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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필버그’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외주비율 확대 등의 방송정책에 관한 전직 프로듀서의 우려

|contsmark0|정성욱 전 kbs pd
|contsmark1|최근 우리 방송계는 방송법 개정과 외주비율 확대 등 방송정책을 둘러싸고 논의가 무성하다. 이 논의를 해외에서 지켜보며 느낀 걱정과 우려를 전 kbs 정성욱 pd가 원고로 보내왔다. 정성욱 pd는 지난 96년 kbs를 그만두고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정성욱 pd의 e-mail주소는 s-jung2@nwu.edu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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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고국으로부터 멀리 살게 된 지도 벌써 두 해가 훨씬 지났습니다. 국내 방송계에 많은 변화가 있고 또 있으리라는 것은 여기서도 짐작하고 있습니다. 수구초심이라고 친정쪽을 자꾸 쳐다보게 되기 마련인 모양입니다. 미국서 몇 년 지내다 보니 방송에 대한 생각도 조금씩 변해서, 전에 가지고 있던 견해를 되돌이켜 낡았다는 생각도 가끔 합니다. 그럼에도 변치 않은 한국방송계 전반에 대한 인상 한 가지는 한국 방송에는 진정한 기득권 세력이 없다는 아쉬움입니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분명하게 인식할 때만이 자신이 지닌 기존의 이득을 지킬 수도, 혹은 좀 더 큰 공동체적인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할 수도 있을 터인데, 한국의 방송계는 자신의 진정한 이익을 공동체 전체의 이익이라는 맥락 속에서 파악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방송법 논의만 해도 그렇습니다. 프로듀서연합회마저 전문가적 자율의 신장을 통해 언론 자유와 문화적 역량의 전반적 신장이라는 공동체적 이익에 접근하기보다는, 언론 자유와 문화에 대한 검열을 재도입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한, 새로운 통제기관의 새로운 규제와 간섭을 불러들이는 쪽의 논리에 경사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번에는 국내 생산 만화영화의 방송사 의무 방영을 주된 예로 삼아, 외주비율 확대 정책에 대한 우리 나라와 방송계의 미래를 걱정하는 제 나름의 충정어린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국내에서 생산된 만화영화의 방송사 의무 방영, 외주확대를 둘러싼 논의는 이역만리에서 보기에도 무리 투성입니다. 사실 산업으로서의 방송, 언필칭 “세계 시장을 겨냥한 영상산업”이란 한국적인 조건과 상황에서는 성립하기가 매우 어려운 논리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미국이나 영어권에 필적할 만한 큰 규모의 시장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헐리우드가 쏟아붓는 만큼의 투자를 해도 그만큼의 수익을 바라보기가 어렵다는 근본적인 제약을 안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미디어 산업에서는 시장의 규모가 커질수록 한계 수익과 한계 비용이 일치하는 지점의 최적 투자 규모―따라서 기대 수익의 규모―가 커지게 됩니다. 이는 협소한 시장을 배경으로 생산된 미디어 상품이 그보다 규모가 큰 시장을 배경으로 생산된 미디어 상품과 겨루어서 시장적 경쟁 우위를 차지한다는 것은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최적의 자본 투입 규모가 처음부터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한국어가 통용되는 상대적으로 협소한 지역을 일차적인 시장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한국의 미디어 산업은, 단언하건대, 세계시장을 겨냥한 전략산업이 될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도 ㅓ? 