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 현실엔 없는 변방의 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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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해방일지’, 현실엔 없는 변방의 낭만
JTBC ‘나의 해방일지’가 담은 버티는 삶과 해방의 의미
  •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22.04.30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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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갑갑한 도시를 벗어나 산과 들판이 펼쳐지는 곳에서 평상에 앉아 맛있는 음식을 해먹는 풍경. 한때 나영석 사단의 <삼시세끼>가 시골과 섬을 배경으로 보여주곤 했던 그런 광경은 과연 현실적일까.

물론 그런 전원생활의 낭만이 없다고 말할 순 없다. 불을 끄면 불빛 자체가 없는 시골 밤에서야 비로소 별들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장관을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또 아무도 살지 않는 섬에서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의 걱정도 없이 친한 친구이자 동료들과 보내는 그 시간들은 얼마나 자유로움을 선사할까. 

하지만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서둘러 출근을 해야 하는 샐러리맨들에게 전원생활의 낭만은 결코 현실적일 수 없다. 그 먼 거리를 오가는 출퇴근길에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현실을 겪다보면 그 아름답고 여유롭던 전원생활 또한 달리 보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MBC <구해줘 홈즈> 같은 프로그램에서 용인이나 수지, 의정부, 양주 등 이른바 수도권 지역의 전원주택 특집을 해주면 “저런 집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면서도, 정작 그 으리으리한 전원주택 한 채보다 훨씬 더 비싼 전세 값을 주고 서울에서 사는 걸 선택하는 게 더 현실적이다. 

JTBC 토일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바로 이러한 변방의 현실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출퇴근만 했을 뿐인데 왜 이렇게 피곤하냐며 툴툴 대는 기정(이엘)과, 일주일 내내 점주들의 불평불만을 들어주고 그 먼 거리를 출퇴근 하다 보니 여자친구와도 소원해져 헤어진 창희(이민기) 그리고 집이 너무 멀어 회사에서 지원하는 동호회 활동이나 회식도 마음대로 못해 혼자만 동떨어진 사람처럼 살아가는 미정(김지원)이 그 변방에 사는 삼남매다.

이들에게 전원생활은 결코 로망이 아니다. 지인들과 함께 고기 굽고 술 마시는 낭만이 아니라, 주말에도 땡볕에 나가 농사일을 도와야 하는 현실이다. 무엇보다 절망적인 건 이 변방의 삶이 지금 대로라면 결코 변하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다. 이들은 갇혔다.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변방의 삶이라는 늪에. 

그런데 그 늪은 지형학적으로 변방에 사는 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철창이 아니다. 아침이면 모두 정장차림으로 출근하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다른 이들의 삶도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결코 맞을 확률이 없는 로또에 한 주의 희망을 걸어보고, ‘오늘은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라는 막연한 건물의 문구에 괜한 기대를 걸어보며 매일 출근하지만, 그렇게 하루를 버텨내고 나면 쓰디쓴 소주로 위안 삼는 것으로 하루가 끝이 난다.

그렇게 매일 반복된다. 달라지지 않는다. 변방에 사는 삼남매는 그 ‘계란 흰자’에서 살아가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이런 도시인들의 삶의 비의를 매일 같이 더 처절하게 깨닫는다. 이들은 해방되고 싶다. 이 답답하게 그들을 가둬놓은 틀 바깥으로 뛰쳐나가 비상하고 싶다. 

JTBC '나의 해방일지'
JTBC '나의 해방일지'

<나의 해방일지>가 이들 변방에서 사는 가족을 통해 보여주는 건 이른바 전원생활의 낭만 같은 건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나 가능하다는 전언이다. 그리고 그 지형학적인 변방에서 확장된 도시에 살아도 여전히 변방의 소외된 삶을 하루하루 버텨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자본화되고 그래서 적당해보이지만 거짓 행복과 위로로 가득한 삶에서 낭만 따위를 찾기는 쉽지 않다는 걸 전한다. 

박해영 작가는 전작이었던 <나의 아저씨>에서 정희네 술집이나 철길 건널목이 보이는 길 같은 공간으로 퇴근길 풍경을 그려낸 바 있다. 편안해야 할 밤이 쓸쓸함과 하루 동안의 피로를 애써 지워내는 몸짓으로 채워지는 풍경을 통해 ‘편안함에 이르는’ 길에 대한 화두를 던진 박해영 작가는, <나의 해방일지>에서 전원생활의 낭만 따위는 없는 변방의 공간을 통해 거짓 행복과 위로로 채워져 삶의 변방으로 소외된 도시인들의 현실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낭만 따위는 발견하기 힘든 그 갑갑한 변방의 삶에서 우리들은 과연 해방의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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