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따져보기] 공포를 통한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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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kbs 2tv <소문난 칠공주>가 지난 주말, 덕칠(김혜선)이 성폭행 당할 뻔 한 장면을 방영하면서 잡음을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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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하면 자신을 무시하고, 아내 앞에서 유흥업소 ‘마담’의 이야기를 버젓이 하며 ‘그 여자보다 네가 나은 것이 뭐냐’고까지 하는 남편에 대한 불만을 쌓아가던 덕칠은 한 번의 외도를 하게 되고, 결국 남편도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덕칠은 집을 나가게 되고, 홀로 자립하기 위해 식당일을 한다. 그러던 중 덕칠이 혼자라는 이야기를 들은 식당 주인은 덕칠을 성폭행 하려 들고, 몸싸움을 벌이던 덕칠은 식당 주인의 머리를 후려친 후 가까스로 도망쳐 나온다. 단칸 셋방에 뛰어 들어가 목 놓아 우는 덕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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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성폭행’이어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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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장면은 사회 경험 없이 오로지 전업주부였던 한 여자가 세상에 나가 홀로 자립하려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비참한 것인지를 보여주려 한 의도일 수 있다. 또한 그러한 현실이 진짜 이 사회의 한 부분의 모습이기도 하리라. 하지만 이 드라마가 ‘성폭행’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통해서 그 과정을 그려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것이 현실을 꼼꼼히 혹은 냉정하게 관찰한 결과로써 반영된 것 같다기보다는, ‘어차피 세상도 녹녹치 않으니 남편이 어떻게 굴든 가정으로 돌아가라’는 식의 메시지를 마치 교리처럼 강요하고 있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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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문영남 작가의 전작 <장밋빛 인생>에서도 반복되었던 부분이다. 남편의 외도에 절망한 맹순이(최진실)는 분풀이로 나이트클럽에 놀러 나갔다가,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성폭행 당할 위기에 처한다. 문영남 작가의 이 반복은, 남편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여자들은 성폭행과 같은 범죄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는 극단적인 공포를 담보한 일종의 협박처럼 들린다. 이것은 실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하는 기로에 선 사람들 뿐 아니라 그런 일을 겪어보지 않은 이들에게도 무의식적인 공포로 각인된다. 실제 현실이 그렇더라고 해도, 또 정말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해도, 그 이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정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결국 비참한 삶 아니겠는가. 그런 위험으로부터 막아주는 남편이기 때문에, 그 대신 남편이 주는 모욕이나 강제는 (상대적으로) 사소한 것으로 여기고 참는 것이 낫다는 비굴한 거래 밖에는 되지 않는다. 작가가 그런 의도로 쓴 것이 아니라 해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해석하지 않기가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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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감 있는 드라마를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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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에 오른 어떤 글 중에는, ‘아이들과 함께 보던 중, 의아해하는 아이들에게 저런 행동은 범죄이고 저런 일을 당하면 경찰서에 신고하고 처벌받게 해야 한다고 가르쳤는데, 뛰쳐나온 덕칠이 경찰서로 가기는커녕 곧장 자기 집으로 도망쳐 통곡하는 바람에 당황스러웠다’라는 의견도 있었다. 드라마가 물론 윤리교과서는 아니나, 참고해야할 부분이다. 사회의 부조리는 부조리로 인식하고 고쳐나가야지, 그것이 오히려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확대 재생산 되어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 드라마가 그 정도의 책임감은 가져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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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정/드라마몹 에디터|contsmark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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