지원만 쏟아 부으면 스필버그 영화들이 노다지로 쏟아져 나와 외화획득과 부수적인 국가홍보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매우 순진하고 단순한 생각―요즘, 방송계 구조조정과 관련해서 독립프로덕션 육성책의 중요한 논거가 되고 있는 생각―은 위에서 간략히 소개한 매우 기초적인 경제학적 법칙에 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비과학적인 백일몽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 수출보다는 수입에 있어 현명한 선택과 결정―특히 가격과 관련해서―을 하는 것이 현실성 있는 영상산업관련 정책 과제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수입으로 대체될 수 없는 분야를 국내에서 생산해서 공급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정책 과제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만화영화에 국한해서 말하건대, 우리의 어린이들을 양질의 외래문화에, 그리고 국내에서 생산된―좋은 의미에서의―한국적인 작품에 노출시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런 수입과 국내 생산의 균형과 관련된 실질적이고 실무적인 결정에 방송사가 주도권을 쥐는 것은 매우 당연한 사태 발전이라는 점을 미디어 산업 관련자들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국내 만화 산업은 자본이 영세한 편에 속합니다. 이런 영세한 프로덕션들이 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킬 만한 작품을 만들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고 보는 것이 보수적이나 현명한 관점일 것입니다. 따라서 상당한 자본이 소요되는 만화영화에 뛰어드는 이런 영세한 자본이 부도를 낼 확률은 매 작품당 더더욱 높아진다고 보아야 합니다. 즉, 몇 번의 실패 끝에 이런 위험을 상쇄하고도 남을 큰 성공작을 낼 확률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은 그런 몇 번의 실패를 무릅쓸만한 역량이 없다고 보아야 옳을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의 영상산업 구조에서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기관은 방송사밖에 없어 보입니다.그런데, 앞에서 지적한 그런 실패의 무릅씀에는 당연하게도 위험 비용이 소요됩니다. 그러나 영세한 자본은 이런 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없습니다. 다른 한편, 방송사는 돈만 내고 실패만 무릅쓰는 손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 또, 영세자본이 성공에 대한 집착 없이 안전한 장사에 취해 안일무사주의에 빠지는 경우를 막기 위해 장래의 판권에 대해 일정한 지분과 권리를 나눌 것을 요구하는 것, 그리고 제작과정에서 일정한 지도와 간섭을 가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사태발전에 속합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훌륭한 작품이 나오면 그 과실을 방송사가 나누어 가지는 것 또한 작품 제작 과정에서의 기여를 생각해 볼 때 매우 당연한 수확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과실이 있을 때, 방송사는 다시 보다 큰 위험을 무릅쓴 과감한 투자에 나서게 될 것이고 유치단계의 산업은 안정과 성숙의 단계에 진입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런 위험의 회피와 협력의 강제에 관한 기초적인 경제적 논리에 반하는 정책에 기초해서 어떻게 영상산업, 만화영화산업을 진흥하겠다는 것인지 필자로서는 이해할 도리가 없습니다. 위에 간략히 설명한 경제학적 논리―당사자들은 의식했건 의식하지 못했건―로 그 활동을 요약할 수 있는, 국내 만화영화 진흥과 견인에 지대한 공로가 있는, 제가 한국방송공사에 근무할 당시에는 편성실 소속이셨던, 한국의 만화영화에 대해 놀랍도록 선구자적인 집념과 비전을 지니고 계셨던 프로듀서 한 분을 필자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앞에서 설명한 논리가 단순한 탁상공론이 아닌, 한국의 여건에서 나오게 되는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사태발전의 논리라는 것입니다.반대로, 국내산 만화영화 의무방영 비율의 확장, 만화영화의 판권에 관한 무리한 규제는 오히려 만화영화 산업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언필칭, 독립 프로덕션은 결코 독립적일 수 없고, 미디어 운영자와 유기적인 연결을 가질 때 번성할 수 있습니다. 조직이냐, 수직적 결합이냐, 시장이냐의 유기적 연결 방법에 대한 산업조직론에 관련된 논란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렇습니다. 