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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 보는 ‘8월의 크리스마스’
… 예술과 일상이 어우러진 한편의 시
홍동식

|contsmark0|프로듀서연합회보가 300명쯤의 프로듀서들에게 ‘올해의 베스트’를 물어본 결과, ‘최고의 한국 영화’ 부문에서 죽음을 코앞에 앞둔 한 남자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린 ‘8월의 크리스마스’가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고 합니다. 2, 3위는 ‘아름다운 시절’과 ‘약속’이라는데, 아마 이 연합회보 어디쯤엔가 관련기사가 실려 있겠지요. 어쨌거나 설문결과가 결과이니 만큼, 금번 ‘영화이야기’란은 올해 최고의 한국영화로 선정된 ‘8월의 크리스마스’로 ‘감히’ 채워 볼까 합니다.우선 주위 동료들에게 ‘8월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감상을 물었더니, ‘예쁘다’, ‘따뜻하다’, ‘매끄럽다’. 대충 이런 세 가지 단평으로 요약되더군요.예쁘고… 따뜻하고… 매끄럽다.pd들이 이 영화에 ‘최고’표를 던지게 된 데에는 아마 이런 느낌들도 일조 했겠지요. 그런데 영화를 세번째쯤 보다 보니까 이 영화가 예쁘고, 따뜻하고, 매끄럽기만 한 영화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지저분하고’, ‘차갑고’, ‘거칠다’는 얘기는 아닙니다.멜로 성향의 최근작들이 애용하듯, 예쁜 동화같은 그림을 배치시켜 우리의 눈을 현혹시키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그저 감독이 보여주는 거라곤 기억의 일상, 다시 말해 복고적인 시공간 속에 담겨 있는 낡고 허술한 20년전쯤의 우리의 일상을 보여줄 뿐입니다. 그래서 주무대인 사진관은 낡고, 거리는 빛이 바랬고, 방안은 우중충합니다.게다가 카메라는 불치병을 앓고 있는 사진사 정원(한석규)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가까이 가지 않습니다. 언제나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심지어 정원이 앰뷸런스에 실려갈 때에도 카메라는 남의 집일 구경하듯 클로즈업 대신 담너머에서 지켜보기만 합니다. 또한 병자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시선이나 세상을 바라보기만 합니다. 또한 병자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시선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병자의 시선이 사뭇 관조적입니다. 그래선지 영화는 건조하다 못해 차갑기까지 합니다.또 우리의 일상이 그렇듯 영화도 들쭉날쭉 거립니다. 파출소에 조용히 앉아 있다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친구들과 고스톱 치다가 사진을 찍고, 아버지에게 비디오 작동법을 가르치다가 화를 벌컥 내고… 영화는 영화다운 스토리를 따라가지 않습니다.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참 잘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아마 마치 레고를 맞추듯 차곡차곡 감정의 벽돌을 깨워나간 일상의 리얼리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림(심은하)과 정원이 처음 만날 때 카메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다가(사진관 앞 장면을 자세히 보면 두 사람의 시선은 계속 엇갈립니다. 다림이 90도를 돌아 정원을 마주 볼라치면, 정원 역시 90도를 돌아 등을 보이고 만다), 같이 소파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다 숟가락이 부딪치는 순간 두 사람의 감정도 쨍하고 부딪치고, 비오는 날 손수건을 슬쩍 내밀고… 감정이 진전되는 이런 장면들을 마치 상투적인 의식 자르듯 급하게 처리하지 않고, 관객의 호흡보다 한 템포 느리게 한 단계씩 한 단계씩 보여줍니다. 그리고 흐느끼는 아들 방을 슬며시 왔다가는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다림이 첫 팔짱을 꼈을 때 정원의 미세한 ‘멈칫거림’에서, 영정사진 찍으러온 할머니가 아파트 평수에 대해 소곤대는 며느리들을 향해 삐죽거리는 입술에서, “몇살이예요?” “20대 후반” “삼십대구나!” 다림과 정원의 이런 일상적인 대화에서 우리는 노련한 리얼리티즘을 봅니다.아마 이런 것들 때문에 ‘올해 최고의 한국영화’로 ‘8월의 크리스마스’가 선정된 것이 아닐까 혼자 생각을 해봅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 - 한마디로 예술과 일상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한편의 관조적인 시(詩)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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