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혐오'·'공포' 부추기는 원숭이두창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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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에이즈계획(UNAIDS), "일부 언론 보도 '낙인효과' 우려"
“감염자 낙인 보도, 감염병 대응력 약화 초래”

방역당국이 원숭이두창의 국내 유입을 막기 위해 원숭이두창 발생국가를 방문한 여행객에 대한 감시를 강화했다. 원숭이두창 발생국가를 방문한 여행객은 입국 시 발열체크와 건강상태질문서 작성이 요구된다. 당국은 원숭이두창 유입에 대비한 대규모 두창 백신 접종은 당장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의 입국자 코로나19 검사 센터 모습. 2022.05.24. ©뉴시스
방역당국이 원숭이두창의 국내 유입을 막기 위해 원숭이두창 발생국가를 방문한 여행객에 대한 감시를 강화했다. 이날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의 입국자 코로나19 검사 센터 모습. 2022.05.24. ©뉴시스

[PD저널=장세인 기자] 유럽과 북미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원숭이두창 바이러스 감염과 관련해 동성애를 확산 원인으로 '낙인' 찍는 국내외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원숭이두창 감염 원인과 경로가 확실하게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동성애 혐오를 조장하고 감염병 대응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열대 우림과 동물이 많은 중부 및 서부 아프리카 지역의 풍토병이었던 원숭이두창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례가 최근 유럽, 북미 등 19 개국에서 나타나고 있다. 원숭이두창 바이러스는 인수공통전염병으로 동물에서 사람으로, 사람 간에도 전염될 수 있다. 사람 간에는 증상이 있는 감염자와의 가까운 신체 접촉이나 발진, 체액 및 딱지에 오염된 의복, 침구, 수건, 식기 등과의 접촉으로 감염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신은 전문가의 의견을 인용해 유럽 '광란 파티'가 원숭이두창 확산 경로가 됐다고 앞다퉈 전했다. 

AP통신은 <전문가: 원숭이두창, 2번의 유럽 광란 파티에서의 성관계로 확산>(5월 23일)에서 "원숭이두창은 스페인과 벨기에에서 열린 광란 파티에서 크게 확산됐으며 대부분의 유럽 감염 사례가 남성과 성관계를 가진 남성이었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WHO 자문기구 위원장인 데이비드 헤이만 박사는 “감염된 사람의 병변과 밀접하게 접촉할 때 퍼질 수 있고 성적 접촉이 그 전파를 증폭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동성애가 유일한 감염 원인이라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국내 언론도 '원숭이두창 공포'라는 자극적인 표현을 써가며 '성관계' '동성애'를 부각하고 있다.   

<“원숭이두창, 주로 성관계로 감염” WHO>(파이낸셜뉴스), <확산하는 ‘원숭이 두창’ 동성 성접촉 때문에?...게이·양성애자 비율↑>(머니투데이), <[속보] ‘원숭이두창’ 100명 넘었다...성관계로 전염? 온몸 수포>(서울신문), <유럽서 퍼지는 ‘원숭이두창’...“동성애 남성들 감염”>(한국경제TV) 등 다수 언론이 ‘동성애 남성’ 감염자를 부각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뉴스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서 영국에서 첫 감염자가 나온 지난 6일부터 25일까지 ‘원숭이두창’ 검색어로 뉴스를 살펴본 결과, 감염 경로와 관련이 있는 연관어로는 ‘동성애자’, ‘성관계’가 떴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검색해서 뜨는 '동성애', '성관계', '성병' 관련한 '원숭이두창' 언론보도.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검색해서 뜨는 '동성애', '성관계', '성병' 관련한 '원숭이두창' 언론보도.

이같은 보도 양상에 유엔에이즈계획(UNAIDS)은 낙인 효과를 우려했다. 

유엔에이즈계획(UNAIDS)은 지난 22일 낸 보도자료에서 “원숭이두창 바이러스 감염 사례의 상당 부분이 게이, 양성애자, 다른 남성과 성관계를 맺은 남성 중에서 확인됐다”면서도 “원숭이두창 바이러스 보도 중 일부가 성소수자나 아프리카인 등 특정 대상 이미지에 집중돼 낙인 효과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AIDS 대응에서 ‘특정 집단에 대한 낙인과 비난이 바이러스 대응 능력을 크게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배웠다. 감염자에 대한 낙인이 두려움의 악순환을 부추기고 사람들을 의료 체계에서 멀어지게 해 감염 사례를 확인하려는 노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유엔에이즈계획의 부국장 매튜 카바나는 “효과적이고 낙인 없는 대응을 위해 더 강력한 커뮤니티 주도 역량을 키우고 인권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지도자들은 전염병 예방을 급히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유행 초기에도 첫 집단감염이 확인된 중국과 확산 원인으로 지목된 특정 종교나 지역, 장소를 대상으로 혐오와 차별이 확산됐다.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교육센터는 2020년 '코로나19 지역혐오의 성찰과 과제' 공개좌담회에서는 대구를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산이 시작되자 언론과 커뮤니티에서 “대구발 감염”, “TK 코로나”, “대구 폐렴” 등의 표현을 사용, 고향이나 거주지가 대구라는 이유로 직장 면접에 오지 말라고 연락을 받거나 음식점, 병원 등에서 출입을 거부당한 사례들이 등장했다고 지적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추측, 과장 보도를 하지 않는다', '공포, 창궐 등 과장된 표현 사용 주의' 등을 명시한 한국기자협회의 감염병 보도 준칙이 이번 '원숭이두창 확산' 보도에서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모습이다.  

김탁 순천향대 감염내과 교수는 “현재까지는 원숭이두창이 밀접한 접촉에 의해 전파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러한 접촉의 형태는 다양할 수 있으므로 이 병을 특정 집단이나 특정 행위에 의해 유발되는 것으로 단정 짓는 것은 적절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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