더구나 독립 프로덕션 육성정책이 노리는 바는 이 유기적 관련이 시장적인 거래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나아가 이는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계약이 갖는 효율을 다른 여타 방식―(본사와 자회사간의) 수직적 결합이나 (방송사내) 조직―의 유기적 관련이 갖는 효율보다 높이 평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현재 논의되는 규제는 반시장적이라는 데서 독립 프로덕션 육성정책와 충돌하는 자기모순이 있는 것입니다. 거듭해서 말씀드리건대, 의무방영 비율의 확장이나 판권의 배분에 관한 무리한 규제는 시장적인 유기적 연결에서 오는 효율을 저해하게 됩니다. 독립이라는 접두어에 집착하는 것은 독립 프로덕션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도 결코 좋은 정책이랄 수 없다는 것을 이 末 필요가 있습니다. 더구나 독립 프로덕션이 자신의 실력이 아닌 규제적 비호 아래서 커가는 것은 독립 프로덕션 자신의 건강한 생존을 위해서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아래에서는 규제자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외주비율 확대 정책을 비롯해 현재 논의되고 있는 제반 정책들이 방송사와 독립 프로덕션의 유기적 관련을 파괴함으로써 독립프로덕션을 포함한 한국의 방송산업에 도대체 어떤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인지를 말씀드려 보겠습니다.첫째, 한국의 만화영화 산업을 이끌 것으로 기대되는 ‘독립’ 프로덕션들은 작품 제작과 개발의 과정에서 경험있는 문화전문가 방송 프로듀서의 조언을 얻게될 기회를 잃게 됩니다. 두번째로, 잘 만들어진 작품도 제대로 시청자나 시장에서 먹혀들기 위해서는 편성이나 마케팅, 여타 측면에서 방송사의 지원을 필요로 합니다. 예컨대, 강한 시간대에 배치된 신작은 약한 시간대에 배치된 신작보다 더 많은 시청자와 고객을 확보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확보된 시청자층은 케이블에서 다시 재방송하게 되는 경우 더 많은 수익을 보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논의되고 있는 정책에 의하면, 독립 프로덕션과 방송사는 상호이익의 측면에서 별 관련이 없는 법인들로서 이런 측면에서 서로 협력할 이유가 없게 됩니다. 셋째, 더구나 역량 있는 방송 프로듀서는 보이지 않는 시청자의 반응과 동향을 예리하게 분석함으로써 개별 작품이나 시리즈의 향후 제작방향에 지침을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시청자에 관한 분석적 정보를 방송사의 협력 없이 개별 영세 프로덕션에서 취득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 영세 프로덕션이 마케팅에 대한 치밀한 구상 없이 막연한 감에 의존한 주먹구구식의 제작을 계속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당연히 실패의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그러나 방송사는 지금까지 언급한 조언과 정보제공, 여타의 노력들을 자신의 이익과 유기적 관련을 지울 수 있는 길을 법적 규제에 의해 박탈당한 때문에―즉, 독립 프로덕션의 성공과 자신들의 성공 사이에, 판권 수익에의 기대 등을 통해 연결을 짓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에―이런 노력들을 굳이 기울이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한편, 네 번째로, 한국의 만화영화 산업은 안전하게 확보된 방송사쪽 판로에 기생함으로써 무사안일주의에 함락될 위험을 지게 됩니다. 대충 만들어도, 법을 어길 수 없는 방송사는 울며 겨자먹기로 수준 미달의 만화영화들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값마저 생산자가 부르는 게 값이 되는 시장상황이 되면, 사태는 악화일로로 치달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싸고 쉽게 만들어 비싸게 파는 손 짚고 헤엄치는 장사를 마다할 이가 누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만들어진 만화영화가 국외시장에서 팔린다면 그것은 기적일 것입니다. 주지하다시피, 만화영화를 만들어 방송사에 납품하는 자는 매 납품작을 최선을 다해 만들어야 한다는 식의 법률이란 법치국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는 있을 수 없는 법률에 속합니다.시장은 계약의 자유가 있는 곳입니다. 그 계약의 자유를 넘어 신뢰의 관계를 만들어 내는 기술 중의 하나 역시 계약과 관행에 의한 강제입니다. 