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 사생활 보도, 범위 고민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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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등 보수 언론들과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장애인․여성 비하 등 온갖 문제 발언을 못 들은 척하고 있다는 지적이 언론운동단체와 진보 성향의 언론들로부터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이 후보의 설화(舌禍) 중 최근 가장 논란이 됐던 “마사지걸이 있는 곳을 갈 경우 얼굴이 덜 예쁜 여자를 골라야 한다더라(8월28일)”라는 발언이 조․중․동에선 단 한 꼭지도 기사화되지 않았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대화 하나만 성공시키면 나머지는 ‘깽판’쳐도 괜찮다”는 발언을 한 것과 관련해 이들 언론(조선 9건, 중앙 6건, 동아 15건)이 품격 논란을 제기하며 기사를 쏟아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진보매체와 언론단체들은 보수신문의 이 같은 모습을 ‘정언유착’으로 규정하고 있다. 현행 선거법 상 대놓고 지지하진 못하지만, 자신들의 이해와 맞물린 후보의 단점에 대해선 사실상 ‘모르쇠’로 일관함으로써 유권자인 독자들의 눈과 귀를 막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의 관심 속에 지난 6월 대선을 치른 프랑스도 선거 전후로 대중운동연합(UMP)의 니콜라 사르코지 후보(현 대통령) 등 대선 후보들과 언론의 정언유착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한국언론재단은 10일 오전 프레스센터에서 한국과 프랑스 현직 언론인들을 초청해 ‘프랑스의 선거보도 사례’ 토론회를 열고 정언유착의 고리에서 자유로운 바람직한 대선보도의 길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대선후보에 대한 지나친 사생활 보도, 프랑스 국민이 불편해한다”

이날 토론에서 ‘네거티브 선거 전략과 언론보도’를 주제로 첫 번째 발표에 나선 아르노 로디에 ‘르피가로’ 경제부 편집부국장은 “프랑스인과 프랑스 언론은 대선 후보에 대한 정책․자질 등의 검토는 당연해도 사생활을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대선 후보의 재산 형성 과정과 이력 등에 대한 꼼꼼한 검증이 ‘국민의 알 권리’로 인정되는 한국의 분위기와는 매우 다른 것이다. 왜 이런 차이를 보이는 걸까.

로디에 부국장<사진 오른쪽>은 “대선후보의 삶이 일반 프랑스인의 삶과 닮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사르코지 당시 UMP 대선 후보의 가정은 재혼가정인데 프랑스 가정의 15%가 바로 그와 같은 재혼가정인 만큼, 이런 문제에 대해 언론이 나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로디에 부국장은 “이렇듯 일반 국민이 대선 후보의 사생활에 대해 큰 관심이 없기 때문에, 라이벌에서 그와 관련한 네거티브 캠페인이 나와도 언론의 보도는 일정 수위를 넘지 않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프랑스의 기자윤리가 아직까지도 남아 있기 때문에 대선 후보의 사생활이 크게 이슈화되지 않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성한용 한겨레신문 정치팀 선임기자는 “대통령에 대한 양국 국민의 인식이 다르기 때문에 후보의 사생활 보도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이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기 보단,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메시아’적 존재이길 바라고 언론 역시 그 같은 부분에 대해 보도해주길 원한다”고 설명했다.

성 기자는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이러하기 때문에 언론 역시 그에 맞춰 후보의 사생활 영역까지 보도해야 할 지 고민 중인 상황”이라면서 “후보 사생활에 대한 라이벌의 네거티브 선거 전략을 언론이 어디까지 보도해야 할 지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탈리 투레 ‘프랑스24’ 동경 특파원은 “대선 후보의 사생활에 보도가 지나치게 치우칠 경우 선거 유세 자체가 빈 수레처럼 될 수 있다”면서 “언론이 균형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한국 특파원을 지내기도 했던 그는 “지난 대선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정책 등의 부재가 아닌 사생활 때문에 낙마를 한 것이라면 유감”이라고도 말했다.

