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비봉이'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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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비봉이'의 고향
[히어로도 악당도 없는 세상 5]
  • 박정욱 MBC PD
  • 승인 2022.08.09 1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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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류가 결정된 남방큰돌고래 '비봉이'가 지난 4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포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뉴시스
방류가 결정된 남방큰돌고래 '비봉이'가 지난 4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포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뉴시스

[PD저널=박정욱 MBC PD] 베트남의 해안 지역에는 고래를 숭배하는 신앙이 널리 퍼져있다. 바다를 항해하던 어부들이나 과거 왕조의 국왕 혹은 장군들이 폭풍우를 만나거나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고래가 나타나서 생명을 구해준 이야기들이 실화와 설화가 뒤섞여 전해내려 오면서 고래의 신 '카옹(Cá Ông)'에 대한 민간신앙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카옹'은 '고래 왕'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이들 지역에는 고래를 모신 사원들이 존재한다. 고래 신앙은 베트남에서 비엣족과 더불어 양대 종족집단인 참족의 전통문화다. 참족은 바다에서 죽은 고래 사체를 발견할 경우 해안으로 끌고 와 예를 갖춰 매장하고 그 후 49일, 100일, 1년, 3년의 기일에 제사를 지낸다. 마치 자신의 조상에게 하듯 말이다. (이와 비슷하게, 내륙의 참족들은 코끼리를 숭배하는 전통이 있다.)

'카옹'에게 제사를 드리는 의식은 하나의 축제이다. 제사를 집례하는 이들이 전통의상을 입고 나와 제단에 경건하게 의식을 진행하면 마을 어부들은 빠른 쾌속선을 몰고 사원 인근의 바다를 질주한다. 그리고 지역의 남녀노소가 몰려나와 사원 앞에서 술과 고기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고래는 해안가 마을을 하나로 뭉치게 해준다. 어쩌면 그것이 고래신이 내리는 가장 큰 축복일지도 모르겠다.

호치민에서 동쪽으로 4시간 거리에 있는 판티엣(Phan Thiet)의 고래박물관에는 '카옹'의 뼈라고 전해지는 고래의 골격이 보존되어 있다. 이 골격은 동남아시아에서 발견된 고래 골격 가운데 가장 커다란 것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 거대고래가 오늘날에는 멸종했다는 데 있다.  '카옹'의 원형이 된 거대고래만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고래의 개체수가 꾸준히 줄어드는 데에는 베트남인들이 한몫을 하고 있다.

환경단체인 오션 컨서번시(Ocean Conservancy)의 2017년 보고서에 따르면, 베트남, 중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등 5개국이 바다로 흘려버린 플라스틱은 지구의 그 나머지 국가들이 버린 양을 전부 합친 것보다 많다. 수많은 고래들이 그 플라스틱으로 인해 사망한다. 오늘날 남중국해의 베트남 인근 해역에는 돌고래류를 제외하고는 고래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니 고래를 숭배하는 베트남인들 대부분은 직접 고래를 본 적이 없다. 

지난 3일 '비봉이' 방류 소식을 전한 KBS '뉴스7' 리포트 화면 갈무리.
지난 3일 '비봉이' 방류 소식을 전한 KBS '뉴스7' 리포트 화면 갈무리.

우리나라 수족관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남방큰돌고래 '비봉이'가 곧 바다로 돌아간다고 한다. 남방큰돌고래는 2012년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되어 보호·관리되고 있는 종이다. 정부는 2013년 ‘제돌이’, ‘춘삼이’, ‘삼팔이’를 방류하는 등 총 7마리의 남방큰돌고래를 방류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비봉이'는 2005년 제주 앞바다에서 불법적으로 포획되었다. 제주 퍼시픽랜드가 이를 사들이면서 17년 간 수족관에서 지내다가 이번에 바다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넓고 푸른 바다에서 '비봉이'가 행복하게 지내길 바란다. 하지만 이제 그의 고향 바다는 더이상 오랜 옛날 '카옹'이 유유히 헤엄치던 그 아름답고 깨끗한 고래의 낙원이 아니다. 온갖 오염물질이 날마다 끊임없이 흘러들어가 죽어가고 있는 바다이다. 게다가 수온도 계속 올라가 바다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중이다. 고래를 사랑하는 '우영우'는 언젠가 바다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비봉이'와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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