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의 바다’에서 확인하는 TV드라마의 희망
이강현
KBS 드라마제작국

|contsmark0|“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올해로 3회째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를 참관하고서 느낀 생각이다.작년, 재작년에 비해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상영편수도 늘었지만 ‘좋은 작품’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영화의 바다에 빠져라”는 표어처럼, 바다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왔는데 막상 남은 것은 아쉬운 목마름뿐이었다. kbs드라마제작국 프로듀서에게는 부산국제영화제는 일종의 문화적 열린 공간이다.시청률을 의식하며 tv드라마라는 일상성에 갇혀있던 드라마 pd들에겐 비록 제한된 기회나마 다양한 스타일의 영화를 보고, 또 부산의 밤바닷가에서 선·후배들이 나누는 영화감상의 이야기와 오늘의 tv드라마의 위상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말의 잔치’가 펼쳐지는 것은 매우 소중한 기억이었다.그래서 많은 동료들이 이 영화제를 위해 여름휴가도 아껴두면서 ‘영화에의 순례’를 준비하고 있었다. 변변한 해외연수의 기회도 없었지만 그나마도 imf한파 속에서 전면중단된 지금, 우리나라의 최대항구도시에서 국제영화제가 펼쳐지는 것은 드라마 pd들에게는 또다른 연수의 기회임에 틀림없고 새로운 영화의 조류나 그것을 보고 느끼는 관객들의 현장의 목소리를 체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재충전의 기회일 것이다.그러나 정작 영화제에 참가하고 보니 혼란스러움이 느껴졌다.세기말을 직면한 시대의 혼란이 스크린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작품 선정을 포함한 영화제 전반의 진행이 매우 치밀하지 못한 것 같았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실험적이고 예술적인 영화는 많았으나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영화가 부족했다고 느낀 것은 나혼자만의 생각이었을까? 대중적이지 않은 무거운 영화라는 인상을 준 ‘고요’를 개막작으로 올린 첫날에 이어 둘째날부터 본격적으로 영화제의 막이 올랐으나 예상외의 반응이 많았다. 일찌감치 시작된 예매기간 첫날에 매진을 기록한 화제작 ‘4월의 이야기’가 생각보다 별로였는데다 또다른 화제작인 ‘상하이의 꽃’도 그리 큰 호응을 얻지 못하게 되자 무슨 영화를 볼 것인가 혼란이 생기기 시작했다.더구나 올해 새롭게 영화제 상영장소로 추가된 mbc시네마홀이 시내 영화관들과 너무 먼데다 극심한 교통혼잡으로 인해 인접한 시간대의 영화들을 포기해야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많은 사람들이 시네마홀의 영화만을 고르던가 아니면 시네마홀의 영화들을 포기해야만 했고 결국 대규모로 표의 교환·환불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조직위에서는 작년에 일부 암표상의 횡포가 있었음을 이유로 표의 반환이나 교환을 일체 거부하였고, 예매 당시 팜플렛의 환불가능 표현을 보고 여유있게 좋은 표를 확보하려 했던 부지런한 매니아들은 한 장소에서 각각 물물교환에 나서야 했다. 결국 표의 교환이나 판매를 직접 개인간에 하도록 맡기게 되어 때아닌 이산가족찾기 식의 표구하기·표팔기 대자보가 성행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표를 바꾸거나 팔려던 또 사려는 사람에게는, 영화를 보자마자 수많은 군중을 뚫고 곧 다른 영화관으로 이동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몇 개의 표를 팔 사람과 살 사람을 찾아나서야 하는 일은 가장 짜증나게 되었던 일 중 하나였다. 더구나 4일째에는 상영중이던 영화 ‘누들샵’이 기술상의 이유로 상영 후반부에 중단되어 끝내 상영을 마치지 못하여 많은 항의를 받기도 하였다.그런 중에서 상당히 섭섭했던 일은 영화제 측에서 방송관계자들을 대하는 태도였다. 영화제 주변 인사나 관련단체에 후하게(?) 발급되었던 id카드는 하루 3매까지 극장의 무료입장권이 주어진 반면 방송사 몇몇 관계자에게 제한적으로 발급된 id카드로는 입장에서 표 구입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혜택도 없는 쓸모없는 카드였음이 드러났다. tv를 포함한 영상산업전반의 발전을 기대·모색하는 자리인 국제영화제가 충무로 등 영화계일부만의 잔치가 되는 상황은 재고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또 영화제 거리 곳곳에 안내판과 휴식공간 대신에 캐릭터상품 판매대와 협찬사 상품 홍보부스만 자리잡아 영화상영 전후로 물밀듯이 밀려드는 인파의 소통에 방해만 주는 영화제 운영은 개선되어야 마땅할 것이다.