반면 로디에 부국장은 “한국인이 대통령을 ‘메시아’적 존재로 인식, 기대를 갖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면서 “그런 대통령에 대한 자질을 프랑스처럼 결선 투표제를 통해 여러 차례 검증 하는 방안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성 기자는 “두 차례에 걸쳐 후보를 검증할 수 있는 결선투표제의 장점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면서 “개헌을 하면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리나라에서도)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언론 사주와 대선 후보, 우정만 깊은 게 아니라서 문제” 

로디에 부국장은 “프랑스 언론 사주의 대부분이 무기․토목․건설 등 정부의 수주를 받아야 하는 사업들을 하고 있기 때문에, 유력 대선 후보와 언론 사주가 결탁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사르코지 대통령은 대선 기간 중 자신에 비판적인 기자를 만나면 “내가 당신의 사장을 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며 사실상 ‘협박’에 가까운 말을 자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이 ‘협박’은 단순히 ‘협박’으로 그치지 않았다.

프랑스 주간지 ‘파리마치’가 지난 2005년 8월 사르코지 당시 대선 후보의 아내 세실리아 사르코지와 연인 리샤르 아티아스의 밀회 장면을 표지 기사로 다뤄 파문을 일으킨 후, 편집장 알랭 주네스타는 해고됐다.   

로디에 부국장은 “사르코지는 자신의 개입이 없었다고 하지만 프랑스 국민 모두는 그가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알고 있다”며 “논란이 된 매체의 사주인 아르노 라가르데르와 사르코지가 매우 절친한 친구로 우정만 깊은 게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라가르데르는 선거 다음 날 ‘파리마치’의 자매지인 ‘르주르날뒤디망쉬(일요신문)’이 세실리아 사르코지가 투표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도하려 하자 자체 검열에 나섰다”면서 정언유착의 폐해를 토로했다. 이어 “정언유착에 대한 일반 기자들의 생각은 (사주와) 다른 만큼, 편집권 독립을 위한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로디에 부국장은 ‘언론의 지지후보 공개’와 관련해서도 “사주와 관련이 있는 후보를 선전하기 위함이 아니라 국민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언론이 존재하는 만큼, 지지후보 공개에는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이에 안철흥 시사인 정치팀장은 “공식적으로 말하진 않지만 언론이 사주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특정 후보에 대해 노골적으로 편드는 행위를 막기 위해서라도, 지지후보를 밝히는 게 일면 타당한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또 “한국의 대선 보도는 인물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지지후보를 밝히면 (언론이) 그 이유를 밝히는 과정에서 정책을 검증할 수도 있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안 팀장은 그러나 “정치부 기자의 60.7%가 최근의 대선 보도가 공정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그 이유를 사주(60.9%)로 꼽고 있을 만큼, 사주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게 국내 언론의 현실”이라면서 “편집권 독립에 대한 절차적 문제가 지지후보 표명에 앞서 심도 있게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TV 토론을 거부하는 후보는 바보”

TV 토론이 도입된 이래 지지율 1위의 대선 후보들이 선거 운동 과정 중 TV 토론을 거부한 사례들이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지난 9월 이명박 후보도 사회자나 전문패널 없이 토론자들의 질문에 즉각적으로 답하는 ‘타운홀미팅’ 방식의 KBS TV토론을 거부했다. 즉흥적인 질문에 대답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이를 두고 대통합민주신당, 민주노동당 등 라이벌 정당들과 언론단체들은 “지지율 1위의 오만이자, 국민의 알권리를 무시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로디에 부국장은 “토론을 거부하는 건 후보의 자유지만, 이를 거부하는 후보는 바보라고 생각한다”면서 “TV 토론이 진정한 토론의 장인지에 대한 의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권자인 시청자들이 보고자 하는 건 후보가 얼마만큼 자신의 공약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가이다”라고 강조했다. 

나탈리 투레 특파원<사진 오른쪽>은 대선 후보들이 TV토론을 통해 자신의 약점으로 지적받는 부분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투레 특파원은 “사르코지의 경우 정책은 좋지만 (후보) 성격이 안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TV 토론에서 어떤 질문에도 흥분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며 자신에 대한 (유권자들의) 의문을 잠재웠다”고 설명했다.

한편, 투레 특파원은 “공정함을 위해 프랑스에서는 대선 후보가 출연하는 방송 토론에 발언시간 제한을 두고 있다”며 “발언시간 제한은 프랑스 선거관리위원회와 방송위원회 등에서 규제를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세옥 기자 kso@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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