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샘의 예술이야기] ⑪ 한니발과 골드베르크 변주곡
상태바
[오한샘의 예술이야기] ⑪ 한니발과 골드베르크 변주곡
  • 오한샘 EBS PD
  • 승인 2007.10.05 18: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월이다! 봄기운이 농익은 과일처럼 무르익는 깊숙한 계절의 맛을 느끼는 순간, 봄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저만치 물러가 있으리라. 주변의 당연시 해왔던 것들의 소중함을 깨달은 순간, 모든 것이 덧없이 사라져가는 안타까움을 항상 뒤늦게 아쉬워하는 일상의 바보(?)처럼 계절의 아름다움 또한 본인에게는 돼지 앞의 진주일 뿐인 듯싶다.

담장 위 따사로운 햇살을 받고 널부러져 있는 개나리,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와 함께 묻혀있는 목련군들!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돌아본다면 굳이 미술관에 발품을 팔지 않더라도 어느 명화 못지않은 감상거리가 될 수 있으련만 인간의 어리석음은 오늘도 등잔 밑을 그냥 지나쳐버리게 하는 반복을 되풀이 하게 만드는 것 같다.

오후에 담장 앞의 개나리를 그저 한잔의 녹차와 함께 망연히 바라볼 수 있는 여유! 깨어있는 동안 단 10분만이라도 아무 생각도, 아무 행동도 안할 수 있는 상황조차 만들기 힘든 필자의 처지를 생각하면서, 어느덧 시간의 노예가 되어버린 무기력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왜일까? 주어진 조건에 순응하기 쉬운 인간본성의 나약함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서 오늘은 음악 이야기나 한번 해볼까 한다.

얼마 전 이 글을 연재하기 시작할 무렵, 바하 음악의 다양성을 이야기하면서 ‘양들의 침묵’의 한 장면을 언급한 적이 있다. 희대의 살인마, 렉터 박사가 자신을 지키던 경찰을 살해한 후 흥분된 감정을 스스로 다스리던 장면 - 바로 바하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쓰인 이 장면에서 필자는 거장들이 가지고 있는 작품들의 특성 중 일부를 언급한 적이 있다.

인간감정의 저변을 정확히 궤뚫고 있는 음들의 조합 속에서 단순히 어느 특정감정의 테두리를 넘어 인간존재의 희노애락 전반을 담고 있었던 사상의 결과물, 바하의 작품 속에서 우리는 서양 음악사의 본격적인 출발을 가능케 했던 시대정신을 읽을 수 있다.

아시는 바와 같이 한니발의 살인직후의 장면에서 쓰였던 작품(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 Prelude)은 실은 연주 시에 너무도 부드럽고 미약했다는 이유로 인해서 작품이 처음 선보일 당시, 의뢰자에 의해 수면용으로 쓰였다고 한다.

이 사실만을 감안해 보더라도 바하의 작품 속에 담겨져 있는 감정 폭의 원대함과 유연함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바로 그 때문에, 이 작품은 다중인격자 한니발의 단면들을 표현하는데 가장 안성맞춤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한니발의 인연은 그 후로도 계속 이어진다.

영화 ‘한니발’과 최근의 개봉작 ‘한니발 라이징’을 주위 깊게 보신 분들이라면 이러한 필자의 주장에 어렵지 않게 공감해주시리라 믿는다. 특히 한니발의 성장과정을 다룬 영화 ‘한니발 라이징’에서 청년 한니발이 골방에서 홀로 이 작품을 음미하는 장면은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장년이 된 한니발이 살해 직후에 흥분된 감정을 이 음악을 통해 내면화 시키며 자신을 절제해가는 모습과 묘한 대비를 이루며, 섬뜩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그런데 이 음악이 따뜻하다고?
혹시 주변에 이들 영화나 음악을 다시 접할 수 있는 분이라면 이 부분을 염두에 두고 감상해보시길 바란다. 어쩌면 우리는 한니발의 성격과 이 음악의 조합을 너무나 자연스럽다는 이유로 인해 그냥 지나치고 있을 런지도 모른다.

한니발의 혼란스러우면서도 극도로 이성적인, 마치 광인과 교양인의 양면을 동시에 소유한 듯한 사상 초유의 이 생명체 앞에서 우리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를 접하게 된다.
영화의 한쪽 구석에서 한니발에 조용히 색깔을 입히고 있는 음악의 존재 - 너무나도 편안하게 인물과 어우러지기에 아무 견제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음악의 존재!  흔히들 말하는 영화와 드라마 속 인물들의 주제음악들이 실은 이미 몇 백년 전에 오페라에서 선보이기 시작했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다음번엔 이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오한샘  / EBS 교양문화팀 PD 


 

1991년 입사해 <예술의 광장> <시네마천국> 등 문화, 공연 예술 프로그램을 주로 연출했다. 그 밖에 대표작으로  <장학퀴즈> <코라아 코리아> 등이 있다. 영화, 음악 그리고 미술 등에 조예가 깊으며 현재 연재하고 있는 영화음악 뿐만 아니라 '영화 속 미술 이야기'도 준비 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