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힐 뻔한 ‘피지컬: 100’, MBC는 모험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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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 기록 쓰고 있는 '피지컬: 100'...MBC 내부선 "축하 강도 달라" 고무적 분위기
MBC 공모전에서 정규 프로그램으로 어울리지 않다는 이유로 탈락…회사 승인 이후 넷플릭스행
'제작사냐, 플랫폼이냐' 지상파 정체성 수면 위로...IP 확보 문제도 과제

넷플릭스 TOP 10 집계에서 2위에 오른 '피지컬: 100' 
넷플릭스 TOP 10 집계에서 2위에 오른 '피지컬: 100'

[PD저널=임경호 기자] 흥행 기록을 쓰고 있는 <피지컬:100>의 성공에는 장호기 MBC PD의 참신한 기획과 이례적으로 2주만에 투자를 결정한 넷플릭스의 선구안이 주효했다. 그렇지만 소속 PD의 OTT 오리지널 연출을 허락한 MBC의 전향적인 판단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프로젝트였다. <피지컬: 100>을 다룬 보도에서 유독 ‘제작사 MBC’에 주목한 기사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피지컬: 100>은 MBC가 김태호 PD의 <먹보와 털보>에 이어 두 번째로 제작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이다. 지난 7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유기환 넷플릭스 매니저는 “2021년 10월 18일에 장호기 PD가 기획안을 메일로 보내왔다”며 <피지컬: 100>의 탄생 과정을 설명했다. 

<PD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시사교양본부 소속인 장 PD는 그에 앞서 소속 본부 파일럿 프로그램 공모전에 기획안을 냈는데, 시사교양 정규 프로그램으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MBC 편성이 막히자 장 PD는 내부 승인을 받아 넷플릭스의 문을 두드렸다. 넷플릭스의 긍정적인 답변을 얻은 뒤에 <피지컬: 100> 제작이 급물살을 탔다는 후문이다. 

유해진 MBC 시사교양본부장은 “젊은 PD들 사이에 OTT에 대한 욕구와 지향이 상당히 존재한다. (OTT를 통해 콘텐츠를 선보이는) 시도를 계속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달받고 있지만, 본업인 방송과의 조화를 어떻게 맞춰가야 할지 고민이 되는 게 현실”이라며 “<피지컬: 100>의 성공은 과도기적 상황에서 발생한 놀라운 사건”이라고 말했다.

넷플릭스 '피지컬: 100' 기자간담회 현장.

콘텐츠가 OTT 중심으로 소비되는 흐름과 제작비와 편성의 한계 속에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요구는 지상파 내부에서 꾸준하게 쌓이고 있다. 

장 PD도 <피지컬:100> 기자 간담회에서 “지상파의 위기 등 여러 얘기가 나오는 것처럼 내부 조직원으로서 위기감을 느꼈고, 돌파구가 필요하단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넷플릭스가 국내에 진출할 때 ‘하청기지화’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지만, 안팎으로 OTT와의 관계 재성립이 필요하다는 요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지상파 3사 중에서도 박성제 MBC 사장은 ‘지상파 채널을 소유한 글로벌 미디어 그룹‘으로 MBC를 규정하면서 OTT 진출에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MBC가 2021년 시사교양본부에 꾸린 'OTT&팩추얼 프로그램 개발 파트'는 새로운 방향 설정과 내부의 요구를 반영해 신설된 조직이다. <피지컬: 100>은 파트가 신설된 뒤 처음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OTT&팩추얼 프로그램 개발 파트 관계자는 "<피지컬: 100>의 성공을 기점으로 협업에 관한 긍정적인 시선이 늘었다. 구성원들로부터 받는 축하의 강도가 확실히 다르다”며 “온에어에 천착하지 않고, 다양한 플랫폼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제작진을 키우고 다른 PD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는 역할을 내부에서 기대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넷플릭스 '피지컬: 100'
넷플릭스 '피지컬: 100'

<피지컬: 100>의 성공 뒤에 남은 과제도 적지 않다. 별다른 지원 체계나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고 PD들의 개인기에만 의존할 경우 오히려 인력 유출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OTT 오리지널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는 지상파 PD는 “다른 프로그램과 다르게 OTT 콘텐츠를 준비하면서 회사에서 지지와 응원을 보내고 있다는 인상을 받진 못했다”며 “아직은 조직 단위의 어떤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다 보니 개인의 퍼포먼스로 기회를 잡아야 하고, 이런 기회에 대한 지속성 문제도 있다. 외부에서 경험을 쌓은 PD들이 이를 발판으로 회사를 떠나는 일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오징어게임>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IP 확보 문제도 이제 남일이 아니다. 

한 MBC PD는 “편성을 따내 매출 올리더라도 IP가 없으면 정작 성장이 안 되는 기성 독립제작사의 고민처럼 넷플릭스에 납품할 때 우리의 위치가 그와 유사해 지는 것 같다”며 “플랫폼이냐 콘텐츠 회사냐 하는 정체성 문제도 생기겠지만,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짜는 문제가 실질적인 고민거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성민 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지상파의 콘텐츠 제작 역량이 후퇴하고 있다는 우려 속에서 <피지컬: 100>과 같은 콘텐츠를 통해 전통적인 방송 사업자가 글로벌 제작 역량을 갖출 수 있는 모멘텀이 되었다는 점은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스튜디오 모델이 어느 정도 정착된 드라마 분야와 달리 예능은 인하우스 PD가 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그 구조가 점점 깨어지고 있다”며 “경험 있는 제작진의 독립이 보편화되는 상황에서 제작 기회만 늘릴 것이 아니라 지상파가 제작역량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장기적 사업모델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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