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색, 계' 탕웨이의 수난과 중국 사회의 경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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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PD블로그] 정길화의 조준선 정렬

▲정길화 MBC PD

대만 출신 이안 감독의 영화 <색, 계>에서 파격적인 노출로 단번에 세계적인 스타가 된 탕웨이가 중국에서 퇴출된다는 소식이다. 보도에 따르면 “탕웨이가 영화 <색, 계>에서 보여준 농도 짙은 정사 장면으로 인하여 중국 정부로부터 방송출연금지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 중국내 영화와 TV출연이 금지됐다”는 것이다. 중국 내로 입국이 불허된다는 뉴스도 있다. 이미 중국의 주요 언론매체들은 “방송 출연 금지는 물론 그녀가 출연한 CF까지 중국에서 방송하지 못하게 됐다”고 전했다. 탕웨이가 출연하는 광고는 600만위안(약 8억원)의 모델료를 받고 전속계약을 맺은 화장품 ‘폰즈’라고 한다.

연예 엔터테인먼트계에서는 하룻밤 사이에 스타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다. 29세가 되도록 거의 무명이던 탕웨이 또한 <색, 계>에서의 과감한 노출과 정사 연기 한번 잘 해 그런 반열에 오른 줄 알았더니 일이 고약하게 진행이 되어간다. 한때는 탕웨이의 개런티가 30배 이상 폭등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지난 해 연말에 그녀는 중국 언론이 선정한 2007년을 빛낸 여배우 1위에 뽑히기도 했다. 왜 안 그렇겠는가.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영화의 히로인인데. 리안 감독을 만난 행운과 혼신을 다한 그녀의 노력으로 연예계의 정상에 오르나 했더니 이제 급전직하의 추락이 그녀를 위협하고 있다. 그것도 불과 6개월도 되지 않아서 말이다.

▲ 영화 '색,계' 포스터

영화 <색, 계>는 지난해 11월 개봉 이후 한국은 물론 중국, 홍콩 등지에서 리안 감독의 유명세와 베드 신의 입소문에 힘입어 상당한 흥행을 올렸다. 중국 상영분에서는 정사 등 지나친 노출 장면 30분 상당을 삭제당했다고 한다. 그러자 일부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무삭제본을 보기 위해 때 아닌 홍콩 원정 관광붐이 일어났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 외에도 아크로바트에 가까운(?) 극중 정사신을 실제로 모방하다 부상당한 커플이 속출한다는 웃지 못할 얘기도 보도됐다. 또 중국에서는 일부 장면 삭제 개봉에 대한 법적 소송이 제기되기도 했다. 모 법학대학원 학생이 <색, 계>의 삭제 개봉은 중국인의 영화관람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며 중국 광전총국(SARFT)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한편 온라인상에서는 ‘색, 계 바이러스’가 출현해 중국 컴퓨터를 마비시켰다. 네티즌이 <색, 계> 무삭제판을 보기 위해 불법 다운로드를 시도할 경우 감염되는 ‘<색, 계> 바이러스’에 중국 전역에서 창궐, 수십만 대의 컴퓨터가 감염됐다고 한다. (이상 관련 뉴스 인터넷 검색 발췌)

이들 뉴스 중에는 영화 홍보를 위하여 영화사나 기획사가 자가발전한 기사나 노이즈 마케팅식 기사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거의 광풍에 가까운 <색, 계> 신드롬은 대다수 중국의 관객들에게 이 영화가 항일전쟁기의 악질 특무공작대장과 미인계 스파이 사이에 일어난 실제 사건을 소재로 했다는 것쯤은 별로 고려 대상이 아니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불과 30년 전 홍위병의 선동에 ‘주자파’를 때려잡던(정말 글자 그대로 때려잡던) 중국인들이 한 세대를 지나 이런 영화에 열광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한단 말인가. 그것이 리안 감독의 탁월한 연출 덕분인가. 혹은 주제와 관계없이 에로틱한 노출 장면을 즐기려는 현대 중국인의 관음증 때문인가.

이미 필자는 영화 <색, 계>와 관련,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상상력 사이의 긴장과 한계에 대해 논한 바 있다.(졸고 ‘청산이 끝난 곳에 상상은 시작된다 - 영화 <색, 계>와 ‘76호’ 딩모춘의 기억’) 이 글에서 나는 영화 <색, 계>에서 량차오웨이가 분(扮)한 실존인물이 딩모춘(丁黙邨)이라는 얘기를 듣고, 이전에 필자가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친일경찰 노덕술’편 제작 과정에서 취재한 적이 있는 인물임을 떠올렸다.

그는 바로 1930년대말 중국 상하이에서 친일 왕징웨이 정부의 특무공작대장으로 악명을 떨친 인물이었던 것이다. 특무공작은 지하에서 테러, 암살 등 비밀공작을 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로 치면 노덕술이나 김창룡에 비견할 수 있는 인물인데 그가 영화 <색, 계>에서는 심오한 눈빛 연기를 하는 량차오웨이로 나온 것이다.

