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주인공처럼...'우리들의 블루스' 옴니버스 드라마의 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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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주인공처럼...'우리들의 블루스' 옴니버스 드라마의 묘미
모든 삶에 응원 담은 '우리들의 블루스'로 돌아온 노희경 작가
제주 배경으로 생계형 노동 현장의 일상 주목
  • 방연주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22.04.20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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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포스터. ⓒtvN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포스터. ⓒtvN

[PD저널=방연주 대중문화평론가] 노희경 작가가 옴니버스 드라마 tvN<우리들의 블루스>로 돌아왔다. 노 작가는 국제 비영리 민간단체 NGO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히어>를 준비 중이었으나, 코로나19로 해외 촬영이 불가능해지면서 <우리들의 블루스>를 집필한 것으로 알려졌다. 

옴니버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는 차승원, 이정은, 이병헌, 신민아, 한지민, 김우빈, 김혜자, 고두심, 엄정화 등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9일 첫 방영된 드라마는 배우의 이름값이 무색하지 않게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차승원과 이정은이 열연한 ‘한수와 은희’ 에피소드는 평균 시청률 7.9%(닐슨코리아, 전국기준), 최고 9.8%를 기록했다. 아직 풀어놓아야 할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지만 <우리들의 블루스>의 관전 포인트를 살펴본다. 

다양한 인물과 사건이 얽혀있는 제주라는 공간은 <우리들의 블루스>가 지닌 든든한 힘이다. 첫 방송에서 푸르른 바다와 까만 돌담이 쌓인 푸릉 마을 어귀, 바쁘게 돌아가는 경매장, 활기 넘치는 수산물 시장과 오일장 등 사람 냄새 나는 풍경을 담아냈다.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은 시청자의 시선을 붙잡을 뿐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한 ‘집콕’의 답답함을 해소하는 등 대리만족을 선사하고 있다.

무엇보다 제주라는 공간은 KBS<쌈, 마이웨이>의 부산 호천마을, KBS<동백꽃 필 무렵>의 구룡포처럼 인물, 사건, 이야기를 실감 나게 만드는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다. 제주와 낯설지만 구수한 제주 방언은 드라마의 리얼리티를 더욱 살려주고 있다.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옴니버스 형식인 만큼 이들의 삶이 켜켜이 묻어있는 공간적 배경이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인물들의 성격이나 관계, 갈등의 실마리를 쥔 공동의 무대이기 때문이다.

tvN '우리들의 블루스'
tvN '우리들의 블루스'

제주라는 공간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인물들의 굴곡진 사연도 볼거리다. 대개 드라마에서는 흥미진진한 전개와 갈등의 고조를 위해 인물 간 신분, 지위의 격차를 두거나 뉴스에서나 나올 법한 큰 사건 위주로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이어간다. 시청자들이 쉽게 극에 몰입할 수 있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는 인물들의 일상과 생계형 노동 현장을 주목한다. 수산물 가게 주인, 은행원, 해녀, 만물상, 선장, 오일장 할망 등 지금껏 드라마 주인공으로 만나기 어려웠던 인물들은 일상 속에서 각자 크고 작은 갈등을 겪는다. 자칫 놓치기 쉬운 평범함 속에 인물들은 삶의 파고를 견뎌내고 있고, 설렘, 추억, 그리움, 초라함, 고단함 등 희로애락도 숨어있다. 평범하다고 해서 그들의 이야기조차 평범하진 않은 것이다.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 만큼 이야기 줄기마다 ‘선택과 집중’은 필수 불가결하다. <우리들의 블루스> 속 인물의 공통점은 저마다 결핍을 품고 있다는 점이다. 딸의 골프 유학 뒷바라지를 하느라 돈에 전전긍긍하는 기러기 아빠, 줄줄이 딸린 가족의 동아줄로서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친 은희, ‘헤프다’라는 주변의 핀잔에 아랑곳하지 않지만, 사연이 있어 보이는 영옥, 결혼 후 우울증에 빠진 선아, 만물 트럭을 끌고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며 할망들을 챙겨주지만, 엄마와는 연을 끊은 동석 등 자신의 인생 경로에서 처한 크고 작은 결핍을 안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노 작가는 인물들이 처한 모든 갈등을 세세하게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단편소설처럼 인물들의 삶의 단면을 드러내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겉보기에는 어제와 비슷한 일상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삶을 일부는 드러내고, 일부는 감추며 이야기의 결을 풍성하게 다듬어낸다. 인물들의 삶의 단면을 가져오는 대신 생략된 이들의 못다 한 이야기는 시청자가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주며 진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무엇이 중요한가’라는 메시지를 전할 때 거창한 설정과 극적인 서사가 아니라도 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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