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제방의 미국 대선과 표현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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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식 PD의 미국리포트(1)]

지금 미국 최고의 화제는 대선입니다. 11월4일이면 사실상의 대선을 치르게 됩니다. 물론 대통령뿐만 아니라, 상원의원, 하원의원, 주지사, 주상원의원, 주 하원의원, 각종 법안 등 한꺼번에 찍어야 할 대상과 현안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이번 대선은 사상 최악의 경제 위기에서 ‘잃어버린 8년’을 심판한다는 점과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이라는 정치 경제적, 인종적 문제까지 겹쳐 국민들이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가장 활발한 것은 차량을 통한 의사표현입니다. 차가 없으면 생활이 불가능한 미국 특성상 차량은 그전부터 정치적 의사표현의 도구로 활용되어 왔습니다. 올 해 메릴랜드 주의 어느 공무원이 자신의 차량에 부착한 스티커에는 ‘먹일 능력이 없다면, 낳지도 마라(Can't Feed 'Em? Don't Breed 'Em)’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다녀서 물의를 빚은 적도 있습니다.

인상적인 차량을 통한 정치적 의사표현

▲ 차가 없으면 생활이 불가능한 미국 특성상 차량은 그전부터 정치적 의사표현의 도구로 활용되어 왔다. ⓒ 박건식 PD
정치적으로는 ‘부시, 국가적 재앙, 세계적 치욕(Bush, National Disaster, Global Disgrace)’ 등과 같이 부시 정권을 비판하는 스티커가 많습니다.
 
이곳 미주리대 주차장 차량 뒷 범퍼 역시 온갖 정치적 구호로 뒤덮여 있습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들의 이름을 붙인 간단한 스티커에서부터 자신의 정견을 자세하게 담은 것까지 다양합니다. 역시 가장 눈에 많이 띄는 것은 버락 오바마와 조 바이든 후보의 스티커입니다. 차량 스티커만 보면 오바마 후보의 당선이 확실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거리는 오바마 스티커 일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가 본 오바마 지지 스티커 중에 인상적이었던 것은 ‘클린턴은 섹스를 속였고, 부시는 이라크를 속였다(Clionton deceived sex, Bush deceived  Iraq)’라는 스티커와 ‘나는 종교적 좌파(Religious Leftist)’라는 것이었습니다.

공화당 지지 스티커 중에서는 ‘가장 추운 주, 가장 뜨거운 주지사(Coldest State, Hottest Governor)’라는 사라 페일린 부통령 후보 지지 문구가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주택 앞에서도 후보자의 이름이 적힌 팻말들이 곳곳에 있는데, 대통령 후보에서부터 주지사, 상원, 하원 후보 등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집은 10개 가까이 팻말이 있는 곳도 있습니다. 때문에 이곳 미주리 신문은 이러한 팻말들을 일일이 조사하여 온라인망에 실어서 독자들에게 서비스하기도 합니다.

또 하나는 티셔츠와 버튼(Button)입니다. 미국 국민들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위해 이들 물품들을 아낌없이 구매합니다. 대선 후보들은 물품 판촉 사이트를 열어놓고 있는데, 가장 활발한 거래가 이뤄지는 곳은 아무래도 오바마의 물건판촉 사이트(store.barackobama.com)입니다. 후보들은 이 사이트를 통해 정치자금도 확보하고 지지도 얻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리고 있습니다.

▲ ⓒ 박건식 PD
그런데, 이러한 정치적 자유에 제약을 가하는 곳들이 생겼습니다. 쟁점은 교수나 교사가 교실에 지지후보를 밝히는 티셔츠를 입거나 버튼을 착용하고 강의를 할 수 있냐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뉴욕 같은 곳은 공립학교 교사들의 경우, 아예 이를 금지한다고 밝히고 있고, 일부 대학들도 이를 금지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어떤 대학들은 더 나아가 교수나 교직원의 차량이 정치적 입장을 밝히는 스티커를 부착한 경우, 교내 주차장에 주차하는 것을 금지해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학교측의 논리는 교직원의 경우, 주차비를 학교가 지원하고 있으므로, 교내 주차장의 경우는 학교 방침을 따르라는 것인데, 지나친 표현의 자유 제약이라며 반발을 사고 있는 겁니다.

여전히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는 미국

이러한 작은 소동들이 있긴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어떤 때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대선이 코앞에 와있지만, 모든 언론기관들은 자유롭게 후보 지지율을 공포하고 있습니다. 여론조사결과로 시청자가 영향을 받는 것보다는 공개를 함으로써 얻는 것이 많다는 뜻이겠죠. 마찬가지로 출구조사도 자유롭게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동부지역의 투표는 이미 종료되어도, 서부나 하와이 등은 투표가 진행 중인 경우가 많습니다. 즉, 서부나 알래스카, 하와이 주민들은 동부 사람들이 투표한 결과를 보면서 투표를 하는 꼴이 되어서 공정성에 이의를 제기할 법한 데, 그렇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다시 말해, 그 동안의 언론학 연구 결과는 실제로 유권자들이 미디어에 그렇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미 지지후보를 마음속에 정하고 있는 경우, 미디어는 그 입장을 강화시켜줄 뿐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이번에도 대선토론을 보고 지지후보를 바꾼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 ⓒ 박건식 PD
또한 후보자들의 인터뷰나 출연도 후보자와 언론사 마음대로입니다. 오바마가 한 번 출연했으니, 다음엔 메케인이 출연해야 한다는 법칙이 없습니다. 또 이에 대해 항의하는 후보자나 시청자도 없습니다. 또한 대선토론에서 갑자기 부각된 ‘배관공 조’가 폭스(FOX) TV에서 또다른 대선후보였던 허커비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나와도 아무도 이의 제기를 하지 않습니다. 수정헌법 1조인 표현의 자유가 아직은 광범위하게 지켜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에도 자유롭게 출연하는 후보자들

가장 부러운 것은 선거기간에 관계없이 후보자들이 예능 프로그램에도 자유롭게 출연한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대선 후보를 흉내내면서 비꼬는 코미디언들의 인기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습니다. 사라 페일린을 흉내내는 티나 페이(Tina Fey)는 국민적인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 박건식 MBC PD
덩달아 예능프로그램도 전성기를 맞고 있습니다. 최근엔 사라 페일린이 출연해 화제를 모은 NBC의 ‘Saturday Night Lve’는 14년만에 최고 시청률을 경신해 또 한번 화제를 낳았습니다.

우리는 예능은 고사하고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선거관련 아이템을 다룰 수 있나 없나를 가지고 공방을 벌어야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다음 대선에서는 우리도 ‘황금어장’ ’웃찾사’ ’상상플러스’에서 정치인을 불러놓고 신랄하게 질문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언론 자유의 척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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