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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욱 연
서강대 중국문화과 교수

미래로 가는
고구려 드라마는 없나

중국 동북공정에 대응한 우리 방송들의 ‘만주공정’이 줄기차다. <주몽>, <연개소문>에 이어 <대조영>까지 등장했다.
방송 3사들이 고구려를 중심에 두고 고구려의 전사와 후사로서 부여와 발해를 다룬 드라마를 분담 제작해 동북공정에 총공세를 펴는 형국이다. 지난 주말은 그 절정이었다. <대조영>이 첫 방송되고 여기에 기존의 <연개소문>과 <느낌표>, 그리고 까지 합세하면서 가히 동북공정에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시청자들의 반응도 좋은 편이라고 하니 방송이 동북공정 특수를 맞고 있는 셈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얼마간 반도의 작은 나라에 살고 있다는 소국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럴수록 신라의 통일이 불만스럽다. 신라가 외세를 끌어들여 통일을 하는 바람에 고구려의 땅, 만주 대륙을 잃어버렸고, 우리 민족의 기반이 축소되었다는 안타까움이 역사의 한이다.
그리고 그럴수록 잃어버린 만주 땅에 대한 아쉬움과 고구려를 향한 그리움, 고구려의 신화는 강해진다. 대한민국 국사 교육에서 고구려, 발해, 부여, 그리고 신라의 의미가 그러하기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여긴다.

방송의 ‘동북공정 특수’ 경계

민족 자존심의 상징인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이 강탈해 간다는 것은 우리 국민들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기에, 우리 국민들의 민족주의 차원의 분노는 당연하다. 드라마 <대조영>의 제작진들이 제작 동기를 설명하면서 고구려 유민들이 세운 발해는 ‘동아시아 최강국’이었다면서, 그런 ‘대조영과 발해를 그리는 일은 찬란한 민족의 역사를 복원하는 일’이라고 역사적 소명의식을 내세우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그런데 텔레비전에 넘쳐나는 그 분노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해도 이렇게 방송사들이 경쟁적으로 민족주의에 불을 지른 뒤, 그 뒷감당은 장차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 앞으로 대한민국 국민들은 ‘만주는 우리 땅이다’고 외치면서 <느낌표>에서 본대로 지금 한반도보다 몇 배나 큰 고토를 회복하기 위해 주몽처럼 전쟁이라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로, 연개소문과 대조영 같은 지도자가 우리 정치에 출현하기를 갈망하면서 사는 국민들이 늘어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중국 민족주의에 더 센 우리의 민족주의로, 심지어 쇼비니즘을 연상시키는 극단적 민족주의로 부딪히는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를 넘어 폭넓은 동아시아 시각 속에서 한층 설득력 있고 수준 높은 대응으로 중국의 횡포를 무력화 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짧은 국정 교과서 국사 지식만으로 보더라도 고구려와 발해는 다민족, 다문화, 다언어 국가였다.
사실, 그들의 활동 무대인 만주(요동) 지역이 원래가 오늘날의 한국과 중국, 러시아 등이 뒤엉킨 혼성의 공간이었다. 고구려와 발해의 찬란한 문명은 그런 다민족, 다문화, 다언어로 구성된 그 혼성의 공간에서 여러 민족의 언어와 문화가 뒤섞이는 가운데 꽃을 피웠다. 그럴 때, 고구려와 발해를 우리 민족만으로 구성된 나라로 그리는 드라마는 고구려와 발해에 대한 또 다른 오해와 모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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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와 발해에 영토확장의 꿈을 담고서 상처 난 민족 자부심과 소국 콤플렉스를 달래주는 프로그램만 텔레비전에 넘쳐난다. 여러 민족, 여러 문화, 여러 언어들이 뒤섞인 가운데 찬란한 혼성의 제국을 이루었던 그런 매력적인 나라, 그런 위대한 조상들의 나라로 고구려와 발해를 그리는 드라마는 왜 없는가.
동아시아 민족주의가 서로 상승작용을 하며 극단으로 치달을수록, 고구려와 발해에 대해 판에 박힌 국민 기억을 되풀이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21세기 트랜스 내셔날 시대에 걸 맞는 고구려와 발해에 대한 새로운 미래 지향적 기억을 구축하는 그런 드라마가 간절해진다. 한국이 동아시아 상생의 고리이자 주역이 되는 자랑스러운 미래를 꿈꾸는 까닭에 그렇다.|contsmar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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