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전 대통령 사저 앞 시위대 인터뷰를 포기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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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전 대통령 사저 앞 시위대 인터뷰를 포기한 까닭
양산 사저 앞에서 목청을 높이는 시위대...무엇이 그를 움직였을까
  • 김현지 MBC경남 PD
  • 승인 2022.05.31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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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오후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주민 40여 명이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 도로에서 한 보수단체가 진행하는 집회현장을 찾아 소음으로 인한 생활 불편을 호소하며 거친 항의를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24일 오후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주민 40여 명이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 도로에서 한 보수단체가 진행하는 집회현장을 찾아 소음으로 인한 생활 불편을 호소하며 거친 항의를 하고 있다. ©뉴시스

[PD저널=김현지 MBC경남 PD] 문재인 전 대통령의 양산 사저 앞에서 확성기를 들고 욕설을 퍼부으며 웃통을 벗고 다니는 남자를 보았을 때, ‘인터뷰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저 사람은 어떤 이유로 저 자리에 나와 뜨거운 5월 햇볕 아래 맨살을 드러내고 목청을 높이고 있을까. 무엇이 그를 움직이게 했을까.

맨 첫마디는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안녕하세요? 그다지 안녕해 보이지는 않는다. 실례합니다. 실례를 아무렇지 않게 전시하는 사람에게 오히려 비아냥처럼 들리진 않을까? 고민할수록 나는 정말 그를 인터뷰 하고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나에게 그는 ‘돌아온 서북청년회'로 보였다.

서북청년회는 해방 뒤 북한의 탄압을 피해 월남한 청년들을 중심으로 1946년 11월 30일 서울에서 결성된 극우반공단체다.  아무런 기반 없이 남쪽으로 쫒겨 내려온 이들은 주로 좌익세력에 대한 ‘백색 테러’를 담당했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일자리 창출’이었고, 젊은이들의 분노와 증오를 연료로 제주에서 민간인을 학살하고 각종 정치적 암살과 린치에 적극 활용했다.

그런데 서북청년회의 처음은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보면 누구나 알 수 있지만 서북청년회의 마지막은 찾을 길이 없다. 이들은 어떻게 사라졌을까? 아니, 어디로 스며들었을까? 마지막이 불분명하다는 것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뜻일지 모른다. 그들을 인터뷰 할 수 있다면 혹시 우리는 이 증오와 분열의 시대를 조금은 바꿀 수 있지 않을까?

2014년 ‘서북청년단 재건 준비위원회’라는 극우단체가 등장해 소란스러웠다. 서울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리본을 철거하려다 말썽을 일으킨 그들의 서식지는 ‘일간베스트(약칭 일베)’였다. 이들이 반세기를 넘어 다시 소환된 까닭은 그 필요와 쓰임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유튜브라는 새로운 서식지에 구독과 좋아요, 후원금이라는 영업툴로 무장한 극우단체들의 작동 원리는 대중에게도 대충 파악되었다. 혐오의 엔터테인먼트. 우리팀에게도 먹히고 상대팀에게도 먹히는 양방향 수익구조. 하지만 내가 좀 더 궁금한 것은 이들에게서 경제적 이유와 정치적 동력을 지우고 나면 드러날 인간적 맨얼굴이다. 인터뷰에 미친 인간은 마치 나쁜남자를 나만은 갱생시킬 수 있다고 믿는 어리석은 여자처럼 그를 인터뷰하며 그가 자신의 맨얼굴을 직접 대면하기를 바랐다.

MBC경남 지난 15일 보도 화면 갈무리.
MBC경남 지난 15일 보도 화면 갈무리.

나를 제정신 들게 해 준 것은 있는듯 없는듯 했으나 분명 있어왔던 데스크였다. 인터뷰 불허. 이유는 누구나 인터뷰 할 수 있다는 언론의 자격과 권한은 어떤 인터뷰는 해선 안 된다는 책임과도 이어져 있다는 것. 증오와 폭력을 동력으로 하는 불량 기차에 석탄을 부어넣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들을 인터뷰 하는 것은 문화인류학자나 정치경제학자들이 해야 할 일이지 공영방송이 할 일은 아니다. 마치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찬반 토론이 전파를 타서는 안 되었던 것처럼 어떤 의견은 논쟁거리로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 의견이라고 말하기 낯부끄러운 혐오는 전파를 타고 전해져서는 안 된다.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하던 우리 데스크의 조용한 한방에 나는 바로 물러섰다. 역시 선배는 밥그릇 수로만 되는 게 아니구나. 그래도 나는 인터뷰에 환장한 인간. 그들이 마이크를 내려 놓은 후 다시 웃옷을 걸칠 때 나는 또 인터뷰를 계획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당신에게 당신만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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