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계절, 여름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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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계절, 여름 앞에서
[나의 선곡노트 ②]
  • 강소연 KBS 라디오 PD
  • 승인 2022.06.02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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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강소연KBS 라디오PD] 여름이 싫지만 초여름은 좋다. 완전한 익지 않은 연둣빛을 보고 있자면 마음에 풀기가 돌며 심장이 발랑발랑, 온몸에 슬러시를 부어놓은 느낌이 든다. 살랑살랑 스치는 시원한 바람, 푸른빛 나무들, 매일 아침 창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피톤치드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기엔 나도 덩달아 초록이 된다. 

봄이 파릇파릇 피어나는, 환하게 웃는 아이들이라면 내게 초여름은 20대 초중반의 여자사람같다. 헐렁한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머리엔 늘 커다란 헤드폰을 끼고 다니는, 눈을 마주치면 씨익 웃어주는 습관이 있다. 초여름은 내가 좋아하는 여자친구가 얼굴을 잔뜩 찌그러뜨리며 헤헤헤, 환히 웃는 모습을 하고 있다. 

모든 계절이 그렇겠지만 여름은 특히 음악과 함께하기 좋은 계절이다. 아니, 음악과 하나가 되기에 좋은 계절이라고 해야하나. 팬데믹으로 움츠러있던 공연과 페스티벌도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펴는 모양새다. 간만의 자유에 기분좋은 노랫소리가 곳곳마다 울려퍼진다. 모든 것이 아직 다 익지 않은 이 계절, 초여름을 닮은 곡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어느 선선한 저녁 창문 앞에서 듣고 있자면 별안간 어떤 감상이 떠오를 법한. 

1. 백예린-물고기(바로듣기

백예린은 초여름 하늘에 뜬 구름과 닮았다. 시원하고 가볍고 자유롭다. 약 3년 만에 낸 한국어 신곡, 그녀를 많은 대중에게 인식시킨 ‘바이 바이 마이 블루’, ‘우주를 건너’를 함께한 프로듀서 구름과 작업했다. 이 곡에서 그녀는 한 마리의 물고기가 바다 속을 유영하듯 노래한다. 단조로운 일상에 바다 한 컵이 필요할 때, 파란 사과를 한 입 깨문 것 같은 시원함이 필요한 순간에 들어보자. 

2. 다정-do what you want(바로듣기)

자유롭고 싶다. 내가 원하는 그대로, 살아있고 싶다. 현실과 갈망의 간극을 청춘의 언어로 풀어낸다. 계절이 모두 각자의 무게를 지고 있듯 우리도 수많은 'but'을 지고 살아간다. 초여름의 애매함을 닮은 인생의 계절에 우리는 꿈을 꾸고, 여전히 삶을 산다. 네모 안에 갇힌 나의 지금을 생각하고 있자면 어느덧 다정이 꿈꾸듯 다정하게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나요? 모호한 계절은 짧고 찬란해서 유일할까. 

3. 세이수미-No Real Place(바로듣기)

텐션이 떨어지고 조금 침잠하는 느낌이라면 부산에서 온 초여름 한낮의 곡을 들어보자. 헤드폰을 끼고 목적지 없이 밖으로 무작정 나서 ‘네가 제일 좋아하는 밴드’ 세이수미의 노래를 듣자. 반스 신발을 신어준다면 금상첨화. 초여름을 닮은 곡에는 자유와 함께 불확실성이 묻어있다. 아직 무엇도 완전하지 못한, 봄도 여름도 아닌 계절감. 청춘이 음으로 현현한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부산의 뜨거운 햇살을 맞으며 용감하게 끝을 모르고 걷자. 그러면 이 초여름은 우리가 사는거다! 그러다가 펜스가 나오면...부수고 나가자. 우리는 용감하니까. 

4. 김뜻돌-비오는 거리에서 춤을 추자(바로듣기)

걷다가 비가 내리면 춤을 춰야하지 않을까? 비 오는 거리에서 춤을 추자. 초여름이라기보단 뜨거운 한여름과 더 닮아있나 싶지만, 나는 이 노래를 너무 좋아한다. 야외 공연장에서 음악을 비오듯 맞으며 춤추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음악은 방안에 들어앉아서 시공간을 여행할 수 있게 만드는 엄청난 매력이 있는데, 이 노래를 들으면 당장 머리 위로 비가 쏟아지고 우리는 잔뜩 젖은 채 온몸을 흔들고 있다. 하루 이틀 사는 것도 아닌데 인생은 늘 일교차 큰 초여름처럼 서툴러, 서툴러. 근데 서툴면 어때? 재밌잖아 오히려 좋아. 뛰어! 

5. 더 보울스-square(바로듣기)

어느새 비가 그치고 다시금 상쾌한 바람이 분다. 더 보울스의 음악은 재미있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곡을 한다. 약간은 변덕스러운, 금방 사라질 것 같은 초여름의 날씨와 그래서 닮아있다고 하면 너무나 끼워맞추기일까. 하지만 상상되지 않으세요? 한창 내리던 여우비가 그치고 우리는 초여름 햇살 아래 반쯤 젖은 채 걷고 있어요. 반짝반짝 하는 햇빛이 팔에 떨어져 살짝 따가운 그 느낌, 자유를 찾아서 걷는 아이가 된 느낌으로. 

6. 아월-멍(바로듣기)

이쯤 되면 초여름 노래라기보다 취향대잔치가 되어버린 느낌이지만 내 취향이 초여름이라고 해 두자. 멍처럼 잡힐 뜻 금세 떠날 것 같은 초여름의 어느 밤. 보컬 홍다혜의 목소리에는 어쩐지 하염없는 한숨이 담겨있다. 우리의 청춘도 이런 것 아닐까? 아직 확실하지 못한 일교차 그 사이 어디에서 한숨과 웃음을 번갈아 지으며 삶을 고민하는 것. 날씨 좋은 여름 밤 한강에서 이 노래 들으며 맥주 마시면 끝도 없이 들어간다. 물론 경험담은 아니다. 

7. 전진희-우리의 사랑은 여름이었지(바로듣기

없던 여름 사랑의 기억까지 조작한다. 담담하고 잔잔한 여름의 끝. 이 곡은 치열한 계절을 보내고 여름의 끝, 가을의 초입에 들으면 좋겠다. 치열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뜨거운 여름을 살자는 의미에서 마무리에 합류시켰다. (너무 뻔뻔한데요) 푸르른 이 여름의 우리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선명하게 노래하자.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관점에서 초여름을 떠올리는 곡들을 골라보았다. 아마 메시지의 핵심이라면 ‘불완전함’이 아닐까. 하지만 오히려 불완전할 때 우리는 유일하고 더욱 찬란하게 빛난다. 짧게 지나는 초여름이 소중하듯이 여름의 초입,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서툴고, 뛰고 노래하며 보내자. 뜨겁게 불확실하고 차갑게 타오르는 단 하나의 계절을 보내자. 그러면 이 여름은 단연코 우리 겁니다. 모두의 사랑이 여름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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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연은 KBS 라디오 PD로 현재 <스테이션Z>를 연출하고 있으며 <강한나의 볼륨을 높여요>, 팟캐스트 <덕업상권>, <박원의 키스 더 라디오>를 연출했다. 간간이 글도 쓰면서 책 <케이팝의 역사, 100번의 웨이브>(공저), <취미가 Vol.2>(공저)를 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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