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 판타지에 숨은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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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우’ 판타지에 숨은 메시지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유 있는 신드롬
  •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22.07.22 14: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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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스틸 이미지. ©더시그니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스틸 이미지.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신드롬급 인기를 끌고 있다. 0.9%(닐슨 코리아)로 첫 스타트를 끊은 드라마는 8회에 13.1%까지 치솟으며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ENA(전신은 SKY)라는 대중들에게 아직 낯선 케이블 채널에서 거둔 성과라는 게 놀라운데, 이 드라마는 채널의 인지도를 급상승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신드롬급 인기에 관련 보도와 글도 쏟아진다. 그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장애’를 바라보는 이 드라마의 시각에 대한 것들이다. 대부분은 우영우(박은빈)라는 판타지 캐릭터를 통해 사회가 갖고 있는 장애에 대한 편견들을 되짚게 해준다는 호평들이지만, 그 중에는 우영우 역시 천재적인 기억력을 가진 서번트 증후군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혹여나 이것을 자폐의 전부로 치부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섞인 비판도 있다. 하지만 드라마가 우영우의 목소리를 빌려 “자폐인은 천차만별”이라는 이야기를 꺼내놓는 것처럼 작가는 이런 우려 또한 염두에 뒀다는 걸 알 수 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주인공의 이야기이고, 그래서 자폐라는 소재에 관심이 집중되는 건 당연한 현상이지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신드롬에는 이밖에도 다른 이유가 있다. 자폐로 대변되어 있지만 사회에서 소외된 어떤 존재나 처지라도 살만한 세상이라는 이 드라마의 메시지가 그것이다.

이 관점으로 보면 우영우는 사회가 소외시킨 약자들의 대변자로 보인다. 첫 재판정에 올라 먼저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이들을 향해 우영우가 당당하게 자신의 장애를 먼저 밝히고 양해까지 구하는 대목은 인상적이다. “모두 진술에 앞서 양해 말씀 드립니다. 저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가지고 있어, 여, 여러분이 보시기에 어, 말이 어눌하고 행동이 어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을 사랑하고 피고인을 존중하는 마음만은 여느 변호사와 다르지 않습니다. 변호인으로서 피고인을 도와 음.. 사건의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라면 이 ‘이상한 변호사’가 또박또박 말하는 이 말에 울컥하지 않을 수 없을 게다. 그건 장애를 가진 이가 자신의 변론을 듣는 이들에게 혹여나 불편을 끼칠까 배려하는 마음이 담겨서다. 어딘가 어색하게 느끼며 왜 장애를 가진 이가 변호사로 설까만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가슴이 섬뜩해지는 순간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8화 방송 화면 갈무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8화 방송 화면 갈무리.

이렇게 당당히 자신을 밝히고 변론을 하는 우영우는 기발한 관점을 들려주거나 우리의 통상적인 편견을 깨는 모습으로 통쾌함까지 안겨준다. 처음에는 ‘보통 변호사’ 운운하던 한바다 로펌의 상사 정명석(강기영)이 조금씩 마음을 열고 그를 차별 없이 대하는 모습 또한 기분 좋은 변화다. 

이런 장면은 같은 회사 동료이자 우영우의 로펌 동기이기도 한 최수연(하윤경)에게서도 보여진다. 장애가 있어서가 아니라 늘 타인을 배려하는 게 몸에 익어버린 최수연은 자신이 우영우를 그렇게 챙겼는지조차 잘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영우가 먼저 최수연에게 말한다. "로스쿨을 다닐 때부터 너는 나한테 강의실의 위치와 휴강 정보와 바뀐 시험범위를 알려주고, 동기들이 날 놀리거나 속이거나 따돌리지 못하게 하려고 노력해. 지금도 너는 내 물병을 열어주고 다음에 구내식당에 또 김밥이 나오면 나한테 알려주겠다고 해. 너는 밝고 따뜻하고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야. ‘봄날의 햇살 최수연’이야.”

우영우의 그 말은 최수연과 이를 보는 시청자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실제로 장애를 가진 이들이 필요로 하는 건 무관심도, 장애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과잉 친절도 아니기 때문이다. 딱 최수연처럼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하지 않고 또 의식하지도 않으며 누구에게나 배려하는 그런 것. 그래서 장애 자체가 새삼스러운 게 아닌 게 되는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보여주는 건 자폐 스펙트럼을 가졌지만 기막힌 변론으로 늘 이기는 우영우의 영웅담이 아니다. 자폐를 가졌어도 사회에서 제 역할을 척척해내는 판타지도 아니다. 우영우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여전히 차별과 편견 투성이다. 그런 현실을 인정하면서 이 드라마는 그래도 정명석이나 최수연 같은 인물을 통해 살만한 세상이라는 메시지를 놓치지 않는다. 적어도 이런 이들이 있다면 장애인은 물론이고 사회적 약자들 역시 살아갈 만하다는 메시지. 몽상적인 판타지가 아니라 손에 잡힐 것 같은 현실적인 판타지가 주는 리얼한 공감대가 이 드라마의 신드롬에 한축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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