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이 격차가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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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속도로 자라는 아이들...동등한 출발선 만들어주는 사회됐으면

새학기를 맞은 지난 3월 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매여울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입학식이 진행되고 있다. ©뉴시스
새학기를 맞은 지난 3월 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매여울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입학식이 진행되고 있다. ©뉴시스

[PD저널=김지원 EBS PD] 근래 2년간 초등학교 2학년 교실을 장기 관찰했다. 한 번은 지방의 한 도시에서, 한 번은 군 단위 지역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많이 했지만 초등학교 아이들을 보는 것은 오랜만이어서 촬영 전에는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함께 하는 촬영 감독도 마찬가지여서, “초2면 애기나 다름 없는데 잘하고 말고 할 게 뭐가 있을까. 다들 예쁘고, 착하지 않을까. 공부랄 것이 특별히 뭐가 있을까” 라고 우리끼리 과연 잘 찍을 수 있을지, 긴장 반 설렘 반으로 첫 촬영을 떠났더랬다.

요즘의 초등학교 2학년은 국어와 수학만 과목으로 있을 뿐 나머지는 과목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계절별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이 수업 시간의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가위질 하는 것, 색깔을 칠하는 것, 글자 쓰는 것까지 아이들의 정도와 수준은 다양했다. 성적 이전에 아이들의 생활에서, 발달 수준에서 이미 차이는 존재했다. 

차이는 외모에서부터 한 눈에 보였다. 특히 여자 아이들의 헤어 스타일은 아주 달랐다. 머리 한 올까지 흐트름 없이 땋아 올린 아이, 매일 머리핀의 디자인이 달라지는 아이, 단발머리지만 단정하게 빗어내린 아이. 입성부터 단정한 아이들은 선생님 말씀도 잘 알아들었고, 남들보다 더 빨리 그 날의 과제를, 그 날의 과업을 해내곤 했다. 교과서를 읽을 때도 발표를 할 때도 보다 큰 목소리로 또렷하게 말하는 듯했다. 생판 남일 뿐인, 한낱 관찰자인 나도 그런 아이들에게 자주 눈이 가곤 했다. 남의 아이지만 참 잘 하는구나, 감탄이 절로 나왔다. 

성적을 내지 않았고, 뚜렷하게 공부로 평가하는 학년이 아닌데도 아이들은 우리 반에서 누가 잘하는지, 누가 뛰어난지를 누구보다 먼저 아는 듯했다. 아이들도 본능적으로 잘 하는 아이, 눈에 띄는 아이를 구별해냈다. 초2의 세계에도 이미 구별이 있었다. 

촬영이 거듭될수록 오래 눈길이 가는 아이들이 생겼다. 운이는 종종 책상 밑으로 들어간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수업 시간에 목소리도 작다. 수업을 못 알아듣거나 특별히 공부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운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신이 없다. 본인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싫어한다. 쉬는 시간이면 운이는 통합 수업 대상자인 친구와 가장 많이 어울린다. 장난끼 심한 친구가 때려도 “왜 때려”라고 물을 뿐이다. 늘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있음이 보인다. 

설이는 아직 글자를 잘 읽지 못한다. 그래서 속상해 울기도 했다. 수업 시간에 발표도 잘하고, 받아쓰기도 척척 잘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 손을 들었다가도 제 이름이 불리면 머뭇머뭇한다. 하지만 설이는 엄청나게 의지가 있다. 아직 글씨 쓰는 게 힘들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남들보다 오래 걸리더라도 최선을 다하고, 반드시 끝까지 한다. 선생님 말씀에도 늘 귀를 기울인다. 친구들이 듣지 못할 때 선생님의 말씀을 친구들에게 대신 전할 수 있을 정도다. 

지난해 3월 방송된 EBS 특별기획 ‘당신의 문해력’.©EBS
지난해 3월 방송된 EBS 특별기획 ‘당신의 문해력’.©EBS

아이들은 각자의 속도로 자라고 있었다. 한눈에 띄어서 예쁜 아이들이 있고, 오래도록 눈이 가서 정이 가는 아이도 있었다. 아롱이다롱이 저마다의 매력과 장점이 눈에 들어오니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매번 촬영을 갈 때마다 아이들의 성장을 응원하고, 얼마나 컸을까 기대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 역시 현실을 모르진 않기에 다름의 다른 말이 ‘격차’라고 불리기도 한다는 것을 안다. 성장 속도도, 가정환경도 제각각이기에 아이들이 서로 다른 것은 당연한데, 어떤 아이는 또래보다 조금 늦게 성장할 수도 있는 것인데, 현실은 그 차이를 보완하기엔 부족하다. 차이가 ‘특징’이나 ‘다름’, ‘기회’가 될 수도 있어야 하는데, 늦은 아이를 그저 바라보기만 해서는 차이가 곧 격차가 되어버리고 만다.

초등학교 2학년을 장기 관찰한 것도 이 시기가 다름을 격차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는 중요한 시기이자, 차이가 더 벌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기 때문이다. 아직 채 여물지도 않은 아이들에게 격차라는 굴레는 자신감을 꺾어 버려, 이후의 다른 기회마저 앗아갈 수 있기에 이 시기는 더욱 중요하다.

초2는 아직 어리고, 희망적이어야 하는 시기여야 한다고 믿는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지시하는 내용을 잘 따르는 것만으로도 기특해 보이는 어린 아이들인데, 남들보다 늦다는 이유로 누가 뭐라 하지 않는데도 고개를 숙이고, ‘나는 잘 못하는 아이야’라고 자책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그럴 수 있지만, 그런 아이들을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촬영을 할수록 깊게 들었다.

다행히도 많은 교사들이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차이를 격차로 만들지 않기 위해, 아이들에게 학교라는 기회를 통해 다른 아이들과 동일한 발판을 만들어주기 위해 애쓰는 교사들이 많이 있다. 나 역시 교육 프로그램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제작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교육이라는 기회가 최소한의 동등한 출발선, 최소한의 동일한 발판을 만들어주는 사회이기를 바란다.

가끔 예전에 만났던 아이들이 몹시도 궁금하고 보고싶을 때가 있다. 너무 너무 착한 운이는 지금 잘 지내고 있을까? 이제는 책상 밑에서 고개를 들고 나왔을까? 포기를 모르는 설이는 이제 손을 들고 발표를 잘할까? 한 명 한 명의 어여쁜 아이들이 각자의 속도로, 저마다의 자신감으로 즐겁게 학교를 다니고 있기를, 그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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