍼 완판’ 보도를 냈다는 건 일단 넘어가자.

이 칼럼의 요점은 ‘벌써부터 김건희 씨에게 검소함을 강요하면 측근들이 검소하다고 여론을 조작했다가 사치가 들통단 김정숙처럼 망신을 당한다’는 경고다. ‘옷값 논란’으로 ‘사치에 빠진 김정숙’을 은근슬쩍 사실로 확정지음으로써 김건희 씨의 미래를 보호하는 일타이피다. 흥미로운 건 그 근거와 출처다. 김정숙 여사를 ‘사치의 대명사’로 만든 ‘옷값 논란’의 출처는 ‘독자 제공 후드티 사진’만큼 모호하다.

김정숙 여사가 2018년 7월 4일 인도 영화 '당갈'을 관람하기 앞서 인도 유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김 여사가 착용하고 있는 브로치가 ' 2억원 상당의 까르띠에' 제품이라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까르띠에 측은 자사 제품이 아니라고 밝혔다.©뉴시스
김정숙 여사가 2018년 7월 4일 인도 영화 '당갈'을 관람하기 앞서 인도 유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김 여사가 착용하고 있는 브로치가 '까르띠에' 제품과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제작자가 직접 “호랑이 비슷한 거면 무조건 까르띠에냐"라며 직접 반박했다. ©뉴시스

3월 25일부터 물량공세가 시작된 ‘김정숙 옷값 논란’ 보도의 시작은 인터넷 커뮤니티다. <“2억원대 명품”vs“2만원대 브로치”…김정숙 여사 ‘옷값’, 네티즌 나섰다>와 같은 제목의 기사들이 판을 쳤다. 네티즌이 나서면 언론이 그대로 보도해주는 게 이제 관행을 넘어 정석이 됐다. 저 제목에 언급된 명품 관련 논란은 당사자(샤넬과 브로치 제작자)가 아니라고 해도 보도가 양산됐다.

우리는 ‘브로치 제작자의 해명’이 ‘속보’로 나오는 현실을 마주해야 했는데, 사실 브로치 제작자가 ‘호랑이라고 전부 다 까르띠에냐’라고 호소하는 상황까지 오지 않을 수 있었다. 언론이 네티즌을 따라 그대로 보도하지 말고 검증하고 취재했으면 되는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옷값’ 보도는 양산될 수가 없다. ‘옷값 논란’의 원래 ‘출처’는 청와대 특수활동비 공개 행정소송이기 때문이다. 납세자연맹이 소송까지 제기했고 법원도 공개하라 했으나 청와대는 항소했다. 대검찰청도 마찬가지다. 김정숙 여사의 사치 여부도 검증을 미룰 수밖에 없다. 

출처는 모호한데 보도는 많다. 3월 25일부터 4월 2일까지 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기준 ‘김정숙 옷값’ 언급 보도는 총 531건에 달하는데 ‘청와대 특수활동비 행정소송’을 언급한 보도는 20건에 그쳤으며 똑같은 검찰 관련 소송은 아예 언급이 없고 과거 국정원 특활비 상납 사건들은 딱 11건에서만 단순 언급됐다. 반면 ‘까르띠에’와 ‘샤넬’ 언급 보도는 모두 60건을 넘겼다. ‘출처 불명 가십보도’ 양상이다.

출처는 아직 ‘네티즌’에서 한 뼘도 나아가지 못했지만 언론은 ‘김건희를 사치 부리다 망신 당한 김정숙으로 만들지 말자’는 선제적 ‘심기경호 칼럼’까지 달려갔다. 출처 불명의 가십이 정치화됐거나, 그냥 처음부터 일부 언론에겐 계획이 다 있었을 수도 있다. 언론이라면 모든 계획의 출발점은 투명하고 합리적인 근거와 출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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