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들의 걸쭉한 입담,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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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리뷰]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세바퀴’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세바퀴’(연출 박현석)는 ‘세상을 바꾸는 퀴즈’의 준말이다. “주부의 파워로 세상을 바꾸자!”가 기획의도이고, 콘셉트는 ‘고품격 퀴즈쇼’다. 낯간지러울 만큼 거창한 제목에 기획의도. 그런데 볼수록 만만찮은 힘이 느껴진다. 재미도 물론 있다.

‘세바퀴’는 ‘스타 주부’들이 나와 벌이는 토크 프로그램이자 퀴즈 프로그램이다. 호빵과 찐빵, 다방과 카페처럼 두 단어의 차이를 설명하는 ‘생활 밀착형 퀴즈’가 프로그램의 한 축이라면 다른 한 축은 이경실, 양희은, 임예진 등 10년, 20년차 이상의 주부들이 풀어놓는 걸쭉한 입담이 차지한다.

그래서 ‘세바퀴’는 늦은 점심, 아파트 단지 주변 식당이나 찜질방, 백화점 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줌마 무리’들의 수다와 닮았다. 솔직하고, 대담하며, 소란스럽다.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 이른바 ‘제3의 성’으로서 ‘아줌마’에 대해 갖는 고정관념으로부터 파생된 이미지라 할지라도 말이다.

▲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세바퀴' ⓒMBC
‘세바퀴’는 너무 솔직하고 대담해서 독할 정도다. 전원주는 천하장사 이만기의 장딴지 ‘하트근육’을 천연덕스럽게 쓰다듬고, 그룹 신화 출신의 전진이 출연하자 여성 출연자들을 한꺼번에 달려들어 그의 몸을 만진다. 이경실은 자신의 무릎을 가리키며 전진에게 “앉아”라고 한다.

지상파 방송에서 남성 출연자가 여성 출연자에게 같은 행위를 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겠지만, 모순적이게도 여성 출연자들의 행위는 한바탕 폭소로 넘긴다. 고백하자면 욕구를 거침없이 표현하는 그녀들의 모습에 통쾌함도 느낀다.

발언 수위는 물론 높다. 설운도가 밤에 아이가 울면 젖꼭지를 물렸다고 하자 여성 출연자들은 “누구 젖꼭지냐”며 따지고, 진행자인 박미선이 가슴 수술을 생각했다고 하자 오영실은 “허벅지 지방을 빼 가슴에 넣으라”고 구체적으로 조언하며, 한성주는 뽀뽀와 키스를 “입만 쪽”과 “혀가 쏙”의 차이로 설명한다.

이경실은 마흔일곱살의 ‘총각’ 김병세를 향해 “멀쩡히 생겨선 여태 동거도 안 해봤냐”며 “이런 병~세”라고 놀려댄다. 여느 프로그램이라면 야하거나 선정적이란 이유로 제지당할만한 수준이지만, 발언을 쏟아내는 이들은 태연하고, 진행자들이 오히려 민망해 하며 고개를 들지 못한다. ‘독설가’ 김구라가 끼어들 틈을 찾지 못하고, 솔직한 입담을 자랑해 온 신지마저 주눅 든 채 앉아 있을 정도다.

‘두 단어 퀴즈’, ‘드라마 퀴즈’ 등의 사이를 수다가 채우는 가운데 방송 도중 진행자가 불쑥 실시하는 ‘배우자에게 문자 보내기’는 화제가 되는 코너 중 하나다. 출연자들이 자신의 남편 혹은 아내에게 같은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답변을 확인하는 식이다. “사랑해”란 메시지에 김자옥의 남편 오승근이 “내가 더 많이 사랑해”라고 답하면 탄성이, 박미선의 남편 이봉원이 “너 누구냐?”라고 답변을 보내면 폭소가 터진다.

‘세바퀴’는 중년의 스타들이 아내 혹은 남편으로서의 자아를 드러내는 공간이다. 그래서 아마도 시청자들 중 다수를 차지할 아내 혹은 남편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곤 한다. “결혼생활이 행복하냐”는 물음에 대한 “또 할 순 없잖아요”라는 이경실의 답변을 마냥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아직까진 KBS의 ‘1박2일’과 SBS의 ‘체인지’ 사이에서 고전하고 있지만, ‘세바퀴’는 중년의 시청자들이 편안하게 시청할만한 프로그램으로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주부의 힘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거창한 계획을 이룰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주부’ 혹은 ‘아줌마’에 덧씌워진 억울한 이미지들을 벗겨내는 일만큼은 확실히 성과를 거둬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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