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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주제작과 프로그램의 질
홍 성 일
문화연대 미디어센터 운영위원

모 방송프로그램으로부터 인터뷰를 부탁받았다. 나름 할 이야기가 있던 주제이기에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그리하여 담당 pd가 찾아왔다. 그는 혼자였다. 한 손에는 6mm 카메라를, 다른 한 손에는 카메라 받침대를 들고 나타났다. 이미 한 건의 인터뷰를 지방에서 촬영하고 올라왔다고 말한다. 손수 운전을 해서 다녀왔단다.
그는 능숙하게 카메라를 설치하고 이제는 인터뷰어로 변신했다. 조명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사용할 수가 없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건네준 명함에는 생소한 외주제작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외주제작과 프로그램의 질에 대해 고민한 시점은 이 때부터였다. 한정된 예산으로 인해 한 명의 pd가 모든 일을 도맡아야 하는 것이 외주제작의 현실이었다. 한 명은 조명을, 다른 한 명은 전문적인 인터뷰를, 또 다른 한명은 좋은 촬영 각도를 잡는 일은 외주제작 pd에게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일일 것이다. 이러한 현실이 프로그램의 질 저하와 연관된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 외주제작 pd에게는 프로그램의 질보다는 방송일에 맞추어 프로그램을 완성하는 것이 보다 급한 문제로 보였다.
물론 지난 10여 년 동안 이루어진 외주제작제가 한국의 방송환경에 미친 긍정적 영향을 간과할 수는 없다. 방송법 제 72조를 통해 의무적으로 외주제작 편성비율을 정해 놓은 것은 그 동안 한국 방송환경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던 방송사의 독과점 구조와 프로그램의 획일성을 무너뜨리기 위한 한 방편이었다. 그러나 지금 현실에서 외주제작제는 시장실패를 경험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은 자연스럽게 양극화의 구조를 만들었다. 소위 잘 나간다는 몇몇 외주제작사를 제외한다면 많은 외주제작사들이 박리다매 형식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건설공사 수주와 프로그램 수주가 대동소이하다는 외주제작사들의 자조 섞인 한탄이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부실공사가 이루어지는 구조적 조건과 부실 프로그램이 제작되는 구조적 조건이 동일하다는 말이겠다. 또한 고용조건이 안정되지 못하니 이직률 역시 높아져 갔고 이로 인해 방송의 전문성 역시 떨어지게 되었다. 방송 프로그램에 문제가 발생하면 외주제작자에게 책임이 돌아가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 소송의 여지가 있는 프로그램은 아예 기획단계에서 배제가 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싼 값에 안정적인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는 6mm vj 프로그램들이 외주제작 프로그램의 주된 형식이 되었다. 프로그램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도 외주 제작 프로그램은 획일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외주 제작의 또 다른 당사자인 방송사에게 눈을 돌려도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방송사들은 아웃소싱이 주는 달콤함 앞에 도끼 자루가 썩는 줄도 모르는 것 같다. 산업 예비군에 비견될 수 있는 수많은 외주 예비군들의 존재는 오히려 방송사의 입김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국 방송 프로그램의 질은 시나브로 하향 평준화되었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청자에게 전가되고 있다. 그 결과 좋은 프로그램(quality program)을 제작해야하는 방송제작자의 의무와 보다 좋은 프로그램을 요구할 수 있는 시청자의 시청권은 외주제작의 역사 속에서 오히려 퇴보한 것처럼 보인다. 외주제작의 현실화와 한국 방송프로그램의 질 상승을 위해 시장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정책적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다.|contsmar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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