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초대석 - 이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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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아름다운 시절’을 위하여
  • 승인 1998.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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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오랜만에 마련한 여의도초대석에서는 ‘아름다운 시절’로 각종 국제상을 수상해 한국영화의 희망으로 떠오른 이광모 감독을 백두대간 사무실에서 만났다. 필자인 한정석 pd는 키노가 주최한 제2회 신인평론가 공모에 당선돼 영화평론가로 데뷔했고, 현재 kbs 을 연출하고 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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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얼마전 한 유력한 영화주간지에 10대들이 만든 영화 한 편이 소개됐다.‘너희가 중딩을 아느냐’도발적인 제목만큼이나 카메라를 든 열혈중딩들의 눈빛이 꽤나 전복적이었던 것 같다. 요즘 10대들은 카메라를 갖고 논다는 기사의 행간은 한국영화의 장래에 어떤 은근한 기대감마저 내비치고 있었다.그 잡지의 다음 면에는 이광모 감독의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이력이 실려 있었다.- 한국 영화사상 최초 하틀리-메릴 국제 시나리오 콘테스트 대상- 제51회 칸느 영화제 ‘15인 감독 주간’공식 추천작- 제11회 도쿄 영화제 금상및 기린상- 제37회 데살로니카 영화제 관객투표1위, 최우수 예술 공헌상 - 제18회 하와이 영화제 대상- 제20회 프랑스 벨포르 영화제 대상- 현재 60개 국제 영화제 공식 초청 출품중이 모든 것을 감독 이광모는 단 한 편의 데뷔작으로 이뤄냈다. 한국 영화사상 최단기간 최다수상을 이뤄낸 셈.영화인류학(?)적으로 살펴보건대 감독 이광모(37)는 ‘너희가 중딩을 아느냐’와 같은 열혈마니아들과는 유전적 진화구조가 다르다. 그렇다고 적자생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충무로에서 우성인자 덕택에 자연도태를 면한 사례는 더욱 아니었다. 그의 영혼이 영화라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되기까지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는 문학이라는 수용체가 해수면의 플랑크톤처럼 포진해 있었던 것.- 어떻게 영화를 시작하게 됐나?“처음엔 시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 전공도 문학이었고 대학원에서도 문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활자가 갖는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contsmark3|- 언어의 도식성을 의미하는 것인가?“그렇다고 볼 수 있다. 활자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구체적인 생동감을 사진과 같은 영상 속에서 발견했다. 그 후 자연스럽게 영화에 이끌리게 됐다. 삶의 요소를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는 영화의 가능성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그의 영화에 대한 편력은 그렇게 시작됐다. 표현에 대한 목마름, 인간과 삶에 대한 천착은 문학이라는 탄탄한 토대 위에서 영화를 만났다. 그의 영화 ‘아름다운 시절’이 칸에 선보였을 때 (‘15인 감독주간’ 초청은 칸의 비경쟁 부문에서 대단히 영예로운 헌사이다) 그는 ‘이 시대의 진정한 작가의 탄생’이라는 찬사와 함께 관객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의 영화세계와 보편적인 인간의 정서 사이에 그 어떤 통로가 있었던 것일까.
|contsmark4|- ‘아름다운 시절’의 모티브는 어떻게 시작됐나?“한국전쟁으로 표상되는 내 아버지의 시대는 험난하고 가난했다. 어느 누구든 그러한 시대를 헤쳐나간 아버지의 낡은 일기장을 발견하고 거기에 씌여있는 구절들을 읽어본다면 삶에 대한 연민과 회한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낡고 바랜 아버지의 일기장과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contsmark5|- 영화 속에는 주인공들의 반사회적인 행위들도 추억과 회상이라는 이름으로 용서되는 경향도 보이는데… 역사를 보는 시각이 부담이 되지는 않았나?“거대한 틀의 역사를 말하기보다 그 틀 안에서 다양한 개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고 싶었다.”그의 영화 ‘아름다운 시절’은 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로는 최초로 최단기간에 최다수상이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그것은 전세계가 그의 영화를 한눈에 알아보았다는 이야기이고 그의 영화 문법이 거장들의 그것과 같은 궤를 달리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역사가 용해된 개인의 삶을 ‘시선’을 통해 ‘응시’하는 태도는 타르코프스키나 앙겔로 풀로스를 연상하기에 충분했고 한국적인 자연을 다루는 그의 솜씨는 키아로 압바스 스타미를 떠오르게 한다. 그의 첫 데뷔작품에서부터 거장들의 호흡이 느껴진다는 사실은 관객 모두에게 놀라움이었다.그의 영화는 모순된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누구를 단죄하거나 옹호하려들지 않는다. 낡은 유리창 너머 회한의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은 포용과 연민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러한 재현이 역사적인 정당성을 담보하길 원한다면 역시 소아적 발상일 것인가. 잠시 혼란스러웠다.
|contsmark6|- ……“역사와 사회는 한 개인의 삶 속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거대한 역사로의 환원보다 나는 그러한 역사가 영향을 미치는 개인에게 관심이 많다. 어떤 개인도 역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contsmark7|- ……
|contsmark8|자신의 미학적 성취를 위해 역사를 방관할 수도 있다는 뜻인가. 미세한 혼란과 이로 인한 방문객의 침묵은 조금 더 지속됐다. 아무튼 그의 영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하자. 영화에서 그는 해설자가 아니라 관찰자였으므로….수줍음이 많은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 낮고 조용하다. 그의 태도에는 어딘가 소년의 순수함마저 느껴진다. 흔히 작가란 시대와의 불화 속에서 잉태되고 성장한다는 말은 적어도 감독 이광모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는 한국영화의 잠시나마 아름다운 시절 속에서 잉태됐고 그의 탄생은 수많은 박수와 갈채라는 아름다운 시절로 기록됐다. 적어도 그가 작가로서 성장함에 있어서 시대의 모순을 따듯하고 포용의 시선으로 관조하는 한, 그의 아름다운 시절은 계속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점에서 도발적이고 냉소적인 홍상수 감독이 떠올랐다.
