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에 경찰특공대? 언론이 방치한 섬뜩한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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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을 바라보는 정부의 태도, 한쪽으로 쏠린 보도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사협상이 51일 파일만에 타결된 지난 22일 오후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도크에서 점거농성 중인 대우조선해양 하정지회 조합원들이 농성해제를 준비하고 있다.©뉴시스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사협상이 51일 파일만에 타결된 지난 22일 오후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도크에서 점거농성 중인 대우조선해양 하정지회 조합원들이 농성해제를 준비하고 있다.©뉴시스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지난 22일과 23일, 현 정부가 ‘공권력’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두 사건이 오버랩됐다. 22일에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이 종료됐고 23일에는 사상 첫 전국 경찰서장 회의가 열렸다. 생존을 걸고 파업한 하청 노동자들을 물리력으로 굴복시키는 데 동원된 경찰은, 단 하루 만에 정부의 장악 시도에 저항하는 투사로 등장했다. 

경찰의 극적인 변신이 사실 하나의 이야기라는 건 이 모든 사단의 핵심 인물인 이상민 행안부장관이 몸소 증명했다. 대우조선해양 파업 협상 타결 이틀 전인 7월 20일, 관련 회의에서 경찰특공대 투입 검토를 거론했다는 의혹이다. 경찰특공대는 대테러 부대다. 파업 노동자를 ‘테러범’으로 보는 섬뜩한 인식이 알려지자 장관이 내놓은 해명은 “브레인스토밍”이다.

생존을 건 노동자들의 파업이 한달 이상 이어지고 나서야 “불법 엄단”만을 외친 정치권력이 경찰 조직을 직접 통제할 때, ‘파업을 분쇄하는 경찰특공대’라는 비극이 과연 ‘브레인스토밍’에 그칠 수 있을까? ‘경찰국 신설’에서 군사독재의 그림자를 우려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안타깝게도 두 사건을 관통하는 우려점이 언론 보도에서는 찾기 어렵다. 고질적인 ‘중계보도’ 습관 탓도 있지만 그 습관마저 한쪽에 기울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 파업과 경찰서장 회의에서 언론은 비슷한 양상을 보였는데, 특히 본질과 무관한 얘기로 딴청을 피운 점이 눈에 띈다.

7월 20일부터 22일까지 ‘대우조선해양 파업’을 언급한 773건의 보도 중 절반에 가까운 336건이 ‘불법파업’을 언급했다. 지난 1년 간 사측과의 협상 및 지방노동위 조정 중지 결정 끝에 합법적으로 얻은 쟁의권이라는 사실, 10년 간 이어진 임금 체불 후 폐업이나 4대 보험 체납과 같은 ‘사측의 불법’은 찾아볼 수 없다.

사실 ‘불법’ 여부 이전에 ‘파업을 왜 했느냐’가 본질이다. 그러나 ‘임금 원상복구’는 단 1건, ‘단체교섭권’은 9건, ‘상여금’은 34건 언급에 그쳤다. 파업 노동자의 요구사항조차 없는 이상한 ‘파업 보도’다. 6월 22일부터는 ‘5000억’부터 ‘7000억’까지 덩치를 키워간 ‘사측의 손실 금액’ 보도도 100건 이상이다.

‘불법파업으로 수천억 손실’이라는 지배적 프레임 속에 “파업으로 휴업한 다른 노동자들은 임금 30%가 삭감됐는데 파업 노동자들은 연대기금으로 180만원을 받았다”는 악의적인 비방 보도(<대우조선, 임금 30% 깎는데…파업노조는 180만원씩 받았다 [김익환의 컴퍼니워치]> 한국경제, 7.17), “불법파업 때문에 협력업체 줄폐업”이라는 왜곡보도(조선일보 <민노총 하청 파업 47일…대우조선 협력사 7곳 ‘눈물의 줄폐업’>7.18)도 줄을 이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28일 오전 서울 강서구 강서운전면허시험장에서 열린 모바일 운전면허증 전국발급 개통식을 마친 뒤 경찰국 신설과 관련한 취재진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28일 오전 서울 강서구 강서운전면허시험장에서 열린 모바일 운전면허증 전국발급 개통식을 마친 뒤 경찰국 신설과 관련한 취재진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경찰서장 회의 관련 보도도 마찬가지다. 지난 23일~24일 이틀 간 ‘경찰서장 회의’ 언급 보도가 279건에 이르는데 이중 ‘복무규정 위반’이 98건이다. 반면 경찰국 신설의 핵심 쟁점인 ‘수사 개입’은 24건에 불과했다. 이상민 장관이 수차례 “큰 피해가 예상되는 사건에 장관이 신속히 수사하라고 할 수 있다”며 수사 개입을 공언하기까지 했음을 감안하면 태부족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25일 사설 <집단 행동으로 어떤 ‘경찰 독립’ 지킨다는 건가>에서 “문재인 정권에서 경찰이 대통령실 의중을 떠받들기 위해 해온 낯 뜨거운 일들은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라며 드루킹 사건,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등을 열거했다. ‘경찰 통제’ 문제를 ‘문재인 정부 때문’으로 정파화하는 것도 언론 보도의 특징이다. <주간조선>은 지난 26일, 류삼영 총경을 ‘조국집회에 참석한 편향된 인물’로 보도했다가 다른 사람과 착각했음을 알고 급히 삭제하는 촌극까지 벌였다. 

이러한 보도의 특징은 한쪽의 목소리에만 귀 기울인다는 편향성에 기인한다. 대우조선해양 파업을 유최안 부지회장의 ‘감옥투쟁’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보도한 언론은 6월 22일부터 7월 19일까지 약 1달 간 파업 보도 807건 중 고작 102건에서 ‘유최안’을 거론했다.

지난 25일 이상민 장관이 경찰서장 회의를 ‘쿠데타’로 규정한 발언은 하루만에 205건이나 보도됐지만 류삼영 총경의 ‘경찰서장회의는 반 쿠데타 행위’라는 반박은 3건이었다. 앞서 언급한 이상민 장관의 ‘경찰특공대 검토 거론’은 지난 25일부터 27일까지 고작 18건의 보도만 나왔고 그마저도 15건은 이 장관 측의 해명 받아쓰기였다. 

정부는 파업 현장의 여러 가능성을 검토하다가 ‘경찰특공대’도 나왔을 뿐이라고 한다. 파업 노동자는 형사 처벌 받을 가능성이 크고 경찰서장 회의 참석자들도 징계 받을 게 뻔하다. 이게 정말 기계적 중립에도 못 미치는 중계보도만 할 일일까? 언론이 야성을 되찾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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