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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킹 목사를 기리며

|contsmark0|배인수전 ebs pd / 미국 유학중fullsho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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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지난 1월 18일은 몇 안되는 미국의 공식휴일 중의 하나였습니다. 이날이 휴일인 까닭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생일이기 때문입니다. 킹 목사의 생일은 원래 1월 15일이지만 그냥 1월 셋째 주 월요일을 기념일로 정해놓았습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는 잘 아시는 대로 미국 흑인 인권 운동가입니다. 인권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암살 당했습니다. 또 지난주에는 대통령의 연두교서 발표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몇몇 인사가 초청 받았고 대통령은 연설 중에 그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그 업적을 칭찬했고 상·하원 의원들은 기립박수로 그들의 업적을 기렸습니다. 그 중에는 조그마한 흑인 할머니가 있었는데 1분이 넘는 긴 기립박수가 그 할머니를 맞았습니다. 그 할머니는 40여년 전 버스 안에서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백인의 요구를 끝까지 거부했고 그 일은 미국 흑인 인권운동의 전환점이 된 역사적 사건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그 버스사건을 통해 킹 목사는 위대한 지도자로 떠올랐습니다.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지 몇 주 되지 않은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주었다며 킹 목사와 버스사건에 대한 인쇄물을 들고 와서는 이게 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 인쇄물에는 이렇게 써 있었습니다. ‘한 때 미국에서는 흑인과 백인은 한 버스에도 한 식당에도 한 학교에도 다니지 못하는 것이 합법적이었던 불행한 시절이 있었다.’버스 사건이 일어난 지 이제 갓 40년이 넘었을 뿐이고 킹 목사가 암살 당한지는 30년 밖에 되지 않지만 미국은 이미 그 일에 대한 역사적 정리를 끝낸 듯 싶습니다. 30년 전 혹은 40년 전 공공질서와 국가 안녕의 적이었던 사람들이 지금 사회와 그리고 국가에 의해 끝없는 추앙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별 혼란은 없어 보입니다. 물론 저 같은 이방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혼란은 있을 망정 말입니다. 그 와중에 가치에 대한 혼란이 늘 당연했던 제가 오히려 미국의 단순 명료함 앞에 조금 혼란스럽습니다.작년, 광복 50주년을 맞는 그 해, 한 여름 내내 저를 암담하게 했던 것은 미국 유학 준비와 그리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한 신문이었습니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신문의 조사에 응한, 저와 같은 시대를 한 땅덩어리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을 세우는 그 계단의 맨 꼭대기에 김구 선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순신 장군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세종대왕도 아닌, 한 때는 일본군 장교였다가 다시 한국군 장군이었다가 또 다시 한국 대통령이었던 사람을 세워놓은 어느 여름날 아침 그 신문을 보고 저는 아연실색이라는 말의 참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역사가 심판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과연 역사가 심판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역사도 결국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지나간 어떤 시대와 어떤 사람과 어떤 일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몫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그 평가 또한 모이고 모여 하나의 역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진정 역사가 심판한다면 지금 우리의 지난날에 대한 생각과 느낌과 그에 따르는 행동도 또한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contsmark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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