|contsmark9|- 홍상수 감독과 이광모 감독은 우리 영화사의 맥락에서 한참 벗어난 존재인 것 같다. 그러면서도 서로 대척점이란 느낌인데…. “그렇게 보는 시각이 많은 것 같다. 어떤 면에서 그런가?”
|contsmark10|- 글쎄… 불량학생과 모범교사라고나 할까?“(웃음)”
|contsmark11|-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어떻게 보는가?“홍 감독의 작품은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다. 우리 영화가 영상문법이나 색감, 스타일에서 획일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의 영화는 매우 중요한 위상을 갖고 있다. 특히 상업성에 물들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는 점이 마음에 든다. 일관성 있게 작품을 만들어 가는 그의 정신은 작가로서 대접받을 만한 것이다.”
|contsmark12|- 홍 감독의 영화가 마음에 든다는 뜻인가?“사실 나는 그런 영화는 싫다.”
|contsmark13|- (웃음)이광모 감독은 그의 고집만큼이나 세심한 배려심이 있는 사람이다. 자기와 다르다고 배척하지 않는 그의 태도에 위선적인 흔적은 없었다. 그런 이광모 감독에게서 우리 영화의 어떤 희망의 씨앗을 기대해도 좋을 듯했다.그는 늘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원칙과 기준을 자신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당당히 요구하는 인물이다.그가 ‘아름다운 시절’을 제작할 당시 그의 조감독들은 충무로보다 서너배 이상의 보수를 받았다. 작업의 성격상 그래야 한다는 그의 원칙 때문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감독들의 보수가 그들의 실질적인 생활보장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는 그의 고백은 차라리 안쓰럽기조차 했다. 자신의 인생태도가 자신의 작품 속에 반영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늘 잊지 않고 있는 그는 그래서 카리스마적인 영화작가라기보다는 따듯한 휴머니스트로서의 인상이 강하다.
|contsmark14|- 작가란 결국 어떤 존재인가?“늘 현실 속에서 고민하는 존재가 아닐까. 자기가 처한 현실 속에서 타협하기보다는 늘 최선을 다하려는 자세가 진정한 작가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contsmark15|- 그렇다면 최근 독립영화 작가들이 충무로로 대거 진출하는 것을 어떻게 보는가“밖의 상황에 대해서는 신경쓰고 싶지 않다. 그들이 과거 운동권이었든 이상주의적인 예술가들이었든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오늘 현실에서 영화를 통해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이야기를 소신껏 할 수 있느냐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그것도 다양한 목소리로 말이다.”
|contsmark16|그의 요점은 용기였다. 작가가 되느냐 흥행사가 되느냐는 결심은 본인의 용기에 달린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광모 감독의 수줍은 표정 뒤에 감춰진 단호함은 예사롭지 않은 것이었다.상업영화들이 판치는 우리 영화계에 그는 몇해 전부터 꾸준히 세계 거장들의 예술영화를 보급해 왔다. 흥행이 보장되지 않는 예술영화, 그것도 극장 상영을 전제로 그러한 작가주의 영화들을 수입 배급한다는 것은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대표로 있는 ‘백두대간’에 의해 94년부터 한국에 소개된 작품들의 면면에서도 이광모라는 이 젊은 감독의 존재는 실로 무겁게만 느껴진다.타르코프스키의 ‘희생’, 짐 자무쉬의 ‘천국보다 낯선’, 키아로 압바스 스타미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앙겔로 풀로스의 ‘안개속의 풍경’, 장 뤽 고다르의 ‘비브로 사비’, 파스빈더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등등… 백두대간에 의해서 우리 영화팬들은 판박이 장르영화와 작가영화의 차이점에 비로소 눈 뜰 수 있었다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관객의 수준이 창작의 질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이광모 감독의 역할은 정부의 수백억의 영상산업진흥책보다 더 큰 효과를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대화를 마치고 일어서기 전에 별 의미없이 물었다
|contsmark17|- 가끔 시청하는 tv프로그램이 있나?“sbs였던가. 장수퀴즈를 몇 번 봤다. 볼 때마다 정말 재미있었다.”
|contsmark18|모 방송사 tv드라마 인턴시절, 그가 pd들에게 조심스레 꺼내 보인 ‘아름다운 시절’의 시나리오가 빈축을 사지 않았다면 지금의 영화 ‘아름다운 시절’은 어쩌면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contsmark19|그는 다음 작품으로 할아버지 세대의 이산가족을 다룬 영화를 기획하고 있다고 했다. 그에게 있어서 자신의 뿌리는 끊임없는 애정의 대상인 것이 분명했다. 그 뿌리의 모습이 어떤 것이든, 그것이 추하고 세속적이고 때로는 이기적일지라도 그것이 역사 속에서 필연적으로 획득된 인간의 모습이라면, 더구나 그것이 다름아닌 자신의 뿌리라면 그는 기꺼이 애정이 깃든 시선으로 그들을 다시 한번 감싸안을 것이다.모든 것이 부유(浮游)하는 이 시대에 그가 타협을 거부하며 산처럼 버티고서 움켜쥐려는 그 어떤 것, 그 어떤 것에 전세계가 경배의 메시지를 낭독할 그날을 기대해 본다.|contsmark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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