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 파문, 저널리즘 죽이는 상업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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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알권리와 인권 범주, 사회적 합의로 만들어야"

문화일보가 지난 13일 문화계 유력인사의 집에서 허위학력 파문의 주인공 신정아씨의 누드사진이 발견됐다며 해당 사진을 지면에 게재하고 이를 ‘성로비’ 의혹으로 연결한 것과 관련해, 언론계 안팎의 비판 여론이 높다.

허위학력의 신씨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권력’에 기대 동국대 교수 임용과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임명과정에서 혜택을 받았는지 여부를 밝혀내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언론의 역할일 수 있지만, 누드사진까지 버젓이 게재하는 건 정치적·상업적 목적에 눈이 먼 ‘선정주의’라고 밖에 해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론계는 물론 정치권 나아가 누리꾼들까지도 문화일보의 황색저널리즘을 한목소리로 규탄한 이날 오후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안경환)와 방송과인권연구회는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 배움터에서 ‘방송과 인권’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언론학자와 현직 언론인, 법조인들은 방송보도로 대표되는 언론보도가 ‘국민의 알권리’와 ‘인권’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지 논의했다.

민주주의 핵심인 언론의 자유도 인권에 우선할 수 없어

‘사회사건 보도와 인권’을 주제로 발표에 나선 하봉준 영산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 등을 위한 언론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질서의 핵심이긴 하지만, 모든 경우에 절대적일 순 없다”면서 “개인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표현행위는 절대로 인격권보다 우선할 수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하 교수는 “언론에 의해 개인의 명예가 훼손되고 나면 추후 정정이나 사죄보도를 한다 해도 회복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언론의 명예 훼손적 표현의 피해자가 공적인물인지 사인인지, (공적인물이라 할지라도) 사용된 표현이 공적 관심 사안에 대한 것인지 사적 영역인지를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국가인권위원회, 방송과 인권연구회 주최 '방송과 인권'토론회

토론자로 나선 김연국 MBC 기자는 “87년 6월 항쟁이후 민주주의와 인권의 신장 그리고 언론 자유의 확장을 궤를 같이 하며 성장해 나가고 있다”면서 “언론은 ‘성역 없는 감시와 비판’이라는 의무를 더 무겁게 요구받고 있는 동시에, 우리 사회 소수자와 그늘, 나아가 피의자와 범죄자 등의 인권에 대한 인식의 확장 역시 요구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론이 부여받고 있는 이 같은 요구와 의무가 선정성과 상업주의로 인해 끊임없이 방해를 받고 있는 게 현실”이라면서 “오늘(13일) 한 언론에 게재된 신정아씨 누드사진이 바로 그런 상황”이라고 탄식했다. 

실제로 신씨의 누드사진이 논란을 낳으며 문화일보 홈페이지 서버가 접속 폭주로 다운되자 조선닷컴과 조인스닷컴, 동아닷컴 등과 같은 보수 성향 언론의 인터넷 뉴스 사이트는 즉각 해당 사진이 게재된 문화일보를 촬영해 기사를 게재했다. 언론단체들은 "이른바 조중동으로 불리는 보수언론들이 문화일보가 터트린 이른바 ‘상업적 대박’의 부스러기를 줍기 위해 신씨의 인격을 두 번 죽이는 일을 서슴지 않고 있다"며 규탄하고 있다.

“상업주의가 저널리즘 죽이기 전에 사회적 합의 마련해야”

문제는 보도를 하는 언론의 입장에선 공익과 인권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들이 계속 벌어지는 게 현실이란 점이다.

김 기자는 “국민의 알권리, 다시 말해 공익과 명예훼손 사이에서 기자들은 끊임없이 선택을 하는 ‘외줄타기’ 상황에 놓여있다”면서 지난 8월 MBC가 보도한 경기도 군포의 한 영어학원에서 학력을 위조한 원어민 강사가 어린이들을 성추행한 사건을 예로 들었다.

그는 “시청자들이 문제의 원어민 강사를 고용한 학원을 정확히 알고 싶어 하는 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권리이지만, 해당 학원의 원장과 원어민 강사의 인권 역시 기자는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MBC는 당시 보도에서 해당 학원이 위치한 지역과 주변의 배경은 방송에 내보냈지만 학원명과 원어민 강사의 실명은 밝히지 않았다. ‘외줄타기’의 결과물인 것이다.

김 기자는 “이러한 고민을 기자들에게만 맡겨선 안된다”면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공익의 범주인지,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길인지 등에 대해 학계와 법조계, 시민사회, 언론 모두가 모여 합의점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이은우 변호사(법무법인 지평)는 “알권리와 인권이라는 가치가 충돌할 때는 가치 교량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며 “문제가 되는 게 공적인 관심사이고, 해당 개인이 스스로 공적 인물로서 활동해 왔다면 그에 대해선 시민들의 알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권리와 개인의 인권이 충돌한다면? 우리나라 대법원은 공적 관심사나 공인에 대한 보도일 경우에도, 진실 여부를 언론에서 입증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공적인 인물의 공적인 관심사에 대한 보도라면, 언론이 아닌 공적 인물이 보도가 허위이며 언론이 악의를 가지고 있었음을 입증해야 한다.

이 변호사는 “우리나라처럼 언론이 입증해야 하는 상황에선 증인을 내세워야 하기 때문에 취재원 보호가 어렵고, 증거 대부분인 공적 기관이나 인물에 쏠려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입증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 거액의 손해배상 책임이 두려워 언론이 공익에 반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하지 않으려 드는 상황을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국민의 알권리라는 중요한 문제를 상업주의가 이용해 저널리즘을 죽이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알권리와 인권 사이의 사회적 합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토론의 기조발제를 맡은 이권영 광주대 언론홍보대학원장은 ‘알권리’와 ‘인권’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방안으로 ▲언론인에 대한 체계적인 인권교육 ▲미디어의 인권보도 지원 ▲언론인 채용시 사회적 소수자 적극 채용 ▲인권향상 기여 언론인 대상 시상 확대 ▲미디어와 인권의 상호의존적 속성에 대한 지속적 연구 등을 제안했다.

 


김세옥 기자 kso@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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