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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25일, 영국 방송심의정책기관인 오프콤(OFCOM)이 향후 공공서비스방송 정책에 대한 두 번째 보고서를 발표하자마자 일부 언론매체들과 시민단체들의 우려가 빗발치고 있다. 오프콤이 지역뉴스를 줄이는 상업방송 ITV의 새로운 개편정책을 편들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오프콤은 공공서비스방송의 의무를 모든 공중파 방송이 지키도록 해왔다. 모두에게 똑같은 무게의 공공서비스방송 의무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상업방송이라 해도 오프콤이 규정한 이 의무를 피해갈 수는 없다. 예를 들면, ITV나 Five의 경우, 상업방송임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분량의 지역뉴스를 제작해야 한다든지, 배정된 자체 프로그램 분량을 채워야 한다든지, 어떤 장르의 프로그램을 꼭 만들어야 한다는 등의 의무가 있다.

▲ 영국 지상파 방송사 ITV 홈페이지.

이러한 공공서비스방송에 대한 의무는 영국 공중파 방송의 질을 어느 정도 지켜왔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 의무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과대한 제작비용과 낮은 수익성은 그 동안 각 방송사 ? 특히 정부보조금을 받지 않는 상업방송사 ? 에 큰 짐으로 작용해 왔다. 2012년 디지털TV시대와 더불어 더욱더 치열한 경쟁이 시작될 이 미디어 환경에서 공공서비스방송을 지금 이대로 지키도록 강요할 수 있을까?

이번 오프콤의 보고서를 통해 ITV는 그간 17개의 지역을 구분해 제작했던 지역뉴스를 절반 정도로 통합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또한 뉴스가 아닌 다른 장르의 지역 프로그램 의무 방영시간도 줄었고, 전체 프로그램의 50%를 런던 이외 지역에서 제작해야 한다는 의무도 35%로 줄어들었다. 그 동안 ITV가 끈질기게 요구해온 사항들이 이번 오프콤 보고서를 통해 반영되면서 ITV는 지역적으로 분포되어있던 힘을 중심부로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사실 이 같은 결정은 한두 달 사이에 내려진 결론은 아닐 것이다. ITV와 오프콤은 수년간 치열한 말싸움을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프콤은 공공서비스방송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ITV를 간섭해왔고 최근에는 BSkyB ? 루퍼트 머독의 뉴스코퍼레이션이 지분의 3분의 1 이상을 가지고 있는 영국의 디지털 텔레비전 서비스 - 가 가진 ITV 주식지분을 일정부분 처분하도록 제재를 가한 적도 있다.

ITV 디렉터인 피터핀참은 우스갯소리처럼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오프콤과 우리는 서로 다른 언어를 쓴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것처럼 느낄 정도로 갈등이 심한 두 주체가 어찌됐든 대화와 타협을 이끌어 내고 있다. 비단 ITV뿐 아니라, 채널4도 이번 보고서를 통해 정부 보조금을 더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반면 BBC는 홀로 독점해오던 수신료의 일부를 다른 공영방송사에 뺏길 수 있게 됐다. 세부적인 사항들로 들어가면 더욱 복잡해지겠지만 어쨌든 언론을 통해 유포된 내용들을 보면 결론은 한가지다. 디지털 시대에서 살아남기!

지금 영국의 각 방송사 리더들은 디지털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큰 그림들을 제시하고 대화와 타협을 진행하고 있다. 수신료를 등에 업고 우쭐대던 BBC는 그 특권의식을 버리고 비단 영국시장이 아닌 세계시장을 넘보며 디지털 경쟁시장에 뛰어들겠다고 한다. 채널4는 질 높은 논픽션 프로그램들을 통해 공영방송으로서의 브랜드 이미지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장담하고 있다. ITV에서는 10년 후에는 지역뉴스뿐 아니라 뉴스라는 장르자체가 ITV에서 사라질 거라는 농담 아닌 농담이 들린다.

▲ 영국=배선경 통신원/ LSE(런던정경대) 문화사회학 석사

디지털TV시대의 도래는 영국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피해갈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앞으로 4년 남았다. 수년간 고민을 쌓아온, 큰 비전을 가지고 긴 호흡으로 말할 수 있는, 지금 우리 거실에 있는 텔레비전을 버려야 하나? 하는 아주 보잘것없는 질문에서부터 디지털스타가 아날로그스타를 죽일까? 하는 정답 없는 질문까지 현명하게 대답해줄, 그런 덩치 큰 리더가 절실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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