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제작기 - KBS [다큐멘터리 대한민국-인권보고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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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은 나갔어도 달라진 것은 아직 없다”
살아남은 우리들의 의무에 대해
황범하

|contsmark0|7월 초순쯤 됐을까? 프로그램 이름 앞에 ‘건국 50년 특별기획’ 이란 수식어가 붙는 만큼 다가오는 8월에는 뭔가 해야 된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그런데 광복 50주년이었던 지난 95년부터 8월만 되면 비슷한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왔던 터라 이번에는 뭔가 다르게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차별성을 이끌어내는가 하는 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늘 가지고 있었던 의문 하나, ‘양심수는 언제 풀려나나?’ 하는 것과 그간 민주화운동 속에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기억들이 그 차별화를 보장해주리라 자신했다. 8월이면 건국50주년이라고 모두들 떠들겠지… 특히나 새 정부가 출범했으니까 더 하겠지. 그러나 오늘이 있기까지, 정권교체로 상징되어지는 이정도의 민주화가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는지 사람들이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내게 있었다.imf 태풍 속에서 민주화운동에 대한 기억들은 모두 휩쓸려갔는지 방송에서는 전혀 민주화과정의 희생자들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가족들은 여전히 커다란 아픔을 지닌 채로 정권교체 이후의 시간들을 씁쓸하게 보내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들은 여전히 소수파, 외로운 존재들이었다.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으로 14년째 옥살이를 하고 있는 강용주씨와 그 어머니, 아들을 최루탄으로 잃은 故이한열 어머니 등이 그랬다.다른 일을 하나 처리한 후 7월 하순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민가협의 양심수 가족들과 유가협의 민주화희생자 유가족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신정권하의 대표적 희생자들인 74년 인민혁명당 사건의 사형수 유가족들도 만나뵈었다. 그들을 만날 때마다 난 사실 좀 주눅이 들어있었다. 이제 와서 정권 바뀌고 분위기가 좀 괜찮아지니깐 그저 방송용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게 아니냐는 질책을 받을까 걱정했었다. 자괴감 속에서 찾아간 pd에게 그분들의 첫 반응은 ‘고맙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kbs가 이런 소재를 다뤄도 되느냐며 오히려 pd를 걱정해주는 반응까지 있었다. 솔직히 부끄러웠다. 그들에게 우리 pd, 기자들은 아직도 외압과 상부의 지시에 얽매여 있는 존재들이었다. 아직까지도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인혁당 사형수 유가족분들의 언론에 대한 소외감은 뿌리깊은 아픔이었다. 촬영을 하면서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45분짜리 프로그램 한 편으로 다루기에는 들추어내고 다시 바로잡아야 할 이야기들이 너무 많았다.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20년이 훨씬 넘도록 언론에 의해 철저히 소외된 채 응어리진 가슴을 안고 살아온 그들에게 45분은 너무도 짧은 시간이었다.대법원에서 사형확정판결이 난 지 채 하루도 안되어 75년 4월 9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인민혁명당 사형수들과 이후 간첩의 가족으로 몰려 숨죽이고 살아야했던 유가족들의 이야기, 조작된 유학생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고교선배를 만났다는 이유로 역시 간첩으로 몰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중에서 사상전향제폐지 등을 줄기차게 주장하며 끝내 준법서약을 거부해 사면에서 제외된 강용주씨와 그 어머니, 80년대 군대에서 또는 노동운동을 하다가 의문사한 많은 청년들과 그 아픔을 이기지 못해 자살한 어느 어머니의 한맺힌 사연들, 5공 군사독재시절의 불법적인 고문수사 피해자들의 증언 등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진실들을 충분히 담아내기에는 한 편의 프로그램은 역부족이란 판단이 들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화면으로 담아내면서 가슴속에는 또 하나의 미안함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시간의 제약 속에서 편집과정에서 잘려 나갈 이야기들이 또 다시 제외됐다는 상처를 그들에게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으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결국 대구에서 인혁당 사형수 미망인들을 만나고 돌아온 이후 두 편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의견을 데스크에 전달했고 다행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인권보고 1편 ‘0.75평의 민주주의’는 8·15특사를 계기로 양심수문제를 중심으로 5공화국의 불법고문수사 등을 다뤘고 2편 ‘잊혀진 죽음이 말한다’는 유신정권 하의 인민혁명당 사건과 80년대 민주화과정의 희생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이 과정에서 양심수에 관한 내용은 mbc 이채훈 pd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예를 들면 8·15특사가 있던 날 나는 대전교도소를 취재하고 이채훈 pd는 안동교도소를 취재해서 촬영원본을 교환했던 것이다. 애초 한 편으로 만든다는 생각에서 인혁당, 80년대 의문사 등 여러 케이스를 열흘 정도의 촬영기간 내에 소화하려다보니 일정에 쫓겨 놓친 부분이 많았는데 이채훈 pd와의 자료교환은 큰 도움이 되었다. 그밖에 고문수사에 관한 증언이나 인혁당 관련 부분은 89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5공화국 - 인권보고]와 93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극장 - 겨울공화국] 등에서 많은 부분을 재활용했다. 짧은 제작기간이었지만 두 편을 연달아 낼 수 있었던 것은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의 도움이 컸다.방송이 나간 후 민주화실천가족협의회나 소위 인혁당 관련자 유가족분들 등 제작에 협조해주신 분들로부터 연신 고맙다는 전화가 왔다. 겨우 한숨을 놓을 수 있었다. 혹시나 언론에 대한 피해의식을 또 한번 안겨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내내 있었는데 그들의 반응은 매우 고무적인 것이었다. 두 편으로 만든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pc통신을 살펴보니까 잘 봤다는 의견들이 제법 보였다. 그 중에는 kbs가 이 정도로 방송한다면 수신료인상운동을 자기가 앞장서서 해주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잠시나마 행복한 pd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방송은 잘 나갔지만 현실적으로 달라진 것은 아직 없다. 공식적으로는 아직도 간첩이고 자살이며 그들의 죽음과 투옥은 엄정한 법의 집행이다.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란 생각이 든다.촬영을 마치고 장비를 챙기는 제작진에게 故이한열 군의 어머님께서 하신 말씀이 자꾸만 생각난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다루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살아남은 우리야말로 진정 고마움을 느껴야 할 사람들이니 말이다. 어떤 책임감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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