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보좌관, 질리는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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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보좌관, 질리는 보좌관
[라디오 큐시트]
  • 박재철 CBS PD
  • 승인 2022.06.06 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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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해양수산부 국정감사에서 윤재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해수부 장관에게 보좌관이 든 양식과 자연산 연어의 차이에 대해 질의하고 있고 있는 모습. ©뉴시스
지난해 10월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해양수산부 국정감사에서 윤재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해수부 장관에게 보좌관이 든 양식과 자연산 연어의 차이에 대해 질의하고 있고 있는 모습. ©뉴시스

[PD저널=박재철 CBS PD] “어렵게 출연하셨고, 다른 중요한 말씀도 많이 하셨는데, 꼭 저런 제목으로 기사가 나가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문자 하나가 와 있다. 모 의원 보좌관이다. 

읽는 순간 손에 들린 휴대폰이 무거워졌다. 행간에 불만이 꾹꾹 차 있어서다. 안 한다는 의원을 설득해 출연까지 성사시켜준 보좌관이라 신발 속 뾰족한 돌멩이 같은 기사 제목에 생겼을 그의 섭섭함이 이해됐다. 

라디오 방송이지만 요즘은 인터뷰 전문이 텍스트화해 공개된다. 유튜브에도 동시 송출된다. 그날그날의 이슈가 기사나 영상 콘텐츠로 만들어져 금세 퍼져 나간다. 

대선에 이어 지방선거가 맞닿아 있어 그간 정치인 섭외가 잦았다. 섭외 창구는 늘 보좌관이다. 의원 한 명 당 보좌진이 9명까지 있다. 4급부터 인턴까지 서열화해 국감이나 선거에서 분업체계로 움직인다.

언론은 보통 공보를 담당하는 보좌관과 자주 연락한다. 사실 보좌관들은 업무 범위가 넓어 정확한 구획이 어렵긴 하다. 유능한 경우는 일당백이고 동서남북 뛰는 리베로다. 회기 중 질의준비와 법안 심의, 후원회 관리는 기본이다. 거기에 각계각층의 민원 청취와 의원 대소사 해결, 보도자료 작성 및 배포까지 시쳇말로 ‘아플 권리도 없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렇다고 임기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4년 의정 기간까지 의원과 함께 간다는 법도 없다. 채용과 면직도 오롯이 의원 손에 달렸다. 특수 경력직 혹은 별정직 공무원이라 의원의 임기 완료 후에는 고용 승계 의무가 없다. 다만 운이 좋아 총 근무 연수를 10년 채우면 공무원 연금을 받을 수 있단다. 

사람살이가 늘 그렇듯이 이곳 보좌관의 세계에도 다양한 ‘톤 앤 매너’가 존재한다. 의원의 위세를 본인의 것인 양 으스대는 축이 있는가 하면, 원활한 언론 관계 유지도 주요 업무라서 신경을 쓰는 유형도 있다.

문자를 보낸 보좌관은 후자에 속한다. 시사 프로그램을 하다보면 저 의원은 복이 참 많네, 어떻게 저런 보좌관을 옆에 두고 일을 할까 싶기도 하고, 차라리 보좌관이 의원이면 더 낫겠다 싶은 때도 있다. 정책 이해도가 높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몸에 배어 있어 당이나 정파를 떠나 좋은 인상을 받게 된다. 물론 데칼코마니마냥 정확히 반대의 경우도 있지만.

지난 14일 첫 선을 보인 JTBC 금토드라마 '보좌관'. ⓒJTBC
2019년 보좌관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JTBC 드라마 '보좌관'. ⓒJTBC

예전에는 의원의 꿈을 안고 보좌관을 시작한 사례가 적잖았는데 지금은 하나의 고유한 직업군이 됐다. “소설을 시작할 때면 직업들을 상상한다. 직업에서 모든 게 시작된다. 한 사람이 돈을 받기 위해 어떤 일을 할지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의 처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얼마 전 프로그램에 초대한 작가 김중혁의 말이다. 김 작가는 다양한 직업군을 소설화하면서 그 특징을 익히는 그만의 방법으로 수험서를 공부한다고 했다. 이를테면 소방관이나 전기설비사 필기시험 문제집을 직접 풀어보는 식이다. 

시중에 나온 보좌관 관련 수험서는 따로 없는 걸로 안다. 그럼 보좌관의 직업적 특성은 뭘까? 언론에 국한해 내가 파악한 보좌관의 주요 자질은 ‘메신저로서의 신뢰도’다. 물론 계량화, 수치화하기 어렵다. 

단순히 섭외를 성사시켜줘서 신뢰가 생기고 거부해서 신뢰가 깎이는 것이 아니다. 승낙과 거절에 명확한 이유와 배경을 납득 가능한 언어로 전달해줄 때 신뢰가 쌓인다. 그리고 가능한 신속하게 그 가부를 알려줄 때 고맙다. 

될듯 말듯 질질 끌며 섭외 대안까지 앗아가는 보좌관들이 제법 있다. 제작자와 보좌관 사이에 통화든 문자든 언쟁이 오갈 때도 있다. 그럴 때 날것의 감정을 표출하며 제작자를 ‘질리게’ 하는 보좌관이 있는가 하면, 프로그램의 허점을 파고들어 ‘아프게’ 하는 보좌관도 있다. 신뢰를 얻는 쪽은 자명하다. 

‘달을 봐야지 가리키는 손가락만 본다’는 말이 있다. 부수적인 것에 집착해 본질을 놓친다는 일침인데 난 생각이 좀 다르다. 같은 메시지도 어떤 메신저냐에 따라 전달되는 폭과 깊이가 달라지기도 한다. 누구의 손가락이냐에 따라 달을 볼 마음이 생기기도 사라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게 인간사 같다. 

좋은 보좌관은 설득과 설명에 애쓴다. 또한 그것에 능하다. 제작자에게든 의원에게든. 그리고 격에 맞게 어필한다. 상대방에게 마음의 빚을 남긴다. 그럼 나중에라도 꼭 신경을 쓰게 된다. 의원이 빛나는 것은 본인 스스로의 의정 활동에 그 근본을 두겠지만 보좌관의 조력도 만만치 않다. 감추고픈 치부를 키워야 하는 제작자의 입장과 덮고 줄여야 하는 보좌관의 입장, 타격점을 예각화해야 하는 창을 든 자의 마음과 그걸 막아 파급력을 둔각화해야 하는 방패든 자의 마음이 늘 엇갈린다.

각자 다른 위치에서 상충 되는 일을 하지만 상대에게 존중감을 불러일으키는 직업인을 만나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 이들이 있다면 “지금보다는 뭔가 나아지겠지” 하는 막연한 마음이 들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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