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CP 릴레이 인터뷰 ⑥ 허 미 숙 CBS TV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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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CP 릴레이 인터뷰 ⑥ 허 미 숙 CBS TV 본부장
“PD는 이슈에 바른 대답해야”
  • 관리자
  • 승인 2006.09.2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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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6월 항쟁 생방송 중계…방송사 첫 여성 편성국장 역임

cbs에는 숱한 언론 역사의 풍파를 온몸으로 겪은 여성 리더가 있다. 허미숙 cbs tv 본부장이다.
“지난해 12월 30년 근속 포상을 받았고, 올해 30년 근속 휴가를 가야하는데 시간이 없어 못가고 있어요”
그는 75년 10월 cbs pd로 방송사에 첫 발을 내딛은 후 80년대 유일한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월요특집’을 연출했다. 이 프로그램은 1987년 1월 ‘고문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주제로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을 다루고 6월항쟁 상황을 생방송으로 중계하기도 했다.
허 본부장은 남북문제와 관련해서도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93년 서울 독립문에서 판문점까지 인간띠를 이은 ‘민족과 함께 통일로’를 연출해 94년 한국방송프로듀서 대상을 수상했고, 2004년부터 올해까지 3회 연속 금강산 콘서트 ‘통해야’를 추진한바 있다.
2003년에는 우리나라 방송사상 첫 여성편성국장을 거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인 허 본부장. 그러나 그의 삶 이면은 그리 녹녹치 않았다. 군부독재 시절 수차례 남산 대공분실로 끌려가 조사를 받았고, 때로는 지방으로의 좌천을 거듭하기도 했다.
80년 언론통폐합. 당시 cbs는 언론통폐합으로 보도기능을 잃었다.
“언론통폐합 때 매일같이 눈물로 아침조회를 하며 분한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죠. 동료들은 회사를 떠나야 했고, 암울했던 사회 현실에 대해 한마디도 못했던 시절이었어요. 그래서 만든 게 1분짜리 스팟광고예요. ‘cbs는 뉴스 기능을 회복하고 싶습니다’라는 광고인데 이 광고를 프로그램 사이에 몰래 끼어서 내보내면 그날 담당 pd는 도망을 다녀야 했어요.”
87년 7월 15일. 그는 그야말로 대형 사고(?)를 저지른다. 방송법으로 막아 놓았던 뉴스를 내보낸 것이다.
“‘cbs 뉴스 회복을 위한 5시간 특별생방송’을 만든 적이 있어요. 제가 3부를 연출했지요. 우리는 기습적으로 정확히 6시 30분에 저녁뉴스를 내보냈어요. 또 6시 48분부터는 재야 인사였던 김대중 씨의 인터뷰를 내보냈는데, 이는 회사에서도 극비였어요. 클로징 코멘트를 하면 바로 연행될 사건이었죠.”
이 사건은 당시 언론의 자유에 대해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고, cbs는 그해 10월 17일 뉴스를 부분적이나마 회복할 수 있었다.
그의 험난한 인생은 이후 90년대로 이어진다. 2000년 전북 보도제작국장으로 있을 때 권호경 cbs 전 사장 퇴진을 위해 서명운동을 했고, 그 이유로 정직 3개월과 지방 전출 등 보복성 인사를 당하기도 했다. 권호경 사장이 물러나고, 그는 2003년 4월 우리나라의 첫 여성 편성국장을 맡게 된다.
“숱한 일을 겪으면서도 한 가지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은 pd의 역할이예요. pd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 바른 대답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pd에게 주어진 사명이죠.”
지금껏 방송인으로 살면서 후회 없이 행복했다고 말하는 그는 최근 걱정이 있다. 방송통신융합상황에서 cbs의 가치관인 ‘정의 구현’과 ‘사랑’을 어떻게 콘텐츠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앞으로 5년안에 미디어 빅뱅이 온다고 봅니다. 모든 pd들은 단지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 전락할 것인가. 아니면 방송의 고유한 정신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 분명한 것은 pd가 왜 존재해야 하는가를 놓치지 않고 살아야 겠죠.”
인터뷰 내내 pd로서의 사명을 강조한 허 본부장. 그는 앞으로 방송통신융합의 상황에서 새로운 pd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한다. 식지 않은 열정으로…. 김광선 기자|contsmar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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