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CP 릴레이 인터뷰 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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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만명 주부의 아침을 책임진다

조명희 kbs 교양정보팀 선임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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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제·가정내 성폭력 등 금기 깨는 문제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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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희 kbs 교양정보팀 pd는 이달로 꼭 입사 25년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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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당> <세상은 넓다> <러브인 아시아>등 모두 3개의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있는 조 pd는 그동안 문화예술프로그램과 주부대상 여성 프로그램을 줄곧 제작해왔다. 강산이 두 번 바뀌고도 남는 세월 동안 조수미, 정명훈, 정명희 등 세계적인 음악가에서부터 오한숙희, 곽배희 등 걸출한 여성학자들이 조 pd의 프로그램을 거쳐 갔다. 94년 <문학다큐멘터리>에서는 토지를 완간한 작가 박경리 선생의 문학세계를 한 시간짜리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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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입사 당시만 하더라도 방송계에서 여성pd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그동안 남몰래 겪은 고충은 말도 못한다.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주위의 따가운 시선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흔히들 남편 벌이가 시원찮아서 저 고생을 하고 다니는 거냐는 식의 편견이 방송사내에서도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오기가 나서 일로서도, 두 아이의 엄마로서 더 열심히 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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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pd로 사회적 편견과의 싸움도 녹록치 않았다. 15년 전 아침프로그램 <독점여성> pd로 있을 때의 일이다. ‘주부의 가사노동 대가는 과연 얼마인가’라는 주제로 경제학자, 여성학자 등을 초대해 프로그램을 제작한 일이 있다. 방송이 끝나고 항의 전화는 물론이고 방송사 내에서도 비판이 있었다. 심지어 심의실로 불려가 심의위원에게 훈계까지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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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집안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지 무슨 돈으로 환산 할 수 있냐는 식이었다. 지금은 신문기사나 언론에서 흔히 다루는 주제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다. 여성성상품 문제나 호주제 문제, 가정내 성폭력 등 당시 금기시된 문제를 프로그램으로 많이 다뤘다. 이런 문제들이 법제화까지 됐는데 작은 힘이나마 여권 신장이나 사회변화에 힘을 보탠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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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pd가 방송제작 일을 한 사반세기의 세월만큼 방송환경도 많이 변했다. eng카메라가 없었던 필름 카메라 시절부터 디지털혁명으로 상징되는 최근까지 20여 년간 눈부시게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여성pd의 승진문제 만큼은 더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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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에서 여성 cp가 배출 된 지는 4년 밖에 안 된다. 조 pd는 당시 최초의 tv제작파트 첫 여성cp로 승진했다. 2002년 부장승진을 했지만 cp로 정식 발령을 받기는 2003년 처음이다. 당시 시청자센터장, 편성국장 등 여성pd들이 발탁되면서 파격인사가 단행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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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사회는 참 보수적이다. pd라는 직업이 우리 사회에서 연조가 짧은 것도 있지만 승진이 합리적이지 않았다. 남성들끼리의 문화에서 여성pd들은 정보에서 소외되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승진에서도 제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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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pd와의 인터뷰를 한 시간 남짓 진행했지만 그 동안의 방송인생을 정리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다. <아침마당> 4000회 특집 la현지 생방송을 진행할 당시 카운트다운을 외친 조 pd는 ‘큐 사인’을 한 당시를 잊지 못했다. “한국과 미국 스태프 150여 명이 일제히 숨죽이고 큐사인을 기다렸다. 카운트다운을 외치며 ‘큐’라고 외칠 때 가슴이 벅찼다. 500만 명의 주부의 아침을 책임지는 이 자리가 자랑스럽다. 정년퇴임 때까지 cp는 아니겠지만 현장을 지킬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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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민 기자|contsmark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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