현재 한국의 방송사들이 만화영화산업이나 독립프로덕션들에 계약상, 관행상 행사하는 정도의 지도적 권능은 미국 영상산업에서는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종류의 것들입니다. 방송사가 행사하고 있는 국내 만화 영화 산업, 나아가 독립프로덕션들에 행사하고 있는 지도적 권능은 약자에 대한 횡포가 아니라 위험회피의 자구책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방송사로부터 이런 자구책을 박탈하는 규제의 도입은 국내 만화영화 산업, 나아가 외주산업의 진흥책이라기보다는 국내 방송산업기반 파괴 정책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규제의 되풀이는 외국 문화산업에 대한 더욱 철저한 종속으로 귀결될 공산이 큰 것입니다. 수출은커녕, 문화주권적 측면에서 반드시 국내에서 반드시 생산 공급되어야 할 한국적인 프로그램의 생산기반마저 심대히 침식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말입니다. 양질의 한국적인 프로그램이 없는 곳에서 양질의 외국 프로그램이 너무나도 압도적일 것은 불을 보듯 명백한 일입니다. 외국 프로그램의 수입은 현실입니다. 이들 외국 프로그램을 전부 대체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문제는 꼭 만들어야만 할, 외국 프로그램으로 대체가 가능하지 않은 한국적인 프로그램을 어느 정도의 질적 수준에서 생산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방송사의 조직을 해체하여 시장적 효율을 가지는 독립 프로덕션과 그들의 시장을 육성하자는 현금의 정책은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탁상 공론에서 시작해서 재앙으로 끝날 공산이 매우 큽니다. 이 정책은 한국의 협소한 국내 시장규모, 산업 조직론적 효율, 시청자 분화의 단계, 등등 관련 측면을 고려해 볼 때, 명백히 잘못 수립된 정책입니다. 미국에서의 독립 프로덕션은 다양한 미디어 창구―영화상영관, 비디오 대여, 유료 채널 케이블, 일반 케이블, 공중파―와 해외시장에 의해 승수적으로 확대된, 우리 국내 시장의 규모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거대한 시장, 다양한 시청자층의 분화, 거대한 할리우드 자본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대중 연예 산업에 기반을 두고 성장해 왔습니다. 한국은 제대로 된 광고 시장마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광고공사로 대표되는 방송에 대한 비효율적 규제 하나 제대로 깨끗하게 해결할 수 없는 곳에서 시장적 효율은 무슨 시장적 효율입니까? 광고공사로 대표되는 비효율적 규제들은 위에서 말씀 드린 한계 수익과 한계 비용이 일치하는 점에서 결정되어야 할, 방송사 프로그램―독립 프로덕션에서 제작된 프로그램을 포함하여―제작에 대한 최적 투자 규모를 축소함으로써 프로그램의 전반적인 질적 저하를 낳고 있고, 시청자 복지를 저해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다시 외국에서 제작된 프로그램, 나아가 외국문화에 대한 건강한 저항능력의 저하를 낳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는 일본문화 수입의 자유화와 결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할 측면이기도 합니다.문제는 앞에서 예를 든 선배 편성 프로듀서 한 분이 지닌 것으로 사려되는 지도적 혜안을 갖춘 전문가들이 이들 국내 영세 프로덕션, 나아가 관련 입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기관이나 단체, 개인들을 상대하고 있느냐는 문제일 것입니다. 결론은 언제나 비슷합니다. 줏대 있는 미디어 전문가를 키워야 합니다. 이들 전문가들이 방송사, 혹은 시청자 전체의 이해관계가 무엇인지 판단토록 해야 합니다. 이들이 기득권세력으로 자라나도록 해야 합니다. 유능이 무능을 대체하고, 정확한 지식이 주먹구구를 대체할 때, 부정의는 상당부분 척결될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 부정과 부정의는 무능과, 주먹구구의 혼돈 속에서 창궐하기 마련인 때문입니다.덧붙여, 작금의 외주비율 확대정책은 방송사의 기득권이라는 측면에서가 아니라 국가적 이해라는 측면에서 극구 반대되어야 할 정책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거대(?) 방송사는 악이고, 영세 독립제작사는 선이라는 식의 안이한 이분법적 사고야말로 과거 암울한 민주화 투쟁시절의 황야에서 탄생한 비유의 탈맥락적이고 기계적이며, 더구나 비과학적인 연장일 뿐입니다. ‘아이.엠.에프.’