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PD의 영화이야기① "트루먼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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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PD의 영화이야기① "트루먼쇼"
우리 모두 네가 지난 밤에 한 일을 알고 있다
홍동식
MBC 라디오국
  • 승인 1998.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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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타가 공인하는 영화매니아인 MBC 라디오국 차장대우 홍동식 PD(사진)가 이번호부터 프로듀서연합회보에 ‘영화이야기’를 무기한 연재합니다. 홍동식 PD는 84년 MBC에 입사해 <정은임의 FM영화음악> <김미숙의 음악살롱> <별이 빛나는 밤에> 등을 연출했으며 현재 <신동호의 FM모닝쇼>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만약 혼자 몰래 행한 일을 남이 더욱 자세히 알고 있다면 기분 참 더럽겠지요?“아침 7시 32분경 엘리베이터 안에서 코딱지 팠지? 팠지?” 또는, “당신, 사람을 그렇게 씹는 게 아냐. 뭐? 좀팽이?” 혹은, “엊저녁에 너 육교 밑에서 미니스커트입은 여자, 세 번 올려다 봤지롱!”마치 옆에서 지켜봤다는 듯 누군가 대놓고 이런 말을 해오면 기분 더러운 건 둘째치고 아마 황당해서 안면근육까지 씰룩댈 성 싶습니다.언젠가 ‘몰래카메라’라는 게 방송가를 휩쓸던 때, ‘몰래카메라’에 결박당한 피사체들이 누가 보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코를 파고, 남을 씹고, 눈을 흘겼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들의 적나라한 행위를 보면서 무척 즐거워했지요. 하지만 ‘공인의 사생활은 이제 더 이상 사생활이 아니다’는 옹색한 변명 딱 하나만을 전방배치하고 달려드는 ‘몰래카메라’에 걸려들어 자신의 철저히 개인적인 행위를 중인환시리에 공개당하고야 만 당사자들은 모르긴 해도 안면의 근육이 씰룩대다 못해 마비가 되기도 했을 겁니다.영화 <트루먼쇼>는 앞서 말한 국산 ‘몰래카메라’와는 비교가 안되는, 한 마디로 지상최대의 ‘몰래카메라’입니다. 영화 내내 ‘너네들이 하는 가짜 말고 진짜 몰래카메라란 바로 이런 것이야’ 이렇게 뻐기지요. 하지만 <트루먼쇼>는 시청자들의 입맛이 곧 미디어의 전략방향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합법으로 위장한 불법 ‘몰래카메라’입니다. 그래서 <트루먼쇼>는 참 더럽게 기분 나쁜 영화입니다. 줄거리를 잠깐 훑어보면 이렇습니다.미국의 한 평화롭기 그지없는 섬 ‘시헤븐’의 시민 트루먼 버뱅크(짐 캐리)는 서른 살의 평범한 보험회사 세일즈맨으로 역시 평범한 아내와 그저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물에 공포를 느낀 나머지, 한 번도 섬 밖을 벗어나보지 못한 것 이외에는 별로 특별할 것이 없는 삶이지요. 이렇듯 평범하게 살아가는 트루먼이지만 실제의 그는 결코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그는 누구냐? 그는 ‘몰래카메라’의 앵글에서 단 1초도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무려 오천대의 몰래카메라가 트루먼 한 사람을 겨냥한 채 숨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카메라의 그물에 완전히 결박된 포로인 셈이지요. 그가 사는 도시 ‘시헤븐’도 알고보면 만리장성 이후 최대의 건축물이라는 조작된 셋트고, 하늘의 달도 별도 모두 인공조명입니다. 그리고 캠퍼스 커플로 만나 결혼한 그의 아내도, 20년 친구도, 아버지 어머니라고 믿고 있던 사람도 단지 TV프로그램을 위해 각본대로 움직이는 배우일 뿐입니다.어쨌든 그렇게 몰래 찍힌 트루먼의 일상은 그의 이름처럼 트루(True) 드라마가 되어 2백20개국의 시청자에게 30년간 생방송되고 있는 중인데, 그 프로그램의 제목이 바로 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마치 떨어진 사과를 본 뉴튼처럼, 하늘에서 떨어진 조명등을 보고 의문을 품기 시작한 트루먼이 결국 모든 진실을 깨닫고 조작된 세상을 박차고 나가는 걸로 끝납니다.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사람은 트루먼 외에 TV프로그램 <트루먼쇼>를 총연출하는 크리스토프와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2백20개국의 시청자들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 의 카리스마를 전수받은 에드 해리스의 크리스토프는 총연출임과 동시에 트루먼을 입양한 양아버지이자, 전능한 신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방송사 이름도 옴니콤(OMNIpotent COMmunication)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미디어의 권력 그 자체인 셈입니다. 그리고 시청자들―트루먼이 인공셋트를 부수고 나가는 바람에 30년간의 장수프로그램이 끝나버리자 “다른 채널에선 뭐하나?”고 고개를 주억거리는 시청자들―이들은 바로 우리 자신들입니다. 인기 탤런트의 ‘코파기’를 보며 대단히 즐거워하던 우리들처럼 그들의 얼굴에서도 ‘Voyeurism’의 쾌락 외에는 다른 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호주 출신으로 사회적 메시지와 휴머니즘을 골고루 섞어넣기 좋아하는 피터 위어 감독이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게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미디어의 상업주의와 시청자의 ‘Voyeurism’은 공범이라는 주장이지요. 함정을 파놓고 먹이를 기다리는 사냥꾼과 그 광경을 지켜보는 구경꾼, 그들에겐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공범의식만 있지 죄의식은 없습니다.죄의식의 실종. 바로 ‘몰래카메라’ 최악의 변질품이 아닐까요. 방송사에서 시작된 ‘몰래카메라’가 백화점을, 여대생의 화장실을, 여관방을 이미 침입했습니다. 이제 우리 안방만 남았습니다. 그러니 어느날 TV를 켰을 때 주인공으로 내가 등장할 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냥꾼과 구경꾼에게 실종된 죄의식이 살아나지 않는 한 말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엘리베이터 안에서 뭘 하기가 겁나지 않습니까? 뭘 하든 말입니다.도, 도 바로 우리 등 뒤에 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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