그러나 그러한 운영상의 문제점 속에서도 영화 자체가 주는 의미나 즐거움은 작지 않았다. 개막 전(前)에는 잘 주목받지 못했지만 뒤늦게 부각된 영화들을 만난 관객들은 그야말로 ‘영화제’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수영만 야외상영무대의 장점을 한껏 부각시켜준 ‘중앙역’이라든가 잘 드러나진 않았지만 호평을 받았던 ‘겨울잠자는 사람들’, 그리고 올해 칸 영화제 대상 수상작인 ‘영원과 하루’, 에밀쿠스투리챠의 ‘검은고양이 흰고양이’ 등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런가하면 초반의 지루함을 못견딘 사람들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도 했지만 호평을 받았던 ‘사후’ 그리고 구성이 돋보인 ‘째깍째깍’과 그외에도 ‘캐릭터’, ‘장군’ 등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예전에 비해서 영화제 전체를 통해서 화제작이나 또 ‘건진 작품’으로 평가된 문제작이 별로 없었고 전반적인 작품의 수준은 예년만 못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일본영화에 대한 관심은 여전해서 비록 작년의 ‘shall we dance?’나 ‘하나비’ 등에 견줄 만한 것은 없었더라도 경쾌한 터치를 가미한 ‘자살관광버스’ 등은 관객의 호응이 컸다. 오히려 그런 작품은 영화보다도 tv 드라마적 장르에 가까운 작품이어서 드라마를 만드는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그외에도 ‘인생전서’ ‘장벽’ ‘라스트 나잇’ ‘누들샵’은 세기말을 맞아서 개인과 종족,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들이었다. 전체영화의 경향은 ‘째깍째깍’ ‘겨울잠자는 사람들’ ‘호색한’ 등등 치밀한 구성과 계산으로 승부하는 작품이거나 아니면 아예 드라마의 기성의 스토리라인을 넘어서는 이미지와 상징의 전달에 몰두하는 작품들로 양분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특이할 만한 것은 올해는 유난히 다큐멘터리 부분에 관심이 모아졌다는 것이다. 로버트 프래허티의 대표작인 ‘아란의 사람’과 함께 ‘밤과 안개’ ‘숙제’ 등 다큐멘터리의 진수를 만끽시켜준 작품들이 많았고 ‘본명선언’ 등 한국의 다큐멘터리 단편선 등의 단편영화와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등에의 관심이 드높았다. 그러나 tv다큐멘터리 프로듀서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어서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영화제 전체를 통해 확인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영화’와 ‘tv드라마’와의 현격한 장르상의 이질감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영화제 기간중 새로운 시대조류와 감각의 흐름, 그리고 그것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젊은 세대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속에서 tv드라마가 차별적으로 가질 수 있는 보편성과 상징,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 대한 나름대로의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3회째를 맞아 부산국제 영화제는 중요한 고비를 맞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형적인 성장, 넘쳐나는 관객, 국내외의 주목 등의 화려함 속에 진행 어설픔, 작품수준의 현격한 편차와 선전기준에 대한 불만, 젊은 여성관객이 압도적으로 많은 참여관객층의 협소함 등 어두움도 함께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부산국제영화제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 좋은 기회였으며 적어도 젊은 영상세대에게는 열린 광장이자 해방구였음이 분명하다. 이제는 우리 프로듀서들도 그런 영상세대를 위한 ‘방송매체에 대한 국제적 이벤트’ 하나쯤은 있어야 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contsmark1|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