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비평위원회 보고서 1 - 추적6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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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비평위원회 보고서 1 - 추적60분
대안을 위한 한 걸음
<추적 60분-부정부패 시리즈 3부작>을 보고
  • 승인 1998.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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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고발 프로그램은 역설적이게도 사회악과 공생하는 관계이다. 우리 사회에 상식과 합리가 통하지 않는 어두운 구석이 있는 한 이 말은 사실이다. 그래서 시사고발 프로그램의 PD들은 자기의 프로그램이 필요치 않게 되는 그날을 기다린다는 역설적 희망을 즐겨 말한다.지난 10월 15일부터 11월 5일까지 3회에 걸쳐 방송된 <추적 60분-부정부패 시리즈>는 이러한 희망을 향해 내딛는 작은, 그러나 뚜렷한 한 걸음이었다. 공무원, 법조인, 정치인에게 차례로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고 이어서 나름의 진지한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자칫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조장하기 쉬운 냉소주의와 허무주의를 넘어 희미하나마 개혁의 전망을 보여 주는데 성공했다. “부정부패의 원인을 추적해도 부정부패요, 그 결과를 따져봐도 역시 부정부패”인 총체적 부패구조 속에서 이러한 주제를 다룬다 한들 ‘한강에 돌 던지기’를 넘어서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시도마저 포기한다면 ‘희망’이 발붙일 곳이 없을 것이다.이 프로그램은 첫째, ‘황색저널리즘’의 혐의를 단숨에 불식시킬 만한 진지한 주제의식이 눈에 띈다. 현장을 포착하기 어려워서 ‘그림 부족증’이 예상되고, 주제가 무거워 높은 시청률을 기대하기 어려운데도 3회에 걸쳐서 방송한 것 자체가 제작진의 대단한 결의를 보여준다.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빠지기 쉬운 한건주의나 때우기식의 기획을 벗어던진 노력을 높이 살 만 했다.둘째, 취재진의 끈질긴 노력이 화면에 배어 있었다. 열악한 제작 여건 탓도 있겠지만 대개 1주일 남짓 촬영해 방송하는 게 시사고발 프로그램의 관행인 데 반해 이 프로그램에서는 거의 한달 가량 취재한 내용도 보였다. 담당 PD의 노력과 팀내의 지원이 만만치 않았음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2편에서 의정부 지법 뇌물 사건 발생 후 1년의 궤적을 정리해 낸 부분이나 3편에서 만덕지구 비리 사건의 구조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낸 부분 등은 비록 수사관이 활용하는 ‘증거’를 제시한 건 아니지만 제작진의 ‘실증적’인 취재가 얻어낸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셋째, 대안 제시를 위한 노력이 돋보였다. 시사고발 프로그램은 비리의 현장을 잘 포착해 고발하는 것만으로도 일정한 역할을 해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만만한 정치인과 공무원을 ‘두드려 패는’ 데에 그친 흔해 빠진 ‘폭로저널리즘’을 떠올릴 때 역시 대안 제시가 중요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매회 프로그램을 마치기 전에 PD특파원이 취재한 외국의 사례―일본 이즈모 시청과 신주쿠 구청 공무원의 서비스 정신과 투명한 행정, 법 앞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미국과 프랑스의 사례, 미국의 정치자금법과 Term Limit, 정책 실명제 등―는 시청자의 시야를 넓히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시청률 저하의 위험을 무릅쓰고 매회 전문가를 스튜디오에 불러 부정부패의 원인과 해결책을 알아본 것도 신선한 시도였다. “ENG로 소화할 수도 있는 내용”이라거나 “좌담 내용이 일반론·당위론에 그쳤다”는 지적도 가능하겠지만 제한된 시간 안에서 ‘대안 제시’에 더욱 큰 비중을 둔 진지한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추적 60분>의 제작진은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한 ‘아르키메데스의 점’이 시민운동의 활성화에 있다고 보는 듯하다. 3편에 걸쳐서 참여연대, 부정부패추방시민연합, 경실련 등 시민운동단체의 작은 노력들을 되풀이 소개하였다. 최근 소액주주운동이나 시민의정감시단 등 민간운동단체들의 활약이 시민사회에서 점점 더 큰 영향력을 나타내는 추세로 볼 때, <추적 60분>이 시민운동단체를 현실적인 대안세력으로 보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물론 그들은 부패를 치워내는 크나큰 일에서 극히 일부분만을 맡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현실을 돌아볼 때 그들만큼 ‘씨 뿌리는’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세력을 찾기도 힘든 게 사실이다.미흡하나마 시민운동단체들을 부패 척결의 선봉으로 소개한 것은 어찌됐든 사회 지도층의 양심에 호소하거나 막연하게 ‘국민들의 책임’이라고 얼버무리는 태도보다는 훨씬 더 구체적이지 않은가.<추적 60분>, , <그것이 알고 싶다> 등 PD들이 만드는 시사 프로그램은 정규뉴스의 ‘발표저널리즘’이 채워 주지 못하는 현장의 소리, 약자의 소리를 담아내어 시청자의 큰 호응을 받아왔다. 한때 저널리즘의 노하우에 익숙치 못한 ‘무식한’ PD들이 여기저기 좌충우돌하여 파문을 일으켜 왔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바로 그 이유로 선풍을 불러 일으킨 적도 있다. ‘출입처’라는 족쇄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그러나 이제는 PD저널리즘도 변하지 않으면 시청자들이 외면할 때가 되었다. 각사의 최근 3개월 아이템 목록을 보면 호흡이 짧은 단발성 소재, 눈앞의 시청률만 의식한 ‘황색’의 소재가 적지 않다. 우리 사회의 위상과 좌표,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전망은 찾기 힘들고 오직 ‘소총수’들의 순발력만 돋보이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모처럼 의미있는 내용을 방송해도―예컨대 처럼 우리 시대의 가장 절실한 화두를 건드린 소재―지속적인 문제의식의 확산으로 연결시키지 못한 채 프로그램의 폭발력을 스스로 위축시키고 만다. 이러한 상황이 무제한 계속된다는 것은 심하게 말하면 시사고발 프로그램의 PD들이 ‘사회악’과의 공존(?)에 안주할 위험에 빠졌다고 할 수도 있다.이 시점에서 <추적 60분>이 보여준 새로운 몸짓은―그것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자리잡을 지는 시간을 갖고 지켜 봐야 하겠지만―아주 느리지만 확실하게 옳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아주 멀지만 언젠가 눈앞에 나타나야 할 ‘대안’을 향하여…방송비평위원회 대표집필 : 이채훈(MBC 교양제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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