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수상소감 - 보이지 않는 회오리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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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기 독립 PD
지난 2월 28일 제20회 한국PD대상 시상식이 있었다. SBS채널을 통해 생방송으로 방송 되었고 항상 카메라 뒤에서만 있었던 수상자(PD)들의 얼굴이 그 자리에선 카메라 포커스를 받았다. 그렇게 단독 원샷을 받으며 수상소감을 말했다. 그 수상소감이란 것이 이런 시상식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제작에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수상자 중에 참으로 이상한(?), 낯선 수상소감이 있었다. 바로 독립제작 부문에서 KBS <수요기획> ‘들꽃처럼 - 두 여자 이야기’로 작품상을 받은 이승준 PD의 수상 소감이다. 이승준 PD는 수상 소감에서 “독립 PD들은 늘 배고프다”며 “7년간 공들인 작품이 방송에 나가면서 저작권을 더 이상 갖지 않게 됐다. 늘 배고픈 독립 PD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수상소감을 대신했다.

7년 내내 촬영에만 매달리진 않았겠지만, 그 기간 동안 홀로 카메라를 들고 강원도 산골을 오가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엄청난 양의 촬영 원본을 펼쳐 놓고 약 60분 미만의 방송물로 편집하면서 어떤 고통을 감내 했을까? 이런 등등의 생각을 해 본다면 이승준 PD의 수상소감이 나름 이해가 간다. 그런데 나는 수상소감을 듣는 순간 이해라는 관점을 넘어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그 전율이라 함은 지상파 생방송에서 독립제작에 대해 ‘저작권’에 관한 발언을 처음으로 듣고 있다는 것과 같은 독립PD인 입장에서 만감이 교차하는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데 많이 망설였다. 왜냐하면 같은 독립 PD 입장에서 마치 그를 옹호하고 대변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단지 그런 측면뿐이 아니라는 점을 자신하기에 감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승준 PD가 “늘 배고픈 독립PD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는 거라고 생각 한다”라는 말 안에는 단지 수익의 분배, 이권의 분배라는 실리적 문제 해결을 떠난 또 다른 차원의 중요한 의미가 내포해 있다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사실 저작권 문제는 계약의 주체인 ‘갑’과 ‘을’, 즉 방송사와 독립제작사 간의 원천적 관계이기 때문에 PD가 콘텐츠 제작의 선봉에 있다 해도 독립PD는 저작권 문제 해결의 주체가 현실적으로 아니다. 소수의 개인 독립PD를 제외 하고는 대부분 독립제작사의 정규직 또는 비정규직으로 소속되어 방송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립PD의 저작권 문제를 포함한 총체적 문제 해결점을 찾으려면 2중, 3중의 이해관계와 동반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점을 알고 있으면서 왜? 독립PD의 입에서 저작권 문제를 언급한 것일까?

나는 이 시점에서 이승준 PD의 ‘배고픔’이라는 것에 대해 해석하고 싶다. 그 '배고픔'이라는 것이 경제적 부족함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맞다! 독립 PD들이 현재 놓여져 있는 경제적 현실은 대부분 풍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승준 PD가 말한 ‘배고픔’에는 단지 경제적 측면에만 국한 되어 있는 것일까? 아니다! 그 ‘배고픔’에는 경제적 부족함뿐만 아니라 자신의 미래에 대한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길 바라는 절실함이 담겨 있다고 본다. 경제적 어려움 보다는 ‘희망’의 불씨가 꺼져 버림으로써 열정이 식어 버리는 것이 더 두려운 것은 아닐까? 더욱이 이승준 PD는 소속이 없는 순수한 프리랜서 독립PD이기에 더욱 절실할 지도 모른다.

이러한 측면에서 최근 (사)드라마제작사협회에서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를 공정위에 신고하면서 이슈화 되고 있는 방송사와 드라마제작사 간의 저작권 문제와 이승준 PD가 말한 저작권문제는 공통분모가 있으면서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이승준 PD의 발언에는 파이를 놓고 벌이는 공정한 분배의 논리 외에 방송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의 보전과 양성에 대한 논리가 함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승준 PD는 독립 PD의 현실적 상황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의 직업선호도조사에서도 방송전문가는 선호하는 직업이다. 아마 이들은 소위 ‘언론고시’를 통해 진입할 수 있는 대규모 방송사의 일자리를 염두에 두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러한 대규모 방송사가 수용할 수 있는 인력은 극히 제한적이며, 방송 제작에 꿈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방송사 비정규직이나 독립제작사로 유입되고 있다.

콘텐츠와 독립제작사의 활성화를 위해 도입된, 외주제작 의무 편성비율이라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제도가 정착되면서 많은 독립제작사가 탄생 하였고, 소위 독립PD라는 직군(職群)이 형성되어 현존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렇게 유입된 젊은 인력들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물러선다. 방송사 외주환경에 있는 독립PD에 관한 노동시간이나 임금 규모는 조사된 바가 없어서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저임금과 고강도의 노동이 독립PD들의 실상임은 필자인 내가 잘 알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열정을 품은 젊은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의 등대불이 보이지 않아 처음에 품었던 열정이 식어버려 조용히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평균적으로 독립PD의 정년은 30대 후반 아니면 40대 초반이라고들 한다. 나로선 믿을 수 없지만 그것이 현실이라고 열변한다. 이제 막 뭔가를 알고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시기에 그만두어야 하다니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다.

방송환경은 이미 외주제작 의무 편성비율을 넘어서 있고, 방송사도 고용의 유연화 및 비용절감을 위해 예전 보다 비정규직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 과거엔 콘텐츠를 실어 나르는 플랫폼이 지상파 하나였지만, 뉴미디어 시대에 새로운 플랫폼이 계속 등장하면서 지상파 독주의 시대는 이미 막을 내렸다.

즉, 방송환경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결국 콘텐츠 생산의 다양성 면에서도 그렇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측면에서도 지상파와 독립제작사의 건강한 관계 정립과 ‘윈윈(win-win)’ 전략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러한 맥락 하에 저작권 문제가 새로이 대두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큰 목소리 안에 사람의 중요성은 한 단어도 찾아볼 수 없고, 그저 공정한 분배의 논리만 팽배하다.

방송 콘텐츠는 사람이 만든다. 방송 노동시장은 창의적이고 재능있는 젊은 피들이 끊임없이 수혈되어야 하는 곳이다. 이것이 없다면, 우리나라 방송 콘텐츠의 미래는 없다. 우리나라의 방송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말 능력 있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독립 PD들이 많이 양성되어야 할 것이고, 이들의 경력이 40세의 문턱에서 주저앉게 되는 터무니없는 일 또한 없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공정한 분배의 논리와 함께 ‘윈윈(win-win)’하는 한국방송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이 구축되어져야 한다면, 그 안에서 방송 독립PD의 안정적인 직군(職群)의 형성과 방송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제20회 한국PD대상에서 이승준PD의 수상소감, “....늘 배고픈 독립 PD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는 거라고 생각한다”라는 말은 참 낯선 수상소감이면서 보이지 않는 회오리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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