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아닌 ‘물류’의 관점에서 본 대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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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제작기] ‘KBS스페셜-대운하, 물류로 보다’

독일 출장을 일주일 앞둔 지난 2월 중순, 코디로부터 급한 메일이 왔다. MD운하(라인강의 지류인 마인강과 도나우강을 연결하는 171Km의 인공운하)를 관할하는 뉘른베르크 수로국에서 촬영협조를 못하겠단 전갈이다. 큰일이다. 어쨌거나 우리나라에서 대운하 논란의 시작이 되었던 MD운하의 촬영이 불가능 할 지도 모를 일이다. 요는 이랬다.

너무나 많이 밀려드는 한국 취재진들 때문에 일을 못할 지경이 된 수로국 공무원들이 대책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 대책이 바로 한국취재진 촬영협조 거부. 앞으로 두 달간은 취재진을 포함한 한국으로 부터의 어떤 방문도 불허한단 내용이었다. 코디가 수로국으로부터 연락을 받을 당시에도 방송, 신문, 관련 기관에서 나온 방문팀이 20개를 넘는단 귀띔이었다.

▲ ‘KBS스페셜-대운하, 물류로 보다’의 한 장면. ⓒ KBS


뉘른베르크에서 날아온 취재거부 메세지

독일 촬영은 항공촬영으로 시작되었다. 하늘에서 바라본 MD운하! 처음과 끝을 잡고 죽-그어놓은 듯 반듯하게 정리된 물길이 한 눈에 들어왔다. 잘 정비된 주변 마을까지... 하지만 그 곳엔 물이 있으면 으레 있게 마련인 수초도 주변 습지도 보이지 않았다. 한마디로 콘크리트 수조에 물을 채워놓은 모습.

〈환경스페셜〉에 몸을 담았던 2년의 짬밥 덕분인지, 아, 저런 곳에서 수생태계를 논한다는 건 애초 아무 의미가 없겠구나라는 생각만이 내 머리를 맴돌 뿐. 주변 땅과의 경계는 모두가 콘크리트, 코디의 한마디가 다시 머리를 때렸다. “이런 운하의 물은 수질 검사도 하지 않아요. 어디에도 쓰지 않을 물이거든요.” 생활용수는 당연하고 산업용수로도 이용되지 않는단다.

“이런 운하의 물은 수질검사도 하지 않아요... 어디에도 쓰지 않는 물이죠”

그리고 이어진 10여일 독일에서의 촬영. MD운하 구간에서 최고 항만 도시로 알려진 뉘른베르크. 뉘른베르크 항만 대표와 인터뷰를 위해 찾은 그 곳에서 우연히 MD운하 구간을 포함한 주변 항만 대표 예닐곱이 모인 회의를 촬영할 수 있는 행운(?)을 잡았다. 그리고... 그들이 나눈 대화내용을 코디로부터 전해들은 우린 우울했다. 슬펐다. “한국이란 나라...반도국가지...그 나라에서 운하를 계획한대. 정말? 설마... 잘 될까? 멍청한...” 촬영을 끝내고 나오는 우리 뒤로 들리는 그들의 왁자지껄 웃음소리는 방송을 끝낸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물류’ 포커싱한 대운하 기획

대운하 계획은 대충 이렇다. 물길을 새로 만들면 그 물길을 따라 배가 다니고, 공장이 들어서고, 잘되면 산업단지가 들어서고. 이렇게 새롭게 발생한 공장에서 쏟아내는 물건들을 바지선을 이용해 수송하고, 이는 결국 고속도로로 집중되고 있는 현재의 물동량을 분산시키고 트럭의 운행을 줄여 이산화탄소의 배출도 감소시킬 수 있다. 그리고 더불어 물길을 따라 관광도 하고, 운하에 저장된 물은 가뭄해소와 홍수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운하 건설과정에서 현재의 하천구조까지 개조할 수 있다. 이 모든 논의의 시작은 운하의 경제성, 그것도 바로 물류다. 물류가 없으면 배가 다닐 이유가 없고, 그 곳엔 공장도 없을 것이고 일자리는 물론이고 지역개발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탄생한 ‘KBS스페셜-대운하, 물류로 보다.’

우리가 돌아본 MD운하엔 컨테이너 화물선이 하나도 없었다. 몇몇 벌크화물선 뿐. 사실을 확인한 결과 MD운하의 규모나 이 구간의 물동량 등을 볼 때 컨테이너 화물선이 못 다닐 뿐 아니라 다닐 필요도 없단다. MD운하를 오가는 화물은 EU에 새로이 편입된 동구권 국가로 부터의 벌크화물(석탄, 폐철, 곡물 등)이 주를 이룬다. 컨테이너를 실은 화물선은 80%이상이 라인강에서만 오가고 있었다. 컨테이너 화물선이 다니게 하기 위해선 수심도 그 만큼 더 깊어야하고, 운하의 폭도 그 만큼 더 넓어야 하고, 교량들의 높이과 폭도 조정되어야 하고... 자연적으로 기본 폭과 깊이를 가진 자연하천, 라인강은 투자대비 경제성이 나올 수 있었지만 인공운하 MD운하는 아니었다. 우리는 컨테이너를 실은 화물선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찾아간 라인강변의 어느 도시.

▲ ‘KBS스페셜-대운하, 물류로 보다’ 의 한 장면 ⓒ KBS


컨테이너 화물선이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독일의 운하

컨테이너 화물선을 촬영하기 위해 대기한 지 두 시간. 우리는 독일에서 처음으로 컨테이너 화물선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시기적으로 차이가 날 수 있단 생각을 하긴 했지만 너무 한단 생각이 들었다. 운하의 나라 독일에서도 컨테이너 화물선 찾아보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EU 행정부의 에너지-교통국에서 확인한 사실에 따르면 유럽에서도 운하이용률이 그리 높지 않았다. 어떤 통계는 운하이용률이 감소하고 있기까지 했다. MD운하에서 만난 바지선 선장 왈 “도로에 컨테이너 트럭들이 그렇게 꽉꽉 차 있는데, 운하에는 왜 이렇게 배가 없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운하에서 배 찾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어요. 이 배도 돌아가는 1200Km를 빈 배로 가야해요.” 하지만 우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대운하를 실제 이용할 수요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취재기간 내내 머리를 맴돌고 있었던 생각. “잠깐만 들여다봐도 대운하는 답이 아니란 생각이 드는데, 왜 추진하는 쪽에선 모르고 있는걸까? 다른 이유라도?” 그 다른 이유는 다른 프로그램을 통해 알 수 있으면 좋겠는데... 프로그램을 끝내고 앉은 지금 이런 생각을 해본다. 정말 대운하 논의를 계속할 요량이라면 지금껏 해온 정치권, 건설/토목관계자, 지자체, 그리고 몇몇 교수들(대운하 공급측)의 주장뿐 아니라 그 운하를 실제 이용해야하는 수요측(물류회사, 화주, 선사, 터미널 운용업체 등)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때다. 토론하고 또다시 토론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프로그램을 같이 하면서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준 카메라감독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그가 처음 신관커피샾에서 만나 얘기했던 말로 글을 맺을까한다.
“형, 우리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프로그램을 하자구요.”
“재광아! 우리가 부끄럽진 않게 한 거 맞지?”

※ 이 기사는 KBS PD협회보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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