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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까?’를 넘어 ‘된다!’를 향해
정순영
SBS 예능국 차장

|contsmark0|에피소드를 풀어 쓴 과학사를 읽노라면, 과학의 이면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그 중에 하나, 지금으로부터 350년쯤 전에 ‘오토 폰 괴리케’라는 사람이 프로이센의 작센이라는 주의 수도인 ‘마그데부르크’에서 시장으로 지내고 있었다. 그는 틈만 나면 취미생활인 과학의 연구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나온 실험이 저 유명한 마그데부르크의 반구(半球)였다. 즉, 반구 2개를 합쳐 완전한 구체를 만든 후 부분 진공상태를 만들면 매우 강한 힘이 양쪽에서 작용을 해도 잘 떨어지지 않는 그런 실험이었다. 그는 이 실험을 당시 황제 앞에서 행하였는데, 반구를 합한 구체의 양 끝쪽 각 8마리의 말을 연결시켜 줄다리기를 했던 것이다. 끌어도 끌어도 구체는 갈라져서 반구로 되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한참이 지난 후 구체가 반으로 갈라지기는 했으나 이때 걸리는 시간과 노동력은 엄청났던 바, 이 실험은 당시 참관자들을 놀라게 하는데 충분했던 것이다.이 역사적 사건은 대기압의 힘을 보여준 실험의 고전이자 기본으로서 우리 <호기심천국>팀에서도 한번 해 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역사 속의 실험을 재현해 본다는 짜릿한 흥분과 함께 우리는 이 실험에 달려들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다름 아닌 반구를 정성 들여 만드는 일이었다. 반구의 양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어서 공기가 드나들지 않게 만드는 일이 가히 이 실험의 핵심이었던 바, 과연 우리의 의도에 맞게 제작해올까 하는 일말의 불안감을 갖고 작업에 착수했다. ‘무형의 대기압이 바로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초등학생 60명을 초대해서 실험에 함께 하기로 하고 반구를 잡아당길 기중기까지 실험에 필요한 모든 것을 착착 진행시켜 나아갔다. 우선, 몸 푸는 의미로 간단한 실험 2가지 실시! 빈 기름통에 물을 약간 넣고 버너로 가열하면 물은 수증기가 되고, 공기는 팽창해서 밖으로 나간다. 이 때 얼른 뚜껑을 닫고 찬물을 끼얹으면, 곧 퍽하는 소리와 함께 기름통이 쭈그러든다. 이는 찬물을 부을 때 기름통 내부의 수증기가 물로 바뀌면서 부피가 1/1800로 줄고 압력이 낮아지면서 부분 진공상태가 되고, 기름통 내부와 외부의 기압차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이었다.그렇다면, 기름통에 비해서 훨씬 단단하고 큰 드럼통은 어떻게 될까?똑같은 방식으로 실시! 그러나, 드럼통은 좀처럼 쭈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제작진 모두 초조해 하던 중 ‘안되는 것 아니야?’라는 생각이 모두에게 번질 무렵 ‘퍽’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역시 쭈그러들었다.‘음, 그림이군, 그림이야!’하는 흐뭇한 마음에 본격적인 실험에 돌입했다. 제작해온 반구를 맞춰보았다. 약간의 미세한 틈새가 보이기에, 이를 테이프로 막고 기름까지 뿌려가며 했지만, 드나드는 공기를 막을 수는 없었다.억지로 가열하고 붙었다 싶었을 때, 2명씩 양쪽에서 잡아당기면 견디는 시간은 고작 20초 정도! 불안감이 엄습했다. 역사 속의 한 사건, 그것도 350여년 전에 일어났던 사건을 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은 진정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시간은 자꾸 흐르고, 매끄럽게 마감되지 못한 표면을 원망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초등학생을 돌려보내고 ‘우리끼리라도 다시 해 보자’ 마음먹고, 이리 붙이고 저리 붙여도 결과는 역시 매한가지였다. 이번 실험은 실패다. 표면을 다시 깎고 잘 붙이는 수밖에 없었다. ‘공업사의 명예를 걸어라, 어떻게 그 옛날의 독일 한 지방만도 못한 기술력으로 대드는 것이냐! 3일간의 여유를 줄 테니 다시 봅시다.’ 결국 3일 후 다시 시도한 실험은 성공으로 끝났다.‘아! 대기압의 힘이 그렇게 큰 것이군요!’라는 찬사와 함께 방송은 나갔지만, 하마터면 그런 반구조차 제대로 못 만들까 하는 자조와 탄식 섞인 원망만 남은 실험이 될 뻔했었다.이렇듯 <호기심천국>은 언제나 실험 실패의 가능성이 상존하는 프로그램이다. 매주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는 실험대상을 선정하는 작업은 언제나 우리 제작진을 초조하게 하곤 한다. 매주 600∼800통씩 접수되는 엽서며 pc통신을 뒤져 실험이나 주제를 잡더라도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이리저리 추적하다 보면 또 부닥치는 문제는 그 문제를 해결해줄 만한 우리 사회의 전문가 집단이 너무나 부족함을 실감하기도 한다.따라서, 요즘은 한 주제를 풀어나감에 있어, 먼저 문제해결의 순서를 모두 정리한 후, 제보자를 역으로 찾기도 한다. 어쨌거나 이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우리 팀 모두가 느끼는 것은 잠재적 시청자 집단을 자극하여 tv앞에 모이게 하였고, 어렵다고만 생각했던 과학적 주제를 프로그램화한 결과 이렇듯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동시에 어떤 가슴 뿌듯한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반면에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방송에 대한 기본적인 통념은 언제든 버릴 수 있어야 하며 시청자는 늘 새로운 시도를 원한다는 엄연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혹자는 지적한다. 결국 모방 아니냐고? 물론 이 프로그램은 방송 선진 여러나라의 과학적 소재를 다룬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하였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는다.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시도에 대한 방법적 모색이었고 회를 거듭할수록 점차 우리 식의 해법을 발견하였다. 우리를 자문하고 있는 ‘신나는 과학을 만드는 사람들’ 역시 이 프로그램의 제작과 토착화에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 이제 <호기심천국>은 30회를 넘어서고 있다. 제작초기 가졌던 ‘될까?’에 대한 두려움이 자신감으로 바뀌어 가면서 전 제작진은 오늘도 실감나는 실험과 시청자들의 제보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그렇지만, 그동안 <호기심천국>의 해법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은 한 단계 높은 검증을 원하고 있으며, 더욱 멋진 과학적 실험의 결과가 도출되는 과정을 바라면서 아낌없는 비평을 해주고 있다. 비평이 지나쳐 일종의 매니아군이 형성되고 있음을 느끼기도 하지만, 고마운 사실임을 실감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보답은 역시 시청자들이 제보하는 호기심을 열심히 찾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작진 모두 노력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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