로 요약되는 지금은 이런 막연한 비유적, 주술적 사고에서 벗어나 “과학적으로” 국민의 이익을 냉정하고 정확하게 재는 태도가 다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입니다. 미디어 산업에 쏟는 규제와 지원을 한국 경제가 전략적으로 좀 더 잘 할 수 있는 전문 분야를 찾아 쏟아붓는 것이 좀 더 작고 효율적인 방향으로 구조조정된 국민의 정부가 자신의 노력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한 방도라는 것도 지적해 둡니다. 거듭해서 호소하건대, “스필버그”라는 목표는 한국 미디어 산업의 구조적인 제약상 환상에 불과합니다. 말하자면, 스필버그 영화의 엄청난 수익률에도 불구하고 영화보다는 훨씬 혹은 조금 덜 남는, 예컨대, 자동차와 반도체를 세계시장에서 더 많이 팔려는 노력을 경주하는 쪽이 진정 국민경제를 위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냉정한 계산 없이 영상산업 진흥에 쏟아 붇는 노력은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한 바탕 소동과, 외국의 더욱 거세지고 있는 문화적 공세에 대항하는 효율적인 거름장치이자 튼실한 방어막이 될 수도 있는 유망한 전략적 거점 하나―거대(?) 방송사―를 잃게 되는 크나큰 손실로 끝맺음을 할 공산이 매우 크다는 점을 거듭 간곡히 말씀드립니다. 관련 정책 결정에 연루된 여러분들은 다시 한 번 지혜롭게 현재의 정책 방향을 재고해 보는 기회를 가지게 되시기를 간절히 빕니다.이와 관련해서 또 하나 지적해 둘 매우 중요한 점 하나는 우리의 시장규모와 시청자분화의 단계를 고려할 때, 얼마나 많은 특화된 채널이 병존하는 것이 시청자 복지와 경제적 효율의 측면에서 최적의 선택인지는 구체적으로 따져보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특성화된 다수의 작은 방송사보다는 오히려, 덩치가 있는 방송사 몇을 독과점적으로 병존시키는 것이 상황에 따라 더 좋은 선택일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영상산업이 공공재를 생산하는, 규모의 경제가 중요한 산업이라는 특징 때문인데, 케이블을 포함한 방송관련 산업의 재편의 필요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지금이 바로 이런 측면에 대한 좀 더 면밀하고 과학적인 조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봅니다. 한국의 방송관련 정책수립 담당자분들께서는 독과점이 모든 상황에서 악이 되는 것은 아니며, 특성화된 다양한 채널이 모든 상황에서 선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도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독립프로덕션 소속 프로듀서 여러분들께서도 지금의 정책이 종국에는 자신들의 이익에 반할 위험이 크다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방적 외주비율확대라는 무리한 정책의 결과는 결국 지킬 수도 있는 안방의 한쪽 구역마저 모두 외국의 문화산업에 내어주고 마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독립프로덕션 자신의 시장을 심대히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릅니다. 또, 방송사 프로듀서 여러분들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외주비율 확대정책을 비롯한 제반 방송 정책에 대한 반대가 단지 제 밥그릇 챙기기의 수준에서가 아닌 대국적인 측면에서 심히 반대해야 마땅한 정책이라는 점에서, 과학적 사고에 근거한 자신감을 가지시고, 주저 없이, 현재 논의되고 있는 영상산업 진흥정책에 반대해주시기 바랍니다. 동시에, 국내 거대(?) 방송사―외국서 보니 국내 주요 방송사가 과연 얼마나 거대하기에 거대 방송사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가 유망한 전략적 문화 거점이라는 점을 내외에 과시할 수 있게끔, 독창적인 한국적 프로그램 제작의 실력과 외국문화 수입에 있어 마땅히 발휘되어야 할 선별과 소화의 역량을 배양하는데 다같이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이국서 몇 년 살다보니 조국이 매우 그립습니다. 또 내 나라가 순조롭게 잘 풀려나가야 할텐데 하는 열망 어린 걱정과 우려도, 특히 ‘아이.엠.에프.’ 이후로, 깊어진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의 처지와 분수를 넘어 이런 글도 쓰게 되었습니다. 널리 해량하시길 빕니다. 멀리서 건승을 기원하며 이만 걱정과 우려의 소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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