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테이프 갖고 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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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테이프 갖고 튀기!’
  • 관리자
  • 승인 2006.05.03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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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대표작을 물어보면 늘 “다음 작품이라!” 말했던 소설가가 누구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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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아닌 pd에게도 요즘 사람들은 대뜸 ‘대표작이 뭐냐’고 물어본다. 이젠 이력이 생겨서 얼른 “차기작이 대표작입니다!”하고 위기를 벗어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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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으로 본 방송사pd란 ‘대표작’을 쫓는 추적자가 아니라 ‘차기작’에 쫓기는 도망자 다. 그것은 현실과 이상의 법칙이다. 그렇다고 이상을 포기한 자는 별로 없어 보인다. 대다수의 pd들은 천하 명약 만드는 명의마냥 모든 작품을 아홉 번씩 찌고 아홉 번씩 볶으며 구증구포(九蒸九曝)의 자세로 쫓아간다. 모든 프로를 대표작 쫓듯 하동지동 쫓아간다. 그래서 작품 앞에만 서면 pd들은 작아지는 대신 특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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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을 싸들고 가출해 회사 옆에 방을 얻는 이도 있고, 지킬에서 하이드로 변절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그건 가출이 아닌 ‘출가’며, 변절이 아닌 ‘환골탈태’라는 표현이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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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에도 아주 특이한 사건이 하나 일어났다. 드라마 pd가 자기작품이 불방 판정 나자 불복해서 잠적해 버렸다. 선우휘선생의 소설을 극화한 tv문학관 ‘단독강화(單獨講和)’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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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한창이던 때, 낙오해 산 속을 헤매던 국군과 인민군이 단둘이 마주친다. 처음엔 당혹과 두려움으로 서로를 경계하던 두 사람은 마침내 둘만의 `단독강화’를 맺고 동굴에서 함께 지내게 된다. 그러나 그 화평은 체제가 만들어낸 뿌리깊은 불신으로 인해 마침내 균열되고 결국 두 사람 모두의 죽음으로 마감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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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된 부분은 인민군과 국군이 풍기는 느낌이었다. 거친 세상살이를 하다 징집된 국군병사는 매사에 불신이 컸고 그런 이력이 없었던 인민군은 상대적으로 단순, 순진한 인간이었다. 당시의 이분법적 잣대로 보면 ‘착한 인민군’과 ‘안 착한 국군’으로 비치기 십상이었다. 감독의 의도는 북과 남이라는 고착된 이분법을 탈출해 인간과 민족에 대한 앞서가는 탐구 시도였지만 잣대의 벽은 훨씬 높았다. 그것은 당시 정권과 언론의 법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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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는 불복해 사표를 내고 출근하지 않았다. 그러나 회사는 사표를 거부했다. pd의 잠적은 길어졌고 회사의 인내도 길어졌다. 한달! 두 달! 석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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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없던 때라 pd가 다른 매체를 통해서 방송을 감행하려 했는지, 또 변호사에게 법률자문을 받았는지 알 수가 없는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했다는 말 한마디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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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을 않겠다면 제 퇴직금으로 그 작품을 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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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대한 신념과 열정, 사랑과 겸손을 이 말보다 더 절절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열정과 겸손에서 나온 신념과 사랑은 감동과 관용을 불러낸다. 그것은 삶의 법칙이다. 그 말 이후 회사와 pd는 강화를 맺었고 그는 복귀했으며 ‘단독강화’는 1년후에 방송되었다. 그 특이한 pd가 바로 김홍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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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그는 ‘삼포 가는 길’ ‘사람의 아들’ ‘광장’ ‘소리의 빛’같은 수많은 대표작을 남긴 전설적인 드라마 pd다. 그 후 그가 만든 ‘길 위의 날들’은 저 유명한 ‘prix italia’를 아시아 최초로 수상해 한국 방송사에 길이 남을 금자탑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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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종 pd에게 대표작이 뭐냐고 물어보면 그는 씩 웃으며 ‘차기작’이라 말하는 사람이다. 대표작을 다음 작품이라 말한 최초의 인물이 누군지 모르지만 그 말속엔 업‘業’에 대한 지극한 ‘신념과 열정’, 최고의 ‘사랑과 겸손’이 함께 들어있다. ‘신념과 열정’ ‘사랑과 겸손’이 있는 자, 작품을 향해 뛰기는 하지만 테이프를 가지고 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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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진/kbs 드라마 1팀 pd|contsmark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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