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PD의 영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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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PD의 영화이야기
인내심 테스트를 테스트하는 인내심
‘ 아름다운 시절’을 보고
  • 승인 1999.0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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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홍동식mbc 라디오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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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참다 참다 30분만에 뛰쳐나왔죠. 뭐. 한마디로 인내심 테스트용 영화예요.”영화를 꽤 안다는 지인(知人)에게 ‘아름다운 시절’이 어떻더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원래 그 지인은 영화가 좀 아니다 싶으면, 거짓말 좀 보태 타이틀이 올라가는 중에라도 툴툴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날 정도로 급진적인 성향인지라, 그의 그런 영화관람관(觀)을 감안한다면 삼십 분도 그에게는 대단한 아량이었던 셈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지난 연말 이 영화를 극장에 가서 보았을 때, 같이 간 또 다른 지인도 영화가 시작되고 10분쯤 지나자 하품을 세게 한번 하더니, 30분 후에는 기척이 없더군요.필자는 물론 끝까지 졸지 않고 보았습니다. 몇 번의 유혹이 있었지만 악착같이 버텼습니다. 나중에 이 글을 써야만 했기에…. 그리고 보고 나서 내내 생각했습니다. 한석규나 심은하 나오는 재미있는 영화 다 제쳐두고 우리가 재미없다고 구박하는 영화들이 왜 주로 해외에서 호평받을까? 해외에서 호평받는 우리 영화들은 왜 대부분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텍스트가 될까? 이른바 인내심 테스트용 영화들은 왜 졸릴까? 그리고 이런 우문(愚問)들의 종합판-그런 영화를 졸지 않고 끝까지 보는 방법은 없을까?(졸음타령이 쓸데없이 길어졌습니다만, 이왕 나온 김에 조금만 더…)내용상 졸지 않고는 도저히 배기지 못한 영화도 있겠지만, ‘쥬라기공원’을 졸면서 본 사람도 있다니까 원래 졸음이란 것은 영화의 내용과는 무관한 신체적 반응이지요. 하지만 졸면서 ‘쥬라기공원’을 본 사람일지라도 이 영화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끝까지 봐야 될 이유가 최소한 한가지는 있습니다. 굳이 해외영화제 수상작이 아니더라도(그리스 테살로니카 영화제 최우수 예술공헌상, 프랑스 벨포르 영화제 그랑프리, 하와이 영화제 대상 등등…. 필자는 세상은 넓고, 영화제도 참 많다는 사실을 이 영화 덕에 알게 되었음) 이 영화는 근래에 보기 드문 수작인데다가, 졸면서 봐서는 놓치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만간 비디오로 ‘아름다운 시절’을 접하실 분께 필자가 이 영화에서 끄집어 낸 ‘졸음을 막기 위한 다섯 가지 감상지침’을 참고로 알려 드릴까 합니다.첫째, 대사는 신경쓰지 않는 편이 감상에 도움이 됩니다. ‘아름다운 시절’에서 대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리 많지 않은 대사들도 웅얼웅얼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기술상의 오류가 아니라 이광모 감독이 애초 그렇게 의도했던 것 같습니다. 배우들의 애매하고도 멀뚱한 대사들 역시 애매하고도 멀뚱하게 듣고 있으면 어느 순간 대사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화면이 대사 이상으로 많은 이미지를 전달해 옵니다.둘째, 먼저 시나리오를 읽으십시오. 촬영 전 시나리오가 단행본으로 나와 있는데, 완성된 영화와 비교해 보면 상당히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나리오에서 어떤 것이 삭제되고 어떤 것이 첨가되었는지를 알면 감독의 연출의도를 훨씬 빨리 파악할 수 있습니다.셋째, 배우들의 움직임을 유심히 보면서 프레임 밖을 읽으십시오. 이 영화는 롱테이크와 롱숏이 푸짐한 영화입니다. 게다가 카메라도 별반 움직임이 없습니다. 배우들이 프레임 안에 있다가 슬며시 프레임 밖으로 나가도, 카메라는 별로 쫓아가지 않습니다. 카메라가 영화를 일일이 설명하려 하지 않는 거지요. 하지만 프레임 안과 프레임 밖은 끊임없이 조우(遭遇)합니다. 그러나 프레임 밖 배우들의 움직임을 프레임 안을 기준으로 하나 하나 읽으면 영화가 좀더 분명히 보입니다.넷째, ‘조역들 알아 맞추기’를 하십시오. 감독은 조역들이 고개를 빳빳이 세우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양 싶습니다. 그저 고개 푹 숙이고 카메라 앞을 지나가 버립니다. 게다가 조역들은 클로즈업을 거의 못 받은 채 이른바 ‘점(點)연기’를 합니다. 하지만 카메라가 너무 멀리 있다 보니 조역을 한 배우들이 누군지 쉽게 파악이 되지 않습니다. 누군지 알아 맞춰 보세요(유오성도 나오고 명계남도 나오고 오지혜도 나옴. 그리고 윤문식의 경우 목소리는 들리는 것 같은데 크레딧에는 없었음).다섯째, 롱숏일 경우 눈을 가늘게 뜨고 보십시오. 아련한 안개에 젖은 산자락, 군용 짚이 흙먼지를 일으키는 길, 밥짓는 연기 솟아오르는 복사골 전경, 미군들의 검은 빨래가 펄럭이는 모래사장 등등. 바로 우리들의 기억 속 풍경화인 이런 롱숏 장면들을 마치 근시가 먼 산 보듯 눈을 가늘게 해서 보면 우리는 우리의 과거와 만날 수 있습니다.자, 이 다섯 가지 감상지침을 바탕으로 ‘인내심 테스트를 테스트하는 인내심’을 발휘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contsmark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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