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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공태희 OBS 〈문화전쟁〉 PD

▲ 방송인 김미화씨 ⓒMBC
프로그램 제작진이 출연자에게 진심으로 감동받는 일은 흔치 않다. 게다가 상대가 정상의 스타인데다, 나이마저 지긋해 선생님 호칭을 듣는다면 더욱 그렇다. 선생님 급의 스타 출연자를 상대하는 제작진이라면 몸가짐도 자연스레 조신해 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견스타가 살인적인 스케줄을 쪼개어 출연을 결정한 마음에는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감사하는 마음과 감동받는 마음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그 생각은 데뷔 25년차의 선생님급 스타와 같이 일하는 몇 주 동안 약간의 시차를 두고 사라졌다.   

닮은 듯 다른 두 가지 정서를 선사한 사람은 김미화 선생님. 84년 공채 개그우먼으로 방송을 시작, 사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정상을 지키고 있는 스타, 김미화 씨다. 그녀는 방송사상 최초로 지상파 CEO가 진행을 맡고 있는 프로그램, OBS 생방송 〈주철환과 김미화의 문화전쟁〉의 안방마님이다.

사실 선생님 호칭을 듣는 중견 스타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었다.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대처 할 수 있는 베테랑. 열정 가득한 치열함 보다는 세월과 경륜이 보장하는 여유로움. 혹은 꼬장꼬장하고 통제불능의 높은 산. 그것도 아니면 어린아이처럼 막무가내의 모습. 중견스타를 존경하고 그 앞에서 차림새를 단정히 하는 것은 마땅할지언정, 그들에게 감동을 받는 일은 다른 성질의 것이라 생각했다. 감동이란 사소한 공간에서 휘발되는 어떤 이의 열정을 자연스레 공감하는 정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미화씨와 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어느 날, 생방송을 끝내고 제작진 회의가 있었다. 스튜디오를 정리하고 돌아온 한 스태프가 들고 온 큐카드 한 뭉치가 문득 눈에 띄었다. 대본을 읽기 편하게 단락별로 정리한 큐카드에는 누군가의 육필이 깨알처럼 빼곡했다. 형광펜으로 그려진 네모는 메인 MC 김미화 씨의 대사 부분. 본능적 호기심 발동.

거의 모든 큐카드에 제작진이 그날의 게스트와 아이템에 대해 제공하는 대본 정보 외에 각종 정보로 가득했다. 제작진조차 지나치게 상세해 오히려 진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각했을 정도로 세세한 정보는 물론, 본인의 지난 경험담까지 예로 들어가며 적혀있었다. 그녀는 매주 두 시간이나 되는 생방송준비를 사전에 바쁜 시간을 쪼개어 모든 게스트와 아이템에 대해 본인 스스로 치열한 준비를 해 왔던 것이다. (그녀는 매니저 없이 일하고 있다.)

▲ 공태희 OBS PD
생방송 중 기회가 올 수도 그렇지 않을지도 모를 자신만이 던질 수 있는 결정적 한마디를 위해.

신인 혹은 적당히 연차가 되는 출연자의 손에서 자신이 직접 작성한 육필로 빼곡한 큐카드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신인이 그 정도의 열정만 보여주어도 제작진은 마땅히 감격하고 또 감동한다. 하물며 데뷔 25년차의 베테랑에게서 그 정도의 디테일이라니!

순악질 여사로 국민 코미디언 반열에 올랐던 개그우먼이 시사프로그램의 전문 진행자에 도전, 세간을 통념을 깬 통렬한 변신에 성공한 비결이 어렴풋이 짐작된다. 정점에 올라서고도 늘 한결 같은 노력과 열정으로 주위를 끊임없이 감동시켰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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