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미디어 범람에 설자리 없는 로컬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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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방송통신융합시대의 지역방송 ③]

지역방송의 위기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케이블, 위성방송, DMB 그리고 IPTV 등 약 5년에 한번 꼴로 출현하는 뉴미디어들은 방송권역의 개념을 무너뜨리고 있다. 지역문화를 책임지는 지역방송의 설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본지는 뉴미디어시대 지역방송이 생존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이고 앞으로 어떠한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지역방송 현업인들의 글을 받아 연재한다.

〈연재순서〉

1.총론 - 지역방송의 개념과 역할

2. 민영 미디어렙 설립에 따른 영향

3. IPTV재송신, 독인가 약인가

4. 종합편성 PP와 지역방송

5. 기로에 선 지역방송 어떻게 할 것인가

▲ KT의 IPTV서비스 메가TV ⓒKT

고향 떠나 서울 온지 5개월이 지나 대구에 계신 장모님이 상경하셨다. 평소 자식 사랑이 유난하신데다 외손자 두 놈에 대한 정이 더욱 애틋하셨던바 조손 상봉의 감동은 자못 진하였다. 큰놈 작은놈 가릴 것 없이 넘치는 애정으로 물고 빨기를 사흘째, 근자에 가입당한(?) 케이블TV의 만화콘텐츠에 몰입돼 20인치 작은 TV속으로 막 들어가려는 두 녀석을 보시고는 장모님 한마디 하신다.

장모님 : “야이야아~ 우리 강생이들아~ 테레비 너무 마이 보는 거 아이가? 쫌 고마 봐래이~”
세돌 지난 둘째 : “핫무니(할머니), 이거 떼데비 아니야..께이(케이블TV를 말하는 것으로 추정)야”
장모님 : “....그르니까~ 테레비 쫌 고마 보라고오~” 두 녀석 : “.......”

이미 상당한 구력의 ‘테레비’ 마니아이신 장모님도 잠시 헛갈려 하신다. 바로 그렇다. 종류가 너무 많아 이것저것 뒤섞여서 우리 눈에도 위성, 케이블, DMB 등등 구분 없이 그냥 다 ‘테리비’다.

그리고 우리는 그 ‘테리비’를 확실히 너무 많이 보고 있다. 어떤 불가해한 힘에 의해 영문도 모른 채 ‘테리비’에 점점 더 빠져가는 형국이다.

IT강국 미디어빅뱅시대의 블루오션, 뉴미디어의 총아라는 다소 긴 수식어가 붙는 IPTV가 곧 개국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예의 그 불가해한 힘이 안 그래도 헛갈리는 테레비통 속에 다른 테레비를 또 던져 주신다. 9조원에 이르는 엄청난 생산유발 효과와 더불어 이 강퍅한 시기에 4만 여명의 고용창출이 기다린다는 메시아의 전언도 함께 들어온다.

언뜻 만병통치약 선전이 떠오른다. 그야말로 IPTV로 인해 행복의 나라가 진짜로 올 것만 같은 스펙터클한 홍보 전략이긴 하지만 그전 ‘테리비’들이 세상에 던져질 때 마다 한 두 번씩은 들어봤던 레퍼토리들이라서 썩 신선하진 못하다.

빛과 그리고 그림자. 이른바 중앙지상파3사 입장에서는 IPTV 출범, 지상파재송신은 곧 “빛”이 될 수 있다. 그러나 IPTV라는 장미빛 액션플랜의 이면에는 지역방송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최악이긴 하나, 가능한 시나리오를 짜보자. 지상파 실시간 재송신은 IPTV가입자를 확대하는 결정적 기폭제로 작용한다.

동시에 결합서비스로 제공되는 VOD, VOD포털은 권역 제한 없이 전국으로 뿌려진다. 이를 통해 끊임없이 무권역으로 방송되는 드라마, 오락프로그램의 ‘쓰나미’에 지역성, 공익성을 골고루 함유한 상대적으로 재미없는 지역프로그램은 흔적도 없이 쓸려나간다. 금과옥조로 삼던 방송권역과 네트워크의 사실상 해체를 목도한다. 이쯤 되면 IPTV의 출범은 적어도 지역방송의 입장에서는 독(毒)이다. 그야말로 맹독(猛毒)이다.

하지만 독(毒)도 약(藥)이다. 독을 정성과 신념을 다하여 법제(法製)하면 천하의 명약이 되는 이치이다. 혈관이 문제였다. 피가 힘차게 돌아야 할 혈관에 장막이 드리워지고 창은 굳게 닫혀있다. 가까운 미래를 불온하게 상상할 것도 없이 지역방송은 현재로도 이미 빳빳하게 말라 들어가 심히 위중한 상황이다. 그 원인이 바로 막힌 혈관, 굳게 닫혀진 창이라는 이야기다.

지역방송은 영민한 시장의 원칙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지구조를 가진 콘텐츠를 연간 약 6000여 편 정도 생산해낸다. 수백에서부터 수 천 만원의 제작비를 투여하고 수많은 전문 인력이 매달려 여러 낮밤을 지새우며 정성스레 제작한 프로그램은 해당권역에서 한 두 번 방송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자료실로 올라가 그 짧은 생애를 마감한다. 수지타산이 들어맞지 않는다.

정말 그것으로 끝이다. 고사 직전의 지역방송이 자신의 명운을 걸고 IPTV라는 거인의 행보에 길을 터주는 눈물의 속사정은 바로 이로 하여금 싱싱한 새 혈관을 찾아내고 누구의 소행인지 모호하지만 이미 굳게 닫혀져버린 소통의 창을 열어젖혀 자신들이 만든 피 같은 콘텐츠를 전국으로 돌리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인 것이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네트워크를 통해 전국 방송하면 되지 않는가라는 아픈 질문이 들어온다. 즉답은 피하기로 한다. 다만, 지난해 또 그 지지난해 문화방송 네트워크를 타고 전국으로 나간 지역MBC의 프로그램이 총 방송시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사례를 대신 전한다.

피가 돌아야 살도 붙고 근육도 생겨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피를 돌려야만 하는 지역방송이 처한 절체절명의 현실에서 IPTV는 요긴한 약(藥)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다. 지역방송의 입장에서 IPTV 출범은 독도 되고, 약도 되는 것이다. 독을 약으로 바꾸는 법제의 과정에는 정책당국, IPTV사업자, 지역방송 3자간의 신성한 동맹과 상생의 대승적 협심이 절실하다.

지금처럼 의식 혹은 무의식적 월권이나 배임이 난무하고 철학 없이 떠도는 저잣거리 셈법이 저열하게 횡행한다면 법제는 또다시 허탕이 되고 만다. 독은 독으로 남을 뿐 약이 되지 못한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그 독이 종국에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악(惡)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불안한 이야기는 집어치우고, 노래말 하나 읊는 것으로 글을 맺는다.
“장막을 거둬라, 너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떠 보자.
창문을 열어라, 춤추는 산들바람을 한 번 더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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