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따져보기] 세속적 욕망의 발현 <오래된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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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따져보기] 세속적 욕망의 발현 <오래된 TV>
  • 관리자
  • 승인 2006.05.17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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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ebs 드라마 <명동백작>과 <지금도 마로니에는>은 ebs가 의욕적으로 제작한 성인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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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가 갖는 가용 자본의 빈약함, 교육방송이라는 사회적 편견, 성인 드라마 제작 노하우의 부족이라는 한계가 노출되기도 했지만, 제작진의 순수한 열정과 배우들의 헌신적 연기는 이를 상쇄하고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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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이 두 드라마가 주력한 문화사 분야는 참신했다. 격변의 한국현대사를 정치와 경제가 아닌 문화로 풀어 보려했던 시도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역사적 인물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진실을 새삼 일깨워줬다. <명동백작>과 <지금도 마로니에는> 역시 여전히 문화를 ‘전후 명동의 문인들과 군사정권 당시 서울대 문리대학생들의 고급문화’로 협소하게 정의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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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의 <오래된 tv>가 갖는 장점도 이러한 문화를 통한 우리네 삶의 반추이다. 특히 텔레비전이 중심에 있다는 데에서 <명동백작>과 <지금도 마로니에는>이 보여줬던 고급문화에 대한 강박으로부터도 벗어나 있다. 텔레비전은 오랫동안 대중의 일상과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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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와 같이 너무나 일상적이었기 때문에 텔레비전에 담겨있는 대중문화는 자칫 당연한 것으로 간과되기 십상이었다. 혹은 아예 저급문화로 평가 절하되기 일쑤였다. 나훈아와 남진의 라이벌 구도, 서영춘의 희극적 가치, 한일야구의 국민적 열광 등과 같은 소재는 일상적으로 이야기는 되지만 무게 잡고 이야기하기에는 왠지 정치와 경제에 비해 경박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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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치와 경제라는 큰 구도를 다채롭게 채색하는 것은 문화라는 덧칠일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 문화가 정치와 경제라는 큰 구도를 쉼 없이 덧칠하여 현재의 역사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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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tv>가 보여주는 대중문화의 과거사는 그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살아있는 역사다. 우리가 그 시대에 갖고 있었던 세속적 욕망들이 어떻게 텔레비전 속에 구체화되어 있었던가가 <오래된 tv>가 집중하는 소재이다. 세속적이라고 해서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세속적인 것이야말로 솔직한 것이 아니겠는가. <오래된 tv>를 보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그동안 저급문화라는 이름으로 위축되어 있던 텔레비전이 당당하게 자신의 사료적 가치를 제시하고 있는 자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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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tv>를 보며 새삼 알게 되는 것은 텔레비전과 대중문화가 흐름의 문화형식을 갖는다는 것이다. 물론 감상적인 음악의 빈번한 사용, 복고적 소재의 채택 등은 추억과 미화의 대상으로 과거를 한정했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tv>는 오늘과 과거를 흐름 속에서 보여주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비단 흐름은 텔레비전 편성이 우리의 일상적 시간과 함께 한다는 것에 제한되지 않는다. 텔레비전 흐름은 역사의 흐름과도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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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방송분인 “우량아 선발대회”를 예로 든다면 현재의 건강한 모유 수유아 선발대회와 과거의 우량아 선발대회가 서로 연결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를 통해 우량아가 선호되던 어려웠던 우리 과거와 현재의 웰빙이 단절이 아니라 지속으로 연결된다. 다양한 인터뷰는 이를 보다 풍부하게 채색한다. 성우의 내레이션이 극의 흐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인터뷰가 프로그램 속으로 녹아들어와 다채로운 목소리를 들려준다. 앞서 말했듯 문화가 한 사회구성체를 다채롭게 채색하는 것이라면, 인터뷰를 통한 다양한 목소리의 들려줌은 문화가 행하는 역사의 채색을 보다 잘 보여줄 수 있게 하는 효과적 장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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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tv>가 <그때를 아십니까>와 의 ‘tv온고이지신’과 구분되는 지점이 여기이다. <그때를 아십니까>와 ‘tv온고이지신’이 내레이션을 통해 과거를 추억과 향수의 장소로 한정하는데 비해 <오래된 tv>는 현재로의 흐름 속으로 과거를 위치시킴으로서 대중문화의 끈질기고 장구한 생명력을 오늘 속에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오래된 tv>가 제공하는 즐거움은 현재화되는 과거의 지속성과 새롭게 해석되는 대중문화의 일상적 가치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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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일/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운영위원|contsmark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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