▲ 영화 <색, 계> 여주인공 탕웨이
악랄한 비밀공작대장과 그를 노려 접근하는 미인계 스파이의 관계를 리안 감독은 역사적 맥락에서가 아닌 남녀간의 욕망과 경계의 문제로 해석했다. 극도의 불신과 의심 속에서 남녀는 서로를 탐닉하고 학대하다가 결국에는 일탈하고 파멸한다. 량차오웨이와 탕웨이가 벌이는 파격적인 노출과 폭력적인 정사 신은 영화의 구성상 어느 정도 당위성을 확보하고 있다. 설정이 사뭇 그럴듯하다는 얘기다.

필자는 영화의 이 같은 파격이 실존인물 딩모춘이 나중에 체포되어 장개석 정부의 부역자 재판에서 처형되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겠느냐고 해석해 보았다. 현실의 법정에서 이미 단죄받은 인물이기에 미화를 하더라도 큰 부담이 없었을 것이라는 추리를 덧붙였다. 그래서 ‘청산이 끝난 곳에 상상은 시작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중국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다. 중국 정부는 개봉 이후 못내 이 영화가 불편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가 중국 사회에 일으키는 여러 신드롬은 당국이 상정해 두고 있는 일정한 선을 넘어서는 것으로 보았던 것 같다. 표면적으로는 영화에서의 노출 장면이 너무 지나치다는 것이었다. 이를 방치하면 중국 사회의 심리적 통제선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으로 우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색, 계>의 검열은 중국인의 영화관람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며 일개 대학원생이 당국을 상대로 소송까지 해대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현상으로 받아들였을 수 있다. 또 아무리 영화라고는 하지만 실제 사건을 소재로 했다는 내용이 항일전쟁과 이른바 해방전쟁(국공내전)을 거쳐 건국된 중화인민공화국으로서는 역사 해석상 결코 용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보도에 따르면 이번 탕웨이 퇴출과 관련하여 중국 정부는 “영화 <색, 계>가 항일전쟁의 가치를 폄하했으며 친일정부를 수립한 왕징웨이 정부를 찬양했다”고 비판했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 당국은 “<색, 계>는 지나친 성행위, 남녀 성기묘사 등의 행위 엄금에 대한 규정 위반으로 <색, 계>에 대한 일체의 언급을 금지시켰다”고 한다.

▲ 탕웨이
자유주의의 범람이 공권력에 대한 조롱으로 이어지는 사태를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당국의 단호한 의지로 읽힌다. 혹은 대만 출신 감독과 홍콩 배우 그리고 미국의 자본과 기술이 연합해 중국 사회를 교묘하게 포위하고 공격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색, 계>는 중국 내에서 이미 상영금지됐다.

주지하다시피 중국은 사실상 공안국가, 경찰국가에 해당한다. 국가체제의 유지 - 광대한 영토를 포함한 -와 사회의 안정과 통제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그들의 꿈은 CCTV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대국굴기(大國崛起)>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대국굴기’는 ‘세계에 우뚝선 선진강국’이라는 뜻이다. 강대국의 성공법칙에서 교훈을 얻어 이를 벤치마킹해 마침내 그 자리에 우뚝 서겠다는 것이 중국의 속셈이다. <대국굴기>의 12부작 전편에 걸쳐 중국의 선망(羨望)과 경계가 선명히 드러나고 있다. 선망은 곧 앞서 나간 여러 선진 강국의 통일과 팽창에 대한 것이며, 경계는 패퇴한 강국들의 분열과 해체에 대한 것이다.

중국 속담에 배배주흘과가당(杯杯酒吃垮家當) 모모우타습의상(毛毛雨打濕衣裳)이라는 말이 있다. ‘한잔 한잔 조금씩 마시는 술에 집안재산 다 털어먹고 조금씩 내리는 비에 옷이 다 젖는다’는 뜻이다. 우리 속담으로 하면 ‘가랑비에 옷젖는다’이다. 말하자면 만리장성의 붕괴도 벽돌 하나부터 시작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분열과 해체를 우려하는 그들로서는 영화 한 편이 가져다주는 음습하고 퇴폐적인 변화를 좌시하지 못한다. <색, 계>로 인한 중국 사회의 해이와 동요를 용납할 수도 없다. 제비 한 마리가 온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의심많고 협량한 파수꾼의 눈에는 그 한 마리 제비부터 수상쩍다. 도저히 경계를 늦출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다고 오는 봄을 막을 수도 없을텐데 말이다.

영화 <색, 계>와 아리따운 여배우 탕웨이에 가해지는 수난이 안타깝다. 얼핏 보면 한국 연예인 중에서는 샤크라 출신 연기자 정려원을 닮은 것도 같고, 왕년의 <전원일기>에서 며느리로 나온 탤런트 박순천을 닮은 것도 같은 탕웨이. 그녀의 시련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뉴스를 보니 홍콩에서 곧 열리는 아시안필름어워드에서 <밀양>의 전도연과 함께 유력 후보자였었는데 돌연 수상 후보자의 명단에서도 빠졌다는 최근 소식이다. 이제 다시 화면에서 탕웨이를 못 볼 것인가. 그녀에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검열은 그 사회의 자신감 부족을 반영한다’는 칼릴 지브란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추신> 필자가 여기까지 썼을 때 티베트 소식이 뉴스에 나왔다. 티베트 시위에 관한 내용을 이 글에 포함시키려다 사태의 추이를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탕웨이에서 티베트까지.... 중국은 지금 바야흐로 시험에 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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