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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리뷰]MBC 특별기획 〈에덴의 동쪽〉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세기 3장 24절)

최초의 인류였던 아담과 하와는 뱀의 유혹에 넘어간 ‘원죄’로 인해 에덴동산의 동쪽으로 쫓겨난다. 말하자면 이곳은 지옥이다. 지옥과도 같은 곳에서 아담과 하와는 동침을 하고, 가인과 아벨을 낳는다. 그리고 두 형제 사이에서 인류 최초의 살인, 즉 형인 가인이 아벨을 시기하여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가인은 역시 에덴동산의 동쪽으로 쫓겨난다. 부모(아담과 하와)의 원죄로 인한 형제(가인과 아벨)의 숙명이다.

다시 말하면, 에덴의 동쪽은 부모에서 자식으로 이어지는 욕망의 덫과 사랑, 미움 따위의 본능적 감정들이 살아 꿈틀대는 공간이다. 그래서 용서와 구원이 필요한 곳이기도 하다. 최근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MBC 월화드라마 〈에덴의 동쪽〉(극본 나연숙, 연출 김진만·최병길)도 바로 그런 의미를 상징한다. 헤어 나올 수 없는 원죄, 그럼에도 진정한 사랑이 영혼을 구원한다는 성경적 메시지를 함의하는 셈이다.

▲ MBC 창사 47주년 특별기획 드라마 '에덴의 동쪽' ⓒMBC
〈에덴의 동쪽〉의 줄거리는 아주 단순하다. 엇갈린 운명에 놓인 두 형제가 아버지의 복수를 꿈꾼다는 내용이다. 강원도 태백 탄광촌에서 일하던 이기철(이종원)은 신태환(조민기)의 음모로 억울하게 죽는다. 기철의 아들 동철(송승헌)은 어둠의 세계에 발을 들여 아버지의 복수를 꿈꾸고, 동욱(연정훈)은 서울대 법대에 들어가 검사가 되는 것으로 복수를 다짐한다. 그런데 동욱은 사실 태환의 아들로, 신생아실에서 명훈(박해진)과 뒤바뀐 운명이다. 결국 그들이 꿈꾸는 복수는 자신들의 엇갈린 운명처럼 뒤엉키고 만다.

형제의 뒤바뀐 운명, 복수, 성공신화와 청춘의 사랑.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인상을 풍긴다. 한두 가지 조합으로 보자면 나연숙 작가의 〈야망의 세월〉로부터 질곡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모래시계〉 등과도 흡사하다는 지적이다.(혜린―고현정, 이다해―이란 여주인공의 이름도 공교롭게도 같다) 그런데 최소한 〈모래시계〉부터 10년 이상이 훌쩍 지났음에도, ‘시대극’이란 이름의 〈에덴의 동쪽〉은 여전히 ‘통하고’ 있다. ‘미드’, ‘일드’로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졌다는데,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은 이를 무색하게 한다.

〈에덴의 동쪽〉과 같은 드라마가 지금도 ‘통한다’는 사실이 언뜻 의아하지만, 이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에덴의 동쪽’은 인간의 모든 감정과 욕망이 태동한 원초적인 공간이며, 그곳에서 발생한 가인과 아벨의 원망·살인은 이후 인류의 모든 비극적 이야기를 낳는 시초다. 따라서 〈에덴의 동쪽〉이야말로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과 본능을 얘기하는 것이며, 이를 20~30대의 ‘핫’한 배우들이 연기하고, 40~50대의 중견 연기자들이 단단하게 받쳐주는데, 시청률이 안 나온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셈이다.

하지만 〈에덴의 동쪽〉을 〈모래시계〉와 비교하는 것은 조금 곤란하다. 〈모래시계〉가 질곡의 현대사를 살았던 인물들의 삶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면, 〈에덴의 동쪽〉은 70~80년대를 이해하는 정형화된 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는 인상이다.

탄광촌의 흥망성쇠, 성공을 향한 야망, 권언유착과 같은 시대적 상황들을 녹여내고 있지만, 역시 ‘시대극’이란 장르에서 반복적으로 차용되는 ‘배경’으로서의 의미 이상으로 보이진 않는다. 이에 비하면 “어떤 운명이 우릴 갈라놓아도 앞으로 절대 떨어질 리 없어”와 같은 민망한 문어체 투의 대사들이나, 논란이 되었던 신파적 설정 등은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 '에덴의 동쪽'에서 러브라인으로 주목받고 있는 영란(이연희, 왼쪽)과 동철(송승헌) ⓒMBC
어찌됐든, 〈에덴의 동쪽〉은 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폭넓은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분명한 건 2008년 현재 방송되는 드라마란 점이다. 우리는 만만하게 보았던 통속극도 진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태양의 여자〉를 통해 확인했다. 시대극 역시 얼마든지 변화하고 진화할 수 있다. 70~80년대를 다룬다고 해서 드라마 자체가 시대적 배경에 취해 있을 필요는 없다.

고민하지 않은 드라마는 쉽고 재미는 있겠지만, 결코 범작 수준을 뛰어넘긴 어렵다. 〈야망의 세월〉로부터 20년. 나연숙 작가에게 치열한 